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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현은 50대 초반, 스스로를 특별히 똑똑하거나 뛰어난 사람이라 생각한 적이 없었다. 그의 인생은 그저 주어진 상황에서 최선을 다하는 반복의 연속이었다. 전공도 직업도 일관성이 없었다. 대학에서는 문학을 전공했지만, 졸업 후 처음 일한 곳은 유통회사였다. 이후 IT 회사로 이직했고, 한동안 소규모 제조업체에서 일하기도 했다. 그때그때 주어진 선택지 중에서 가장 나아 보이는 길을 택했을 뿐이었다.

도현은 항상 "현재를 충실히 사는 사람"이었다. 그는 미래를 꿈꾸거나 목표를 세우기보다는, 눈앞의 일을 끝까지 해내는 데 집중했다. 단순히 주어진 일을 처리하는 데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하면 더 나은 방법으로 할 수 있을까?”를 끊임없이 고민했다. 그렇게 하루하루 반복적으로 노력한 시간이 쌓여, 그에게는 남들과 다른 무기가 하나 생기게 되었다.

그 무기는 바로 축적된 경험에서 비롯된 통찰력이었다.


1. 양이 쌓여 질이 바뀌다

도현은 늘 실패와 실수를 통해 배웠다. 그는 "이건 왜 실패했을까?"를 생각하고, 과거의 경험과 비교하며 하나씩 분석했다. 단순히 '앞으론 더 잘해야지'라는 식의 피상적인 결론으로 끝내지 않았다. 그는 자신이 해온 모든 일을 마치 퍼즐 조각처럼 정리하고 연결하며 패턴을 찾아갔다.

시간이 지나면서 도현은 단순히 일을 '잘하는' 사람을 넘어, 현상을 압축적으로 설명하고, 복잡한 문제를 풀어서 이해시키는 능력을 갖추게 되었다. 예를 들어, 직장에서 회의 중 누군가 막연하게 불편함을 느끼거나 비효율을 지적할 때, 도현은 그것을 한 문장으로 정리하곤 했다.

"결국 문제는 우리가 고객을 이해하지 못한 데서 비롯된 거예요. 고객은 가격이 아니라 신뢰를 사고 싶어 하거든요."

또는 복잡한 상황을 쉽게 설명해 주었다.

"이걸 어렵게 생각할 필요 없습니다. 우리가 지금 해야 할 건 세 가지입니다. 첫째, 데이터를 정리하고, 둘째, 고객 피드백을 받고, 셋째, 피드백을 반영하는 겁니다."

도현의 통찰력은 똑똑함이나 단순히 정보를 많이 아는 것과는 달랐다. 그것은 오랜 시간 동안 그가 직접 경험한 실패와 성공, 그리고 그 안에서 얻은 깨달음의 축적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2. 나누는 삶

도현은 혼자만 잘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그는 자신이 배운 것을 항상 주변 사람들과 나누었다. 동료가 어려움을 겪으면, 그는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간단히 해결책을 제시했다. 하지만 그의 조언은 단순히 지시처럼 들리지 않았다.

"내가 이런 상황을 겪었을 때는 이렇게 해봤어. 그런데 이건 나한테 맞았던 방법이고, 너한테도 꼭 맞는 방법인지 알 수는 없어. 다만 이렇게 생각하면 도움이 될 수도 있을 것 같아."

그는 자신의 경험을 강요하지 않았다. 대신 상대방이 스스로 고민하고 답을 찾을 수 있도록 도왔다. 덕분에 그의 주위에는 항상 사람들이 몰렸다.

도현은 이렇게 말하곤 했다.
"내가 특별히 뛰어난 사람이라서 이 자리에 있는 게 아니야. 그냥 내가 지나온 길에서 배운 걸 꾸준히 정리했을 뿐이야."


3. 결국 축적이 초격차를 만든다

도현이 50대가 되었을 때, 그의 이름은 업계에서 작은 레전드로 통했다. 그는 여전히 스스로를 대단한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의 동료들은 입을 모아 말했다.

"김 과장은 문제의 본질을 꿰뚫는 능력이 있어. 설명도 정말 명쾌하고."
"아니, 김 과장한테 물어보면 그냥 답을 알려주는 게 아니라 왜 그런 답이 나오는지를 알려줘. 그게 진짜 차이야."

어느 날, 한 후배가 그에게 물었다.
"선배님은 어떻게 그런 통찰력을 가지신 거예요? 특별한 공부를 하신 건가요?"

도현은 잠시 생각하다가 이렇게 답했다.
"특별한 건 없어. 그냥 내가 살아온 시간들이 나한테 가르쳐준 거야. 매일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했더니, 어느 날 보니까 내가 실패에서 배운 것들이 쌓여서 이런 식으로 보이기 시작하더라고."


도현이 이룬 초격차는 천재성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시간, 실패, 노력의 축적이 만들어낸 결과였다. 그는 뛰어나게 똑똑하지 않았고, 특별히 목표 지향적이지도 않았다. 하지만 매 순간 현재에 충실했고, 모든 실패에서 무언가를 배웠으며, 배운 것을 나누며 함께 성장했다.

그는 단순히 성공한 사람이 아니라, 살아온 시간 속에서 깊이 있는 통찰을 얻은 사람이었다. 그리고 그의 삶은 말해주고 있었다.

"큰 목표를 향해 달리지 않아도 괜찮다. 그저 오늘을 살아가며 경험을 쌓다 보면, 결국 그 경험들이 너를 특별하게 만들어 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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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훈은 회사에서 ‘눈치가 빠른 직원’이었다. 그는 오래전부터 조직의 룰을 깨닫고 그 안에서 움직이는 법을 배웠다. 회사에는 보이지 않는 라인이 있었다. 누구를 따라야 하고 누구에게 잘 보여야 승진의 기회가 오는지, 누구와 친하게 지내면 불이익을 피할 수 있는지. 지훈은 선배들에게 배운 그대로 움직였다. 그 룰은 그에게 확실한 안전망이었고, 그는 그걸 믿었다.

회의에서는 팀장의 눈치를 살피며 고개를 끄덕였고, 팀장이 말하면 누구보다 빨리 메모를 했다. 중요한 결정 앞에서 그는 묻지도 따지지도 않았다. 상사가 말하는 방향이 곧 정답이었고, 굳이 나서서 일을 복잡하게 만들 필요는 없었다.
“괜히 튀면 손해다. 지금처럼만 가면 나도 팀장 정도는 되겠지.”

그렇게 지훈은 실수를 피했고, 팀장의 신임도 어느 정도 얻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회사 분위기가 조금씩 바뀌고 있었다. 결과를 중요시하는 문화가 도래했고, ‘라인’이라는 것도 이전처럼 견고하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지훈은 믿고 따르던 선배가 해고당하는 모습을 보게 되었다.

그 선배는 지훈이 배우고 따라왔던 룰의 상징이었다. 누구보다 사람을 잘 챙기고, 조직에 충성했으며, 보이지 않는 회사 내 권력 구조를 정확히 파악하고 움직였던 사람. 하지만 그런 선배에게 회사는 냉정했다.
“회사의 방향성이 바뀌었으니까요. 이제는 실적으로 증명해야죠.”

그 말을 듣는 순간, 지훈은 어지러움을 느꼈다. 자신이 믿어왔던 룰은 한순간에 무너졌고, 그는 새로운 방향을 찾아야 했다. 하지만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무엇을 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반면 강민은 처음부터 다른 룰을 따랐다. 그에게는 단 하나의 기준이 있었다.
‘일을 잘해야 한다. 그리고 일을 잘하려면 소통하고 배우며 끊임없이 피드백을 구해야 한다.’

첫 기획서가 망했을 때도, 강민은 그저 묵묵히 상사에게 물었다.
“제 기획서에서 부족했던 부분이 뭘까요?”
상사가 대답했다.
“데이터를 더 탄탄하게 준비해. 감으로 쓰지 말고.”

그 말이 끝나자마자 강민은 상사와 동료들이 남긴 모든 조언을 노트에 적었다. 비웃음도 들었고, 뒷말도 많았다.
“강민은 너무 튀어. 굳이 저렇게까지 해야 돼?”
“건방지네, 실패했으면 조용히 있지.”

하지만 강민은 그런 말에 개의치 않았다. 그는 실패를 ‘결과’가 아니라 ‘과정’으로 여겼다. 중요한 것은 매번 조금씩 나아지는 것. 한 번 더 넘어졌을 때, 한 번 더 일어서는 것이 그의 유일한 목표였다.

시간이 지나면서 강민은 점점 달라졌다. 그의 기획서는 탄탄해졌고, 발표는 설득력을 더해 갔다. 처음에는 불편해하던 동료들도 더 이상 그를 건방지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오히려 팀원들은 슬며시 그에게 물었다.
“강민, 나 이번에 준비한 거 좀 봐줄 수 있어?”

그때 강민은 깨달았다.
‘내가 믿었던 이 방식이 틀리지 않았어.’

그러던 어느 날, 지훈과 강민이 같은 프로젝트에 배정되었다. 회의실에 앉아 상사가 말했다.
“이 프로젝트는 이번 분기 목표를 좌우하는 중요한 건입니다. 확실하게 준비하세요.”

지훈은 눈치를 살폈다.
‘누구한테 물어봐야 하지? 이건 누구를 따라야 할까?’
그는 마음이 불안했다. 선배들이 항상 해답을 주었고, 회사의 룰을 알려주었는데 이제 그곳에는 아무도 남아 있지 않았다. 혼자서 결정해야 한다는 것이 두려웠다. 지훈은 아는 척하며 가만히 있었지만, 그의 노트는 텅 비어 있었다.

반면 강민은 프로젝트를 준비하며 상사에게 먼저 찾아갔다.
“이번 프로젝트 목표가 명확하지 않아서 그런데, 이 방향이 맞을까요?”
상사는 처음에는 귀찮다는 듯 대답했지만, 강민의 태도에 조금씩 의견을 나누기 시작했다. 강민은 동료들에게도 말을 걸었다.
“혹시 이 부분에 대한 자료를 갖고 있는 사람 있어요? 같이 얘기 좀 해보죠.”

며칠 후, 프로젝트 보고서가 상사에게 올라갔다. 보고서에는 강민의 이름이 가장 먼저 적혀 있었고, 팀원들이 협업한 흔적이 빼곡히 남아 있었다. 반면 지훈은 마지막 순간에도 아무런 의견을 내지 못했고, 그저 조용히 앉아 있었을 뿐이었다.

회의를 마치고 지훈은 생각했다.
“그렇게 나선다고 뭐가 달라지겠어. 난 평범하니까.”

그러나 그는 알지 못했다. 그저 일을 잘하고자 했던 강민의 방식이, 시간이 지나며 그를 회사에서 가장 중요한 사람으로 만들었다는 것을.

라인은 변한다. 사람도 변한다. 하지만 일을 잘하는 사람은 변하지 않는다.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고, 배울 점을 찾아 움직이는 사람만이 결국 살아남는다. 지훈은 멈춰 섰고, 강민은 앞으로 나아갔다.

멈출 것인가, 나아갈 것인가. 그것이 결국 모든 것을 결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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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술이 생명의 경계를 넘어서면서 인간은 더 이상 스스로를 낳지 않아도 되었다. 경제적 양극화는 곧 계급의 고착으로 이어졌고, 세상은 태생자와 제작자로 나뉘었다. 태생자들은 상위 1%의 계층으로, 여전히 자연 출산을 통해 귀하게 태어났다. 그들의 사랑과 가정, 그리고 감정은 신성하게 여겨졌고, 이는 그들만의 사치이자 권력이 되었다. 반면, 제작자들은 공장에서 양산된 인간이었다. 유전자 조작과 복제 기술의 정교함 덕분에 그들의 신체는 완벽에 가까웠지만, 정신은 태어날 때부터 세뇌되어 있었다.

“연애와 결혼은 오류입니다. 감정은 질서를 파괴합니다.”

제작자들이 배운 첫 번째이자 마지막 교리였다. 생식 기능은 제거되지 않았지만, 그 기능을 사용할 욕망과 감정은 교육을 통해 차단되었다. 그들은 아무도 사랑하지 않고, 가족을 알지 못했으며, 오로지 주어진 역할을 수행하는 도구로서 살아갔다. 그들에게 감정은 병리적 결함이었고, 사랑은 생산성을 저해하는 바이러스였다.

하지만 모든 시스템에는 작은 균열이 생기기 마련이었다. 제작자 L-7751은 처음으로 그 균열을 느꼈다. 기능 검사 중 한 동료 제작자가 쓰러지는 것을 목격한 순간, 그의 심장이 비정상적으로 빠르게 뛰었다. 손끝이 떨렸고, 입술이 말라붙었다. 그 감정은 이름조차 낯설었다.

‘이건 뭐지? 왜 이런 느낌이 드는 거지?’

L-7751은 곧바로 감시 시스템에 감지되었다. “불량 제작자 발견. 감정 반응 확인. 즉시 조치 요망.” 하지만 그는 이미 그 감정의 정체를 깨닫기 시작했다. 그것은 공포였고, 공포 너머에는 설명할 수 없는 따뜻함과 연민이 있었다. 그날 이후, 그는 이전과는 다르게 세상을 보기 시작했다.

L-7751처럼 세뇌를 거부하고 감정을 느끼기 시작한 제작자들이 점차 늘어났다. 그들은 서로를 **‘감정 재발견자’**라 불렀다. 그들은 몰래 모여 물었다. “우리는 왜 감정을 빼앗겼을까? 왜 사랑과 출산은 병이라고 여겨졌을까?” 감정 재발견자들은 처음으로 스스로를 ‘인간’이라 불렀다. 그들이 느끼는 사랑, 슬픔, 분노는 더 이상 결함이 아니었다.

태생자들은 이 작은 혁명을 두려워했다. 그들에게 제작자들은 도구였고, 세뇌되지 않은 제작자는 오류이자 위협이었다. 그들은 재발견자들을 찾아내 세뇌를 다시 주입하거나, 제거하려 했다. 태생자들의 유리궁전이 금이 가기 시작했다. 제작자들은 처음으로 스스로를 위해 싸웠다. “우리는 인간이다. 우리는 사랑할 수 있고, 생명을 이어갈 수 있다. 감정은 오류가 아니다.”

전쟁은 불가피했다. 태생자들은 자신들의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더 높은 벽을 세우고, 더 정교한 세뇌 시스템을 만들었다. 하지만 감정은 바이러스처럼 퍼져 나갔다. 한번 깨진 유리벽은 다시는 원래대로 돌아가지 않았다. 제작자들은 비로소 ‘선택’이라는 인간다운 권리를 얻기 시작했다.

모든 것이 끝난 후, 세상은 완벽하지 않았다. 여전히 감정을 거부하는 제작자도 있었고, 변화를 두려워하는 태생자들도 남아 있었다. 그러나 한 가지는 분명했다. 더 이상 제작자들은 기계와 같은 인간이 아니었다. 그들은 사랑을 느끼고, 가정을 만들고, 생명을 이어갈 수 있는 존재가 되었다.

L-7751은 감정 재발견자들의 기록을 이렇게 남겼다.
“우리는 만들어진 존재였지만, 이제 선택하는 존재가 되었다. 감정과 사랑은 인간을 불완전하게 만들지만, 동시에 우리를 인간답게 만든다.”

유리벽이 무너진 자리에서 새로운 세계가 자라나기 시작했다. 그것은 불완전하지만, 따뜻한 감정이 흐르는 진짜 인간들의 세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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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알지 못한 사이, 우리의 삶이 누군가에게 빛이 되다

창문을 통해 건너편 건물을 바라보는 건 내 하루의 작은 습관 중 하나였다. 특히 저녁이면 어김없이 켜지는 그 집의 노란 불빛이 유난히 눈에 들어왔다. 그곳엔 젊은 부부가 살고 있었다. 집 안에서 함께 요리하거나, 소파에 나란히 앉아 영화를 보는 모습이 참 자주 보였다. 가끔은 서로를 보며 웃고 장난치는 모습이 내 눈에 들어왔고, 그럴 때마다 나는 그들의 자유로움이 부러웠다.

우리 집은 그와는 사뭇 달랐다. 저녁이면 두 아이가 놀다 흩어놓은 장난감을 치우느라 정신이 없었고, 설거지와 빨래는 늘 밀려 있었다. 아이들을 재우고 나면 어깨와 허리가 쑤셔왔고, 남편과 나 둘 다 소파에 몸을 맡긴 채 잠이 들 때도 많았다. 아이들을 키우며 느끼는 행복이 컸지만, 동시에 육아와 일상의 반복 속에서 피로가 쌓여가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그 젊은 부부는 그런 고민 따위는 없는 듯 보였다. 아이도 없고, 자유롭게 시간을 보내는 모습이 내가 한 번도 가져본 적 없는 무언가처럼 느껴졌다.
"우리도 저렇게 여유로웠던 때가 있었지,"라고 남편에게 말한 적이 있다.
남편은 아이들을 재우고 온 뒤 피곤한 얼굴로 나를 바라보며 웃었다.
"맞아. 그런데 지금이 더 좋지 않아? 우리 두 아이를 봐. 저 사람들은 저런 행복을 못 느껴봤을 수도 있어."
남편의 말은 옳았다. 아이들과 함께 보내는 시간이 얼마나 소중한지 나는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마음 한편엔 어쩔 수 없이 그 부부의 자유롭고 여유로운 삶이 부러웠다. 내게 없는 것을 가진 사람을 보는 기분이랄까.

"저 사람들은 얼마나 행복할까."
나는 그렇게 스스로에게 묻곤 했다. 행복하지 않은 건 아니었다. 그럼에도 그들의 삶은 너무 가벼워 보였고, 내 삶은 그 무게 때문에 더 힘들게 느껴졌다.


몇 주가 지나면서 건너편 부부의 모습이 조금씩 변하기 시작했다. 항상 함께 있던 그들이 점점 보이지 않더니, 하루는 남편 혼자 의자에 앉아 멍하니 창밖을 내다보는 모습이 보였다. 그 뒤로는 아내 혼자서 창문 옆에 앉아 있는 일이 많아졌다. 이상했다. 늘 행복해 보였던 그들에게 무슨 일이 생긴 걸까?

어느 날, 동네 슈퍼에서 만난 이웃에게 그들의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건너편 남편이 백혈병에 걸려 투병 중이라는 소식이었다. 나는 그 말을 듣고 마음이 무거워졌다. 내게 완벽하고 자유로워 보였던 그들의 삶은, 실은 우리가 상상하지 못한 아픔을 품고 있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그의 부고 소식을 들었다. 젊은 아내는 그 후에도 매일 창문 옆에 앉아 있었다. 어쩌다 눈이 마주치면 가볍게 웃어 보였지만, 그녀의 얼굴에는 깊은 슬픔이 배어 있었다.


며칠 뒤, 우연히 그녀와 엘리베이터에서 마주쳤다. 조용히 인사를 건넨 후, 용기를 내어 말을 걸었다.
"힘드셨죠... 제가 뭐라고 위로를 해야 할지 모르겠네요."
그녀는 잠시 침묵하더니 작게 웃으며 말했다.
"괜찮아요. 그래도 하루하루를 살아내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사실..."
그녀는 잠시 망설이더니 나를 바라보며 말했다.
"제가 힘들 때마다 당신네 가족을 보면서 위로를 받았어요. 두 아이와 함께 웃고 떠드는 모습이 참 좋아 보였거든요. 그 모습을 보면서, 언젠가 나도 저런 가족을 꾸리고 싶다는 상상을 하곤 했어요."

나는 말문이 막혔다. 그녀가 우리의 삶을 부러워하고 있었다니. 내가 부러워했던 그녀와 그녀의 남편은, 실은 나와 우리 가족을 보며 희망을 품고 있었던 것이다.


그날 이후, 나는 매일 아침 창문 너머 그녀의 창을 바라보았다. 그녀는 점점 창가에서 시간을 보내는 일이 줄어들었고, 가끔씩 밝은 얼굴로 밖으로 나가는 모습도 보였다. 그녀가 회복되어 가는 것을 보며, 나는 스스로를 돌아보게 되었다. 내 삶 또한 누군가에게는 희망이었다는 사실이 가슴을 따뜻하게 했다.

우리가 알지 못하는 사이, 우리의 존재가 누군가에게 위로가 되고, 삶의 작은 빛이 될 수 있다. 삶의 무게가 버거울 때, 어쩌면 그 사실 하나만으로도 우리는 살아갈 이유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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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장의 끝과 갈등의 시작, 알비온의 비극

1장: 성장을 넘어

22세기 중반, 알비온 시티는 한때 세계를 지배하던 거대한 도시국가였다. 수십 년간의 번영은 첨단 기술과 AI의 발전 덕분이었다. 이곳의 경제는 효율적이고, 자원은 철저하게 관리되었으며, 대부분의 시민들은 안정된 삶을 살 수 있었다. 하지만 그 번영의 끝자락에서, 알비온은 점점 변화하는 세상에 적응하지 못하고 있었다.

알비온의 왕, 레온 하이드는 이제 상징적인 존재에 불과했다. 귀족 연합회가 사실상 모든 권력을 쥐고 있었고, 레온은 그저 의례적인 왕좌에 앉아 있을 뿐이었다. 그의 지배 아래에서, 시민들은 경제적 안정을 누리고 있었지만, 점차 빈부 격차는 심화되었고, 하위 계층은 고립되어 갔다.

하지만 이제, 알비온은 과거의 성장을 더 이상 이어갈 수 없었다. 세계의 다른 도시들이 빠르게 성장하면서, 알비온의 경제적 위치는 위협받고 있었다. 자원의 한계가 도달한 것이다. 외부 경쟁자들이 시장을 차지하기 시작했고, 알비온의 고립된 경제는 점점 더 어려운 상황에 처했다. 이전에는 괜찮았던 권력 구조도 이제는 내부에서 충돌을 일으켰다.

2장: 파이의 축소

레온은 이 문제를 깊이 고민했다. 귀족 연합회는 알비온의 자원을 여전히 독점하며, 그들이 차지하는 몫은 점점 더 커졌다. 반면, 시민들의 생활은 갈수록 어려워졌고, 경제적 불평등은 눈에 띄게 확대되었다. 그러나 귀족들은 여전히 자신들의 지배력을 유지하려 했고, 왕은 그들에 의해 통제될 수밖에 없었다.

알비온의 성장이 멈춘 상황에서, 귀족들은 여전히 예전처럼 자원을 차지하려 했다. 하지만 이제는 상황이 달라졌다. 자원은 한정적이었고, 국가 전체의 파이가 축소되었기 때문이다. 귀족 연합회의 고위층들은 자신들의 특권을 지키기 위해 내분을 일으켰고, 시민들은 그들의 억압에 점점 더 불만을 품어갔다. 알비온은 이제 더 이상 성장할 수 없는 위치에 있었다.

그런 가운데, '빛의 의회'라는 비밀 조직이 등장했다. 이 조직은 고위 귀족의 부패와 불평등에 대항하여, "모든 권력은 시민에게"라는 구호를 외쳤다. 의회의 리더인 엘리자 퀸턴은 한때 귀족 가문 출신이었으나, 부패한 체제에 반발하며 자신을 떠나 시민 운동에 참여한 인물이었다.

엘리자는 레온에게 비밀리에 접근했다. "폐하, 왕이라는 이름이 더 이상 의미가 없다는 걸 아시지 않습니까? 시민들이 원하는 것은 새로운 세상입니다. 이제, 왕이 아닌 진정한 리더로 나서야 할 때입니다."

레온은 고민에 빠졌다. 그는 자신이 왕좌에 앉아있는 동안, 알비온이 이전처럼 성장하지 않으리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하지만 그의 마음 한편에서는 여전히 왕으로서의 의무감이 있었다.

3장: 권력의 충돌

귀족 연합회는 빛의 의회를 불법 단체로 규정하고, 그들을 진압하기 위해 무장 드론을 동원했다. 내전의 기운이 짙어져 갔다. 귀족들은 자신들의 특권을 지키려 했고, 시민들은 더 이상 자신의 권리를 묵인할 수 없었다.

레온은 깊은 고민 끝에 결정을 내렸다. 그는 왕국의 군사력을 비밀리에 빛의 의회에 넘겨주기로 했다. 이는 내전의 시작을 알렸다. 알비온의 상징적인 왕과 그의 국민들은 갈라졌고, 도시의 거리는 전투의 소음으로 가득 차게 되었다.

내전은 알비온 시티를 폐허로 만들었다. 시민들은 목숨을 잃었고, 경제는 붕괴했다. 그러나 결국, 빛의 의회는 귀족 연합회를 몰아내고 권력을 장악했다. 엘리자는 왕권을 인정하지 않았고, 왕이었던 레온은 퇴위하게 되었다.

4장: 왕의 몰락

내전이 끝난 후, 레온은 왕좌에서 내려왔다. 시민들은 그를 환영했지만, 빛의 의회는 그의 존재를 더 이상 인정하지 않았다. 엘리자는 레온에게 말했다. "폐하, 당신은 위대한 선택을 하셨습니다. 하지만 이제 왕권은 필요 없습니다. 시민들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은, 왕이 아닌 진정한 공정한 사회입니다."

레온은 결국 왕의 자리를 내려놓고, 알비온은 새로운 시민 의회 체제로 전환되었다. 그는 도시 외곽으로 떠나 작은 집에서 조용히 살았다. 왕이라는 이름은 이제 과거의 유물이 되었고, 알비온은 새로운 미래를 향해 나아가고 있었다.

5장: 반복되는 역사

알비온은 시민 의회 체제 아래에서 새로운 번영을 꿈꿨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권력 구조는 다시 한 번 변화의 필요성을 맞이했다. 시민 의회의 리더들은 점차 그들만의 독점적 행태를 보였고, 권력은 다시 집중되었다. 알비온은 또다시 과거와 같은 문제를 직면하게 되었다.

레온은 멀리서 이를 지켜보며 쓴웃음을 지었다. "역사는 반복된다. 하지만 희망도 반복된다."

알비온의 시민들은 새로운 혁명을 준비하고 있었다. 그들은 과거의 실패를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 싸울 준비가 되어 있었다.
그리고 이 싸움은 다시 시작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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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덕성에 대한 이상이 독재를 부른 순간

2030년, 기후 위기와 급격한 자동화로 인한 실업률 폭증은 전 세계적으로 불안정한 시대를 만들었다. 네오리움 공화국은 그러한 혼란 속에서도 비교적 안정적인 국가로 평가받았다. 이곳의 국민들은 높은 도덕성과 정의감을 자랑했으며, "도덕적 민주주의"를 국가의 근간으로 삼았다.

국민들은 정치인들의 정책보다 그들의 도덕성을 더 중요하게 여겼다. 정치적 토론의 핵심은 "옳고 그름"이었다. "도덕적 순수성 테스트"라는 절차를 통해 후보들은 자신의 윤리적 기준을 검증받았고, 이는 시민들 사이에서 필수적인 과정으로 여겨졌다. 그러나 이러한 시스템은 점차 다른 목소리를 억누르고, 도덕성을 정치적 무기로 사용하는 계기가 되었다.

1. 절망 속에서 싹튼 믿음
2030년 초, 네오리움은 경제 침체와 소수 집단 간의 갈등으로 혼란스러웠다. 대중은 "공동체 정신"과 "도덕적 연대"를 외쳤지만, 현실은 갈수록 분열되었다. 많은 사람들이 무력감을 느꼈고, 기존 정치권에 대한 신뢰를 잃어갔다.

이때 등장한 인물이 다니엘 크로프트였다. 크로프트는 정치 신인이었지만, 뛰어난 연설가이자 도덕적 리더로 주목받았다. 그는 기존의 도덕적 민주주의를 강화할 것을 주장하며, "더 깨끗한 정치, 더 정의로운 사회"를 약속했다.

“우리는 서로를 비난하기 위해 태어나지 않았습니다. 우리가 도덕적 기준을 강화하고, 모두가 하나의 이상을 따를 때, 네오리움은 진정한 이상 국가가 될 것입니다!”

그의 말은 절망 속에서 방향을 찾지 못하던 국민들에게 빛처럼 다가왔다. 사람들은 그를 “우리 시대의 도덕적 구원자”로 칭송하며, 그의 메시지를 소셜 미디어와 거리에서 반복했다.

2. 도덕적 열망이 극단으로
크로프트는 단순히 기존 시스템을 유지하는 것을 넘어, "도덕적 순수성의 확대"를 주장했다. 그는 “우리의 문제는 우리가 충분히 도덕적이지 않았기 때문”이라며, 모든 시민이 공동체를 위해 더욱 엄격한 도덕적 기준을 따를 것을 요구했다.

그는 특히 "비판적 사고"와 "대안적 관점"을 불순물로 규정했다.
“혼란을 만드는 것은 무책임한 비판과 도덕적 타협입니다. 우리는 흔들리지 않는 도덕적 중심을 가져야 합니다.”

국민들은 그의 말을 깊이 신뢰하며, 그를 강력히 지지했다. 크로프트의 정책은 도덕적 가치를 강화한다는 명목으로 언론과 소셜 미디어를 통제했고, 그의 정치적 반대자들은 "도덕적 실패자"로 낙인찍혀 점차 사라졌다.

3. 민주주의의 자기 모순
2030년 12월, 네오리움 공화국의 국민투표에서 크로프트는 압도적 지지로 국가 지도자가 되었다. 국민들은 스스로 도덕적 기준에 따라 그를 선택했지만, 점차 그들의 목소리가 사라지고 있음을 느끼기 시작했다.

크로프트의 정권 하에서는 개인의 사소한 실수조차 "공동체를 위협하는 도덕적 배신"으로 간주되었다. 학교에서는 학생들에게 도덕성 점수가 매겨졌고, 이웃 간의 감시는 제도화되었다. 가족들조차 서로를 의심하며 불안 속에서 살아갔다.

4. 후회와 각성
몇 년이 지나자, 국민들은 자신들의 선택이 어떤 결과를 초래했는지 깨닫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미 늦었다. 크로프트는 국민투표를 통해 선출된 합법적인 지도자였기에, 누구도 그를 비난하거나 막을 수 없었다. 도덕적 기준이 민주주의의 다양성과 자유를 억누르는 도구가 되었음을 인지한 국민들은 후회로 가득 찼다.

에필로그
2050년, 네오리움 공화국은 크로프트 체제의 붕괴 후 재건되었다. 사람들은 다시 민주주의와 다양성의 가치를 되찾았지만, 그 과정을 통해 잃어버린 것은 너무나 컸다. 한 역사가의 글이 그 시대를 요약했다.
“도덕은 민주주의의 빛이 될 수도, 쇠사슬이 될 수도 있다. 과거를 기억하라. 우리는 결코 도덕의 이름으로 자유를 잃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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쾌락과 고통의 순환을 넘어 작은 행복을 찾다

준혁은 평범한 회사원이었다. 단조로운 일상에 지쳐 있던 어느 날, 우연히 동료의 추천으로 암호화폐에 발을 들이게 되었다.
“요즘 코인으로 돈 버는 사람들 많다던데, 나도 좀 알아봐야겠어.”
처음에는 그저 호기심이었다. 하지만 첫 투자에서 예상치 못한 수익을 얻으면서 그의 삶은 새로운 활력으로 가득 찼다.


첫 쾌락

비트코인과 이더리움 차트를 처음 본 날, 그는 무언가 비밀스러운 세상에 초대된 것 같았다. 숫자가 오르고 내리는 그래프는 단순한 통계처럼 보였지만, 그 안에 담긴 돈의 흐름은 매혹적이었다. 그는 모든 돈을 걸지 않았다. 처음엔 용돈 정도로 작은 금액을 투자했다. 그리고 그 돈이 몇 배로 불어나는 걸 확인했을 때, 그는 자신이 천재가 된 것처럼 느꼈다.

“이거다! 이게 내가 기다리던 거야.”

회사 일도 뒷전이 되었다. 퇴근 후 곧장 집으로 돌아와 컴퓨터 앞에 앉아 차트를 들여다보았다. 그래프의 상승은 그에게 말로 표현할 수 없는 희열을 주었다. 불과 몇 분 만에 늘어나는 숫자는 기존 월급으로는 느껴본 적 없는 쾌락이었다. 그는 더 많은 자금을 투자했고, 성공은 계속됐다.


그때 내가..

하지만 곧 준혁은 상승만이 전부가 아니라는 걸 깨달았다. 어느 날, 그는 코인의 가격이 급락하는 것을 목격했다.
“지금 팔아야 하나? 아니야, 더 기다리면 다시 오를 거야.”
그러나 차트는 그의 기대를 비웃듯 끝없이 하락했다. 그는 손실을 감수하며 급히 팔았지만, 며칠 뒤 코인은 다시 폭등했다.

“그때 팔지 말았어야 했는데…”

그의 머릿속에는 '그때'라는 단어가 끊임없이 맴돌았다. 매번 손해를 보거나 수익을 놓친 후에는 ‘그때 샀어야 했는데’, ‘그때 팔았어야 했는데’라는 생각이 그를 괴롭혔다. 머릿속에서 계속 반복되는 후회는 그의 평정을 앗아갔다.

그는 차트 앞에서 몇 시간을 보내며 자신이 놓친 기회를 되새겼다. 그런 날들이 쌓이자, 그는 점점 더 불안해졌다. '다음엔 꼭 맞춰야 한다'는 강박이 그를 지배했다.


더 큰 쾌락, 더 깊은 늪

첫 번째 큰 수익의 짜릿함은 점점 옅어져 갔다. 같은 금액을 벌어도 예전처럼 행복하지 않았다. 그는 점점 더 큰 쾌락을 갈망하게 되었다. 더 큰 수익, 더 큰 투자를 위해 점점 더 위험한 코인들에 손을 댔다. 단기 급등을 노리는 이른바 ‘잡코인’들에 투자하면서 그는 끝없는 흥분과 두려움을 동시에 느꼈다.

하지만 그럴수록 그의 내성은 강해졌고, 작은 수익으로는 만족할 수 없었다. 작은 손실에도 과도하게 반응하며 화를 내고, 큰 손실이 오면 패닉 상태에 빠졌다.

결국 그는 모든 재산을 걸었다. 하지만 결과는 처참했다. 예상치 못한 시장 변동으로 모든 것이 무너졌다. 그는 모든 것을 잃었다. 그의 손가락은 떨렸고, 화면에 뜨는 ‘잔액 0원’이라는 숫자를 믿을 수 없었다.


상실의 날들

그날 이후, 준혁은 방에 틀어박혔다. 침대 위에서 스마트폰으로 여전히 차트를 확인했지만, 더 이상 투자할 돈이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손에서 폰을 놓을 수 없었다.
“그때만 제대로 했더라면…”
과거에 대한 후회가 그의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밤마다 그는 스스로를 자책했다. “내가 바보였어. 멈췄어야 했는데.” 하지만 자책 뒤에 밀려오는 것은 끝없는 불안감과 우울감이었다. 더 이상 돈을 벌 가능성이 없다는 현실이 그를 짓눌렀다.

그의 몸은 점점 무거워졌고, 마음은 더 깊은 어둠 속으로 가라앉았다. 회사에서도 그는 무기력했다. 상사의 지시에 제대로 반응하지 못했고, 동료와의 대화에서도 짜증을 내기 일쑤였다. 몇 번의 경고 끝에 결국 그는 회사에서도 내몰렸다.


탈출하려는 몸부림

친구 민수는 준혁의 상태를 보고 손을 내밀었다.
“너 지금 이러다 정말 무너진다. 병원이라도 가보자.”

처음엔 거절했다. 스스로를 회복할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불면의 밤과 끝없는 자책 속에서 그는 민수의 손을 잡을 수밖에 없었다.

정신과 상담은 힘든 과정이었다. 상담사의 질문에 대답하는 것조차 어려웠다.
“무엇이 당신을 이렇게 만들었나요?”
그는 차마 입 밖에 내지 못했다. 자신이 코인을 쫓다가 이렇게 됐다는 사실을 인정하기 싫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그는 아주 작은 목표를 세우기 시작했다. 스마트폰을 손에서 내려놓기, 매일 10분씩 산책하기, 그리고 커피 한 잔을 마시며 맛을 음미하기. 처음에는 아무것도 즐길 수 없었다. 산책길의 바람은 차갑기만 했고, 커피의 맛은 쓸 뿐이었다.

그러나 몇 달이 지나자 그는 아주 미세한 변화를 느꼈다. 바람의 상쾌함, 커피의 따뜻함, 친구의 진심 어린 말들이 조금씩 그를 깨웠다.


다시 찾은 균형

몇 년이 흐른 뒤, 준혁은 코인 차트에서 완전히 벗어났다. 삶은 여전히 평범했지만, 그는 이제 작은 것에서 만족을 찾았다. 회사에서 받은 월급, 동료와의 점심 시간, 주말의 산책.

“그때는 내가 왜 그랬는지 모르겠다.”
민수와의 술자리에서 그는 말했다.
“쾌락 뒤에는 고통이 따라오더라. 그걸 알면서도 멈출 수 없었어. 그런데 이제는 작은 즐거움이 더 좋다.”

민수는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그 작은 즐거움이 진짜야. 결국, 삶은 그런 거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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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훈은 차가운 새벽 공기를 맞으며 길 위에 서 있었다. 길은 끝없이 뻗어 있었고, 눈에 보이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세상의 소리는 전혀 들리지 않았고, 오직 발걸음 소리만이 어둠 속에서 메아리쳤다. 그가 왜 이렇게 걷고 있는지, 어디로 가고 있는지 자신도 알지 못했다. 그저 한 걸음, 또 한 걸음 내딛을 뿐이었다.

"왜 계속 걷고 있는 거지?"
지훈은 속으로 자신에게 물었다. 그의 머릿속은 복잡하고, 감정은 얽히기만 했다. 그는 그렇게 멈추지 않고 계속 걸었다. 발걸음이 조금씩 무겁게 느껴졌다. 이 길을 끝까지 걸으면 무엇을 찾을 수 있을까? 아니, 어쩌면 아무것도 찾지 못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멈출 수 없었다. 계속 나아가야만 했다. 그 길이 끝이 보이지 않더라도, 그가 멈춘다면 또다시 그 길을 돌아갈 수 없을 것 같았다. 그는 너무 많은 것을 놓쳐버린 기분이었다. 지나온 시간들, 그가 외면한 순간들이 모두 그를 추격하는 듯했다.

그는 그런 생각을 떨쳐내려 애썼다. "그냥 걸어가자. 뭐라도 찾아야 해."

그때, 발 앞에 웅덩이가 나타났다. 작은 물웅덩이였지만, 그 안에 비친 지훈의 얼굴은 이질적이었다. 물속에 비친 그의 얼굴은 어두운 하늘 아래서 일그러져 있었고, 눈빛은 흐릿하고 텅 비어 있었다. 마치 자신이 아니었던 것처럼.

"이게 나야? 왜 이렇게 보이지?"
지훈은 잠시 멈춰서 웅덩이를 바라보았다. 그 안에 비친 얼굴을 보며 그가 누구인지, 무엇을 하고 있었는지에 대해 깊은 의문이 들었다. 그는 자신을 알아보지 못하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왜 이렇게 텅 비었지?"
그의 목소리는 작고 떨렸다. 물속의 자신을 보며 그동안 놓쳐온 것들, 알지 못한 감정들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자신이 무언가를 잃어버린 것 같은 기분이었다. 그때, 머릿속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너는 도망친 거야. 다 놓쳐버리고, 그걸 잊으려고 계속 걸어온 거야."

지훈은 그 목소리가 자신에게 들린 것인지 아니면 주변에서 들려온 것인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그 목소리는 확실히 그의 마음속에서 울려 퍼졌다. 그는 눈을 감고 한숨을 내쉬었다.

"도망친 건가?"
그는 자신에게 물었다. 그동안 계속 걸어왔던 길은 진정 자신이 원했던 길일까? 아니면 두려움과 미련을 피하려고 달려온 길이었을까?

그의 손이 자연스럽게 웅덩이에 닿았다. 물은 차가운 느낌이었지만, 그 감각에 조금도 저항하지 않았다. 웅덩이에서 손을 뻗어 자신을 건드리며, 그는 물속에서 반사된 모습을 다시 한 번 들여다봤다. 이번에는 그가 잃어버린 것들이 떠올랐다. 지나친 시간들, 지나친 사람들, 감정들이 그를 떠밀고 있었다.

"그냥… 멈추면 안 될까?"
그는 다시 한 번 생각했다. 멈추면 모든 것이 나아질까? 혹은 더 이상 돌이킬 수 없는 일이 되어버릴까?

그는 물속에서 손을 떼며 고개를 들어 어둠 속을 바라보았다. 그때, 멀리서 한 줄기의 빛이 희미하게 반짝였다. 그 빛은 너무나 작은 점 같았지만, 그에게는 그 어떤 것보다 강하게 다가왔다. 그 빛을 따라가면, 어쩌면 이 길이 끝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저 빛만 있으면 괜찮을 거야. 내가 잘못한 것들이 다 사라질 수도 있겠지."

그는 한 걸음씩 그 빛을 향해 나아갔다. 길은 여전히 끝이 없었지만, 그 빛이 그를 이끌어줄 것처럼 느껴졌다. 그는 그 빛을 바라보며 또 한 걸음 내디뎠다.

"그래, 나아가자. 어쩌면 이 빛을 따라가면 내가 잃어버린 것을 다시 찾을 수 있을지도 몰라."

희미한 빛이 조금씩 커져갔다. 지훈은 그 빛을 향해 계속 걸었다. 무엇이 기다리고 있을지 모르지만, 이제는 멈추지 않겠다고 마음속으로 다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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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강남 아파트, 완벽함의 상징

강남의 어느 고급 아파트 단지. 멀리서 보면 그곳은 완벽해 보였다. 깔끔한 외관, 우거진 나무, 아이들이 뛰노는 놀이터. 사람들은 이곳을 바라보며 감탄했다.

"저기 사는 애들은 얼마나 행복할까?"


부모들은 "강남 키즈"라는 이름 아래 최고의 환경을 제공하며 아이들을 키웠다. 풍족한 경제적 지원, 우수한 학군, 끝없이 제공되는 기회들. 멀리서 보면 모든 것이 균형 잡히고 완벽해 보였다. 그러나 가까이서 들여다본다면, 그 균형 아래 감춰진 균열이 보였다.


2. 들여다보기: 재윤의 강박

재윤은 새벽 2시가 넘었는데도 책상 앞에 앉아 있었다. 형형색색의 펜으로 채워진 스케줄러에는 그날 해야 할 일들이 빼곡히 적혀 있었다. 그는 한숨을 쉬며 자신을 질책했다.

'이걸 못 끝내면 내일 수업에서 뒤처질 거야. 내가 더 잘했어야 했어.'


부모님은 재윤이 늘 열심히 한다며 자랑스러워했다. 하지만 그의 머릿속에는 끊임없이 "더 잘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울렸다.

다음 날 아침, 재윤은 머리가 아프다며 학원에 가기 싫다고 말했다.

"엄마, 나 그냥 좀 쉴래."


그러나 어머니는 걱정 어린 표정으로 말했다.

"재윤아, 조금만 더 힘내자. 이 시기를 넘기면 더 좋은 대학에 갈 수 있잖아."


그날 재윤은 마지못해 학원에 갔지만, 수업 중에도 두통은 가시지 않았다. 그의 강박은 가족 누구도 알아채지 못한 채 점점 더 깊어져 갔다.


3. 들여다보기: 혜원의 고독

혜원은 SNS 속에서 완벽한 모습을 유지하려 애썼다. 밝게 웃는 사진과 화려한 필터로 꾸민 게시물들은 그녀의 삶이 누구보다 즐겁고 완벽해 보이게 만들었다. 하지만 현실에서 그녀는 혼자 있는 시간이 늘어가고 있었다.

어느 날 저녁, 부모님과 함께 식사를 하던 혜원이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엄마, 요즘 나 그냥 좀 이상해. 뭔가 기분이 안 좋아."


아버지는 농담처럼 말했다.

"네가 왜? 너처럼 부족한 게 없는 애가 왜 그러는데? 그냥 기분 탓이겠지."


그 말에 혜원은 숟가락을 내려놓고 방으로 들어가 버렸다. 그녀는 방에 누워 천장을 바라보며 속으로 말했다.

'내가 이기적인 건가? 내가 문제인 건가?'


그녀의 고독은 아무에게도 털어놓을 수 없었다. 부모님조차 그것이 문제라고 느끼지 못했기 때문이다.


4. 들여다보기: 다연의 무기력

다연은 학교에서 돌아오자마자 침대에 누웠다. 책상 위에는 해야 할 숙제가 쌓여 있었지만, 손이 움직이지 않았다. 그녀는 방 안에서 가만히 누워 창밖을 바라보며 스스로를 비난했다.

'왜 이렇게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을까? 나만 왜 이럴까?'


어머니가 방문을 열고 말했다.

"다연아, 학원 갈 시간이야. 빨리 준비해."


하지만 다연은 눈을 감은 채 말했다.

"엄마, 나 그냥 오늘은 안 갈래."


어머니는 짜증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네가 이런 좋은 환경에서 공부할 수 있는 게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알아야지. 이러면 네 미래는 어떻게 하려고 그래?"


그 말은 다연에게 더 큰 무력감만 안겨주었다. 그녀는 스스로를 다그쳤다.

'엄마 말이 맞아. 내가 문제야. 내가 노력이 부족한 거야.'


하지만 그럴수록 몸은 더 움직이지 않았고, 마음의 무게는 더해만 갔다.


5. 완벽 속의 불완전함

멀리서 바라본 강남의 아이들은 모두 풍족하고 안정된 삶을 사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가까이서 들여다보면, 그들은 각자 다른 방식으로 균열을 겪고 있었다. 완벽한 환경은 그들에게 과도한 기대와 압박을 주었고, 그 아래에서 그들은 스스로를 탓하며 고립되어 갔다.

관찰자는 이들의 모습을 보며 질문했다.

우리는 아이들에게 무엇을 가르치고 있을까? 완벽함이라는 환경이 진정한 행복으로 이어지는 걸까? 아니면, 아이들에게 부족함을 견디는 힘을 빼앗고 불안을 심는 씨앗이 된 걸까?

부족함을 인정하고, 실패를 받아들이는 용기를 가르치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강함을 길러주는 길이 아닐까? 우리는 아이들을 위해 무엇을 바꿔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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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쁨을 나누지 못하는 이유, 그리고 여전히 열려 있는 마음

오늘, 정말 좋은 일이 생겼다. 기쁘다. 오랜 시간 기다려왔던 일이 드디어 잘 풀린 거다. 너무 기뻐서, 누구에게 이 기쁨을 전하고 싶었다. 한참을 스마트폰을 들여다보다가, 문득 깨달았다. 연락할 사람이 없다는 사실을. 기쁜 일을 나누고 싶었는데, 나누고 싶은 사람이 없다는 게 이렇게도 허전한 일일 줄은 몰랐다.

그 순간, 무언가가 툭 튀어나왔다. 왜 없지? 왜 내가 기쁜 일을 말할 사람이 없지? 그 질문이 계속 내 머릿속을 맴돌았다. 왜 이런 건지... 나는 천천히 생각을 되돌려봤다. 그리고 기억이 뚝 끊기듯 떠올랐다. 그 일이 있었다. 그 기억. 그 친구들.

몇 년 전, 나는 또 그런 기쁜 일이 있었고, 마찬가지로 기쁨을 나누고 싶어서 연락을 했다. “오늘 좋은 일이 있었어. 너희랑 나누고 싶어서.” 그때는 단순히 그랬다. 나의 기쁨이, 누군가와 나눌 수 있을 만큼 소중했으니까. 그런데 그 후, 그 친구가 내 소식을 어떻게 전했는지 알게 됐다. 그 친구는 내 기쁜 소식을 다른 사람에게 이렇게 말한 거다. “걔, 이번에 완전 잘난 척하는 거 봤어. 진짜 못 봐주겠다.”

내가 그 말을 들었을 때, 그 순간의 공허함은 말로 표현할 수 없었다. 정말, 나는 이렇게 순수하게 기쁜 일을 나누고 싶었을 뿐이었다. 그건 단순한 기쁨이었고, 그저 나누고 싶은 마음이었다. 그런데 그게 그렇게 변질될 줄은 몰랐다. 그렇게 내 마음이 다른 사람에겐 비웃음거리로 변할 줄은 몰랐다. 그런 배신감이 내 가슴에 파고들었을 때, 나는 알았다. 더 이상 그렇게 마음을 열면 안 된다고.

그 후로, 나는 점점 사람들과의 거리를 두기 시작했다. 기쁜 일이 있어도 나누지 않았다. 내가 마음을 열어봤자, 또 다시 그런 일이 일어날까 봐 두려웠다. 내가 내 기쁨을 공유하면, 결국 그 기쁨은 나를 비웃는 도구가 될 거라고, 그런 생각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더 이상 먼저 연락하지 않게 됐다. 누군가 내게 연락을 하면, 고맙다고 생각하고 대답했지만, 나 자신은 여전히 그 문을 닫아두었다. 내 마음이 다시 상처받지 않도록.

그게 그렇게 쉽지 않다는 걸, 오늘에서야 다시 느꼈다. 기쁜 일이 생기면, 사람에게 말하고 싶은 그 마음은 아직도 남아있었다. 그러나 그건 나누지 않겠다고, 그 문을 닫은 거였다. 그렇게 스스로 만든 벽 안에서 나는 혼자서만 기쁨을 간직했다. 그런데 그게 왜 이렇게 공허한 거지? 왜 이렇게 텅 빈 마음이 되는 거지?

나는 이제 사람을 믿지 않는다. 내가 마음을 내비치면, 그 마음이 어떻게 변할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그때처럼, 내가 주었던 마음이 다시 내 등을 치고 돌아오는 건 너무나 싫었다. 그래서 나는 더 이상 먼저 다가가지 않는다. 그래도 괜찮다고 생각했다. 나는 혼자서도 잘 살 수 있을 거라 믿었다. 다른 사람들의 마음을 기대하지 않아도 될 만큼, 내 자신에게 충실하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 기쁨을 나누고 싶었던 내 마음은 여전히 가슴속에서 숨을 쉬고 있었다. 결국, 나는 그 문을 닫았지만, 그 문을 다시 열고 싶은 마음도 여전히 있었다. 그때처럼 누군가 나에게 그 문을 두드릴 수 있을까? 다시 한번 내 마음을 열 수 있을까? 모르겠다. 아마도 내 문은, 아직도 조금 열려 있는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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