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진은 어린 시절부터 이상한 경험을 자주 했다. 그 경험은 그에게만 일어나는 일이었지만, 그는 그게 특별한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피곤할 때면 언제나 들리는 음악이 있었다. 그것은 보통 익숙하지 않은 밴드의 음악이었다. 어떤 곡들은 신나고, 어떤 곡들은 느리지만, 언제나 그 음악 속에서 사람들의 함성 소리가 함께 들렸다. 그 함성은 마치 공연장에서 수백 명, 아니 그 이상이 몰려 있는 듯한 큰 소리였다. 그 소리를 들을 때면, 마치 자신도 그 자리에 있는 듯한 기분이 들었고, 그 속에서 스며드는 에너지와 감정은 매우 강렬했다. 그런데 그 소리가 들리는 건 항상 극도로 피곤할 때였다. 정신이 흐릿해지고, 눈꺼풀이 무겁고, 마치 무의식과 의식의 경계가 무너진 듯한 상태에서만 들리곤 했다.
그 음악을 처음 경험한 건 어린 시절, 학교에서 돌아오는 길에 피곤하게 집에 들어가려고 할 때였다. 상진은 그때도 그냥 지나칠 수 있었다. 어차피 그건 누구나 피곤할 때 겪을 수 있는 환청일 테니까. 자신만의 상상이겠지, 하고 넘겨버렸다. 부모님에게도 말할 필요가 없었다. 그런데 어느 날, 그 경험을 너무 자주 하게 되자 상진은 엄마에게 이야기를 꺼냈다. "엄마, 나 가끔 되게 피곤할 때 이런 음악이 들려요. 사람들의 소리가 나는데, 공연장 같은 곳에서 들리는 소리 같아요."
엄마는 처음엔 웃으며 넘겼지만, 상진이 너무 진지하게 말하자 그때부터 걱정하기 시작했다. "상진아, 그런 소리가 들리면 안 돼. 그건 좀 위험할 수 있어. 정신적으로 문제가 생길 수도 있어." 엄마는 그 말을 하며 상진의 이마에 손을 얹었고, 상진은 그것이 무언가 심각한 일이 될 것만 같아 불안해졌다. 그때부터 상진은 그 경험을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기로 했다. 어차피 자신만 그런 거였으니까, 누구나 겪는 일일 테고, 그렇게 지나갈 일이라고 생각했다.
대학생이 되어서도 그런 경험은 계속됐다. 어느 날, 피곤함에 지쳐있던 상진은 친구에게 이 이야기를 꺼냈다. 친구는 처음에는 듣는 듯하다가, 점차 그 표정이 어두워졌다. "야, 그건 좀 이상한데? 그거, 귀신 들린 거 아냐?" 친구는 장난스럽게 말을 던졌지만, 상진은 그 순간 확실히 알았다. 사람들은 이런 걸 말하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는 걸. 친구의 표정에서 불편함이 묻어났고, 상진은 다시는 그런 이야기를 꺼내지 않기로 마음먹었다. 자신만의 일이었고, 어쩌면 남들은 이걸 이해하지 못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지만 그 음악은 계속 들려왔다. 상진은 점점 피곤함 속에서 그 소리의 존재를 알아갔다. 그 음악은 정말로 마치 공연장의 라이브 공연처럼 강렬하고, 그 함성 소리는 점점 더 선명해졌다. 가끔씩 그 음악이 너무 좋아서, 상진은 일부러 자신을 극도로 피곤하게 만들어 보기도 했다. 마치 그 음악을 더 깊이 느끼고 싶은 듯이, 자신을 그 상태로 몰아넣었다. 그 음악은 이제 상진의 일상에 자연스럽게 섞여들어갔다. 그는 그 음악을 너무 좋아했다. 그 순간은 어쩌면 일상에서 벗어나 자신만의 세계에 들어가는 듯한 기분을 주었고, 그것이 주는 감동과 황홀감은 상진에게 큰 의미가 됐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상진은 점점 현실의 무게에 눌려갔다. 나이가 들수록, 피곤함을 자주 느끼는 것 자체가 큰 부담이 되었다. 공부, 일, 사람들과의 관계, 그리고 계속해서 무엇인가 해야 한다는 압박이 그의 어깨를 무겁게 했다. 더 이상 그 음악에 빠져드는 시간이 많지 않았다. 일상을 유지하고 살아가기 위해선 그 음악을 멀리해야만 했다. 그래도, 그 음악은 가끔씩 그의 마음을 들뜨게 했다. 피곤한 하루 끝에 그 소리가 들릴 때면, 상진은 다시 한 번 그 세상에 빠져들 수 있었다.
그리고 어느 날, 그 음악의 정체를 알게 되었다. 상진은 그 음악을 들을 때마다 점점 선명해지는 어떤 무언가를 느꼈다. 처음에는 흐릿하고, 마치 실눈을 뜨고 먼 곳에서 봐야만 보이는 것처럼 그 그림은 흐려졌다. 그러나 점점 더 그 그림이 선명해졌다. 그 음악 속에서 들리는 목소리들, 소리의 파동들이 점점 더 뚜렷하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그것은 마치 모자이크처럼 흩어진 실루엣들이 점점 가까워지고, 하나의 형태를 이루기 시작한 듯했다. 어느 순간, 그 모습이 완전히 선명해졌다. 그것은 바로 자신이었다.
그때 상진은 깨달았다. 그 음악이, 그 함성 소리가 사실 다른 평행 우주에 있는 자신의 음악이었다는 것을. 그는 그 음악을 자신이 좋아했던 밴드 음악이라 생각했지만, 그것은 다르게 말하면, 그가 다른 세계에서 이룬 꿈의 모습이었다. 그 소리 속의 함성은 다른 세계의 상진을 향한 응원과 축하의 소리였다. 그것은 단지 음악이 아니라, 자신을 위한 응원이었다. 상진은 소름이 돋았다. 그럼 자신도 그렇게 할 수 있을까? 다른 세계의 자신처럼 무대에 올라 사람들에게 음악을 들려주고, 그들에게 감동을 주는 일이 가능할까?
상진은 그 순간 확신했다. 그가 그렇게 좋아했던 음악, 그가 동경했던 밴드의 라이브 공연, 그 모든 것이 사실 자신에게 주어진 기회였다. 그는 이제 그 기회를 놓치지 않기로 결심했다. 더 이상 피곤함을 두려워하지 않고, 그 음악을 현실로 만들기로 했다.
그렇게 상진은 본격적으로 음악을 시작했다. 악기를 다룰 줄 몰랐던 그는 처음엔 어려움을 겪었지만, 점차 음악에 대한 열정이 그를 이끌었다. 그는 연습을 거듭하고, 자신만의 음악을 만들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가 그토록 갈망했던 무대가 다가왔다. 상진은 200명의 관객이 모인 작은 공연장에서 첫 콘서트를 열기로 했다. 그가 만든 음악을, 그가 열심히 연습해온 노래를 사람들에게 들려주기로 한 것이다. 공연 당일, 상진은 떨리는 마음을 안고 무대에 올라섰다. 사람들의 시선이 그에게 집중되었다. 긴장감에 사지가 떨리고 입은 얼어붙었다. 하지만 단순히 긴장했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그는 엄청난 황홀감에 빠져 있었다. 그는 그 음악에 온전히 몸을 맡긴 것이다.
음악이 시작되자, 상진은 마치 다른 세계로 들어간 듯한 기분이 들었다. 그는 그 음악에 흠뻑 빠져들었고, 관객들도 그에게 빠져들었다. 그 음악 속에 담긴 열정과 에너지는, 그의 삶에서 한 번도 느껴본 적 없는 기분을 안겨주었다. 마지막 곡이 끝나자, 상진은 숨을 헐떡이며 무대에서 내려왔다. 관객들은 함성과 하게 뜨거운 박수를 보냈고, 상진은 그 박수 소리 속에서 자신이 정말로 이룬 것을 깨달았다.
그가 꿈꾸던 세계는, 결국 현실이 되었다. 이제 그는 더 이상 환청 속에서만 그 음악을 들을 필요가 없었다. 그는 그 음악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었고, 그로 인해 새로운 인생의 문을 열었다. 그의 인생 제 2막이 이제 막 시작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