사랑했고, 부딪혔고, 지켜주려 했던 시간들

우리는 7년을 만났다. 그리고 헤어졌다.
아무렇지 않다가도, 아무렇지 않지가 않다.
내가 살던 세계의 삼분의 일이 한 순간에 사라져버린 것 같은 기분.
어쩌면 이런 날이 언젠가 올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이건 미련일까, 아니면 아쉬움일까, 상실감일까, 남아있는 사랑일까.
나에게 그녀는 어떤 존재였을까. 이 질문이 자꾸만 마음속에서 맴돈다.
나는 아직 그녀를 사랑하는 것일까, 익숙한 것이 사라져버린 것에 대한 상실감일까.
아니면 사랑했던 나의 모습을 그리워하는 것일까. 쉽게 답할 수 없다.
사실 우리는 좋았던 때도 많았지만, 꽤나 싸우기도 했다.
가치관이 달랐고, 대화 방식도 달랐다.
서로를 바라보며 '대화가 잘 안 된다'고 느낀 순간도 많았다.
그녀가 나에게 기대하는 것과 내가 그녀에게 기대하는 것은 자주 어긋났고, 서로를 스쳐 지나갔다.
첫 2년은 참 좋았다.
서로를 조금이라도 일찍 보기 위해서 주말 아침 6시부터 준비하던 모습.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같은 공간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너무 좋았던.
서로 다름이 보이지도 않았다. 아니, 보였더라도 사랑이라는 감정으로 모든 갈등을 잠재웠다.
아무 이유 없이 마냥 좋았고, 매일이 설레었다.
그 후 2년 동안은 균열이 있었다.
서로의 다음이 보였고, 언성을 높이기도 하고, 식당에서 말없이 밥만 먹는 날도 있었다.
신념의 차이로 인한 갈등도 있었다.
그저 생각이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대화가 적어지는 경험에 나는 무력감을 느꼈다.
그렇게 한동안 나는 스스로를 조율해갔다.
그녀와 함께 하면서, 그리고 시간이 지나면서, 나는 신념을 조금씩 내려놓았고, 생각도 많이 달라졌다.
그 후 3년은 내가 그녀에게 맞춰갔던 시간이었다.
웬만해서는 화를 내지 않았고, 그로 인해 다툼도 많이 줄었다.
그녀는 짜증이 늘었다. 그녀가 짜증을 내면, 나는 그 감정을 받아주고 풀어주는 사람이었다.
때론 내가 '남자친구'라기보다, 마치 고3 여고생을 둔 아버지가 된 것만 같았다.
그녀는 입시를 앞둔 학생처럼 날카로웠고, 사소한 일에도 예민했다.
그렇다고 그녀가 싫은 건 아니었다.
어떤 사람이든 그 사람의 모든 것이 마음에 들 수는 없는 법이니까.
다만, 궁금했다. 그래서 종종 물었다.
"ㅇㅇ은 왜 이렇게 짜증이 많을까?"
그녀는 내 말을 듣고 웃었다. 내가 그렇게 생각하는 게 웃기다고 했다.
난 그녀를 참 많이 아꼈다.
그녀가 회사에서 상처받지 않기를 바랐고, 학력으로 차별받지 않기를 바랐고,
무엇보다 자존감을 잃지 않기를 바랐다.
나는 언제나 그녀를 지지하려고 노력했고, 실제로 그렇게 했다고 믿는다.
그리고 그녀의 세계에 나를 맞추려 노력했다.
하지만 돌이켜보면, 그 과정에서 나는 점점 내 색을 잃어갔다.
나의 의견보다는 그녀의 요구가, 나의 감정보다는 그녀의 기분이 더 우선이 되었다.
그리고 어쩌면… 그녀가 나에게 점점 매력을 느끼지 못하게 된 이유도 거기에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내가 나로서의 색을 잃으면서, 그녀는 점점 나에게서 멀어져 간 것은 아닐까.
그녀는 종종 말했다.
"오빠는 남성성이 부족한 것 같아."
그래서 그녀가 더 예민해지고, 더 자주 짜증을 냈던 것은 아닐까.
그렇게 생각하면 마음 한 구석이 찌릿해온다.
그녀는 나에게 어떤 사람이었을까.
내 안의 애정과 보호본능을 끌어낸 사람이었다.
지켜주고 싶다는 감정을 자연스럽게 느끼게 했던 사람이었다.
항상 내가 제일 먼저였던 사람이, 양보하게 만든 사람이었다.
때로는 이해되지 않는 모습이 있어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함께 있고 싶었던 사람이었다.
나는 그녀와 함께 하면서, 내가 누군가를 위해 얼마나 기다릴 수 있고, 나를 내려놓을 수 있는지 알게 되었다.
나는 이대로 자연스럽게, 그렇게 함께 미래를 함께 하게 될 줄 알았다.
그 긴 시간만큼 서로를 더 깊이 이해하고, 함께하는 삶이 당연하다고 느꼈다.
어느 날 그녀가 말했다.
"더 이상 이렇게 만나는 게 무슨 의미가 있는지 모르겠어."
그녀가 중요하게 여기는 조건에 내가 부합하지 않는다고 했다.
나는 말문이 막혔다. 결국 내가 못난 탓이다.
나는 지난 수년 간 돌파구를 찾으려고 노력했지만, 아직 돌파구를 찾지 못 했다.
당장 내가 어떻게 할 수 있는 일은 없었으니까.
"이미 마음을 정한거야?"
"응, 그런 것 같아"
그 말 안에 설득할 수도, 붙잡을 수도 없는 종류의 거리감이 있었다.
내가 조금만 더 단단하게, 내 삶으로 그녀를 끌어안았다면,
우리는 달라질 수 있었을까?
그녀는 말했다.
"아무리 힘들어도 결국 시간이 해결해 준다고 생각해."
"그렇겠지."
너무나 맞는 말이기에 다른 어떤 말도 할 수 없었다.
그녀와의 7년은 끝났지만, 나를 이해해가는 여정은 이제야 시작되었는지도 모르겠다.
지금 나는, 나의 시간을, 나의 세계를 되찾는 여행을 위한 발걸음을 조심스레 내딛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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