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겉으로는 괜찮은 사람처럼

그럼에도, 잘해왔어

8년 만의 동창회 모임.

서호는 오랜만에 맞춰 입은 셔츠 소매를 매만지며,
 모임 장소 문을 열었다.
 익숙한 얼굴들, 변한 분위기.
 그리고 돌아온 질문.

 

“요즘은 뭐 해, 서호야?”

 

“음… 그냥 뭐, 이것저것.
 콘텐츠 하나 기획 중이고, 강의 제안도 좀 들어오고…
 전자책도 조금씩 팔리고 있고…”

 

서호는 능숙하게 말을 이었다.
 마치 준비한 발표처럼.
 모두가 고개를 끄덕이며 감탄했다.


 그런데, 갑자기
 피로감이 몰려왔다.
 가슴 한가운데가 텅 비는 기분.

 

그걸 느꼈는지, 하경이 웃으며 물었다.

 

“근데… 네 표정은 왜 그리 피곤하냐?”

 

“…좀 그런가?”

 

“예전처럼 힘차게 말하진 않네.
 예전엔 네가 제일 자신감 있었잖아.”

 

그 말에 서호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잠시 정적.


 그 정적을 깨듯 서호가 입을 열었다.

 

“나… 사실 아무것도 아니야.”

 

“…응?”

 

“다 있는 척한 거야.
 잘 나가는 척, 바쁜 척, 준비된 척.
 실은 아무것도 제대로 해낸 게 없어.
 전자책도 반응 미미했고, 강의는 안 잡혔고,
 블로그는 꾸역꾸역 썼지만 성과라 부를 만큼은 아니야.”

 

친구들이 말을 잃었다.
 서호는 계속 말했다.

 

“그동안 계속 뭔가를 했던 것도…
 멋져 보이고 싶어서가 아니라
 그냥… 멈추면 무서울까봐.”

 

하경이 조심스럽게 말했다.

 

“근데… 넌 그래도 계속 했잖아.
 책도 쓰고, 블로그도 하고, 영상도 찍고.
 그게 대단한 거지.”

 

서호는 고개를 저었다.

 

“그건 도망이었어.
 안정되지 못한 삶에서
 초조함을 덜어내려고
 뭐라도 해야 할 것 같았어.
 그래야 안 무너질 것 같았거든.”

 

“…그래도, 멈추지 않았잖아.”

 

“…그랬지.”

 

“그럼 된 거야.”

 

하경은 진심을 담아 말했다.

 

“성과보다 꾸준함이 더 대단한 거야.
 나는 솔직히 몇 번 시도하다가 다 포기했어.
 너처럼 그렇게 몇 년을 이어온 적 없어.

 뭔가를 꾸준히 하는 건 그것만으로 대단한거야.”

 

서호는 말이 없었다.
 마음 어딘가가 찡하게 울렸다.

하경이 말을 이었다.

 

“넌 항상 앞장서 있었잖아.
 무너지지 않았잖아. 주저앉지 않았잖아.
 나는… 그게 제일 존경스러워.”

 

서호는 갑자기 울컥했다.
 아무도 몰랐던 초조함,
 계속 있는 척하며 쌓아온 허탈감.
 그걸 꺼내놓은 지금,
 그는 믿을 수 없을 만큼 가벼웠다.

 

하경이 웃으며 말했다.

 

“잘해왔어, 서호야.
 정말 잘해온 거야.”

 

그 순간, 서호는 비로소 자신을
 조금은 안아줄 수 있을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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