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벨로나는 한때 쇠락한 항구 도시였다. 공장들이 떠나고 빈 건물만 늘어나던 그곳은, 어느새 첨단 기술과 창업의 중심지가 되어 있었다. 벨로나의 성공은 모두가 "기적"이라 불렀지만, 정작 이곳 사람들은 "우연의 산물"이라고 답하곤 했다.

모든 것은 작은 계기로 시작됐다. 벨로나에 처음 자리를 잡은 건, 몇몇 소규모 스타트업들이었다. 자금난에 허덕이던 창업자들은 임대료를 아끼기 위해 공용 사무실을 공유하며, 자연스럽게 서로의 프로젝트를 돕는 분위기가 만들어졌다.



공동체적 본능의 발현

벨로나의 특징은 경쟁보다는 협력이 자연스럽게 자리 잡았다는 점이었다. 처음엔 단순히 비용을 절감하기 위해 같은 공간을 나눠 썼던 사람들 사이에, 서로의 문제를 함께 해결하려는 문화가 생겨났다.

예를 들어, 초기 벨로나에 자리 잡은 한 팀, '노바스페이스'는 클라우드 기반의 파일 공유 서비스를 개발하고 있었다. 하지만 서버 보안을 강화하는 과정에서 어려움을 겪고 있었고, 이는 서비스 출시를 지연시키고 있었다. 그때 옆 팀에 있던 한 보안 전문가가 자신이 작업하던 프로젝트를 잠시 멈추고 이 문제를 해결해 주었다.
“경쟁자가 아니라 이웃입니다. 이웃이 어려울 땐 돕는 게 맞죠,” 그는 이렇게 말했다.

노바스페이스의 창업자 리안은 이런 도움을 받은 뒤, 이를 보답하고자 자신의 클라우드 기술을 기반으로 다른 팀의 데이터 문제를 해결해 주었다. 이러한 상호 협력의 분위기는 점차 벨로나 전체로 퍼져 나갔다.



'알타 연합'의 탄생

이후 벨로나의 가장 큰 특징 중 하나는 ‘알타 연합’이라 불리는 인적 네트워크였다. 이는 특정한 조직이나 규칙으로 형성된 것이 아니라, 벨로나의 초창기 기업가들이 자연스럽게 만든 관계망이었다.

알타 연합은 단순한 협력 관계를 넘어선 것이었다. 초기 스타트업들 간의 교류로 시작된 네트워크는, 시간이 지나면서 서로의 성공을 도왔고, 몇몇 창업자들은 회사를 성공적으로 매각하거나 상장한 후 다시 벨로나로 돌아와 다른 팀에 투자하거나 조언을 제공했다.

예를 들어, 초창기 벨로나의 한 기업이었던 ‘옵티맥스’는 물류 최적화 알고리즘을 개발하다가 큰 성공을 거두었다. 그 창업자들은 회사를 매각한 후, 자신들이 받은 도움을 잊지 않고 다시 벨로나로 돌아와 초기 단계의 스타트업들을 지원했다. 벨로나의 여러 성공 사례들 뒤에는 이처럼 직접적인 도움과 멘토링을 제공한 ‘알타 연합’이 있었다.

알타 연합은 한 기업의 성공이 끝이 아니라 시작이라는 철학을 중심으로 움직였다. 벨로나에서 성공한 기업들은 다시 신생 기업에 자금을 지원하거나 기술적 조언을 제공하면서, 마치 하나의 거대한 공동체처럼 성장했다.



기적의 비결

벨로나의 성공은 세계적인 주목을 받았다. 여러 언론과 연구 기관이 벨로나를 분석하며 “어떻게 이런 공동체적 정신이 가능했는가?”라는 질문을 던졌다. 사람들은 벨로나를 특별한 정책이나 시스템으로 만든 모델로 오해했지만, 정작 벨로나 사람들은 고개를 저었다.

“처음엔 단순히 우리가 가진 걸 나누는 게 즐거웠을 뿐이에요. 서로 도움을 주고받다 보니 자연스럽게 이런 문화가 만들어졌죠.”

벨로나는 잃어버렸던 ‘공동체적 본능’이 여전히 사람들 속에 남아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였다. 경쟁보다는 협력, 거래보다는 나눔이 중심이 되는 사회는 억지로 만들어질 수 없지만, 자유롭게 욕구를 분출할 수 있는 환경이 마련되었을 때 자연스럽게 나타날 수 있음을 벨로나는 증명했다.

알타 연합의 창업자 중 한 명이 한 말은, 벨로나의 정신을 가장 잘 대변했다.
“벨로나에서의 성공은 우리 개인의 성취가 아닙니다. 모두가 서로의 성공을 위한 조각을 만들었기에 가능했던 일이죠. 그리고 그 과정이 무엇보다 즐거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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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누군가를 죽이고 싶다고 생각해본 적 있나요?"

질문은 낯설지 않다. 오히려 대부분은 그렇다고 대답할 것이다. 도덕적이라 믿는 사람도, 폭력을 혐오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말이다. 그리고 그 대답은 대부분 이렇게 덧붙여진다.
“물론, 그런 생각을 했을 뿐이야.”

나는 이 질문을 내 친구에게 던졌다. 그의 대답은 솔직했다.



“요즘 어때?”
나는 빗소리를 들으며 조용히 물었다. 카페에 앉은 우리는 몇 년 만에 만났다. 그는 여전히 변호사로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지친 얼굴이 모든 걸 말해줬다.

“뭐, 늘 그렇지. 사람들 요구는 끝이 없고, 클라이언트는 나를 의심하고.”
그는 커피잔을 내려놓으며 씁쓸하게 웃었다.
“가끔은… 그냥 다 사라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

“누군가를 죽이고 싶다는 생각도?”
내 물음에 그는 잠시 나를 쳐다보다가, 피식 웃으며 말했다.
“솔직히? 한두 번은 아니야. 근데 생각만으로 끝나지 않나? 현실에서 그런 걸 실행할 사람은 없지.”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지만 속으로는 의문이 들었다. 정말일까?



며칠 후, 그의 이름이 인터넷에 떠올랐다.

“XX 변호사, 클라이언트와 불륜 의혹”
“XX, 과거 비리로 경찰 조사 받는다”

어디서 시작됐는지도 모를 이야기들이 소문처럼 퍼졌다. 처음에는 댓글 몇 개뿐이었지만, 곧 수백 개, 수천 개의 비난으로 바뀌었다.

“변호사라더니, 진짜 쓰레기였네.”
“이제야 본색을 드러냈구나.”
“정의는 살아 있다. 이런 인간은 망해야지.”

나는 그의 집을 찾았다. 초췌한 얼굴로 소파에 앉은 그는 마치 무너져가는 성처럼 보였다. 술병이 테이블 위에 널려 있었고, 그는 나를 보자마자 힘없이 웃었다.

“재미있지 않아?”
그는 내 시선을 피하며 말했다.
“사람들은 내가 뭘 했는지 아무것도 몰라. 그런데도 이렇게 나를 죽이려고 달려들잖아. 정의를 외치면서.”

나는 침묵했다. 그는 한숨을 쉬며 말을 이었다.
“사실, 내가 정말로 뭘 잘못했으면 좋겠어. 그래야 적어도 내가 이 상황을 이해할 수 있으니까.”

그는 술잔을 내려놓으며 쓴웃음을 지었다.
“사람들은 자신이 정의의 편에 있다고 믿으면 아무렇지도 않게 칼을 휘둘러. 그게 날 찌르는 줄도 모르고 말이지.”



나는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그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사람들은 정의를 믿지만, 그 정의가 얼마나 폭력적인지는 신경 쓰지 않는다.’

온라인 공간에서의 비난은, 스스로를 선한 사람으로 보이게 만드는 가장 쉬운 방법이었다. 누군가를 조롱하고, 비난하고, 그것이 옳다고 믿는 순간, 그들은 자신이 옳은 세상을 만드는 영웅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 행동은 결국 또 다른 누군가의 삶을 산산조각 내는 폭력이 되기도 한다.

“정의라는 이름으로 휘두르는 칼이 가장 위험한 법이지.”

그가 했던 마지막 말이 떠올랐다. 나는 그 말이 맞는지, 틀렸는지 답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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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수는 서울 외곽에서 작은 책방을 운영하고 있었다. 대학 시절 그는 문학을 사랑했고, 사람들과 책에 대해 이야기하며 살아가는 것이 꿈이었다. 하지만 현실은 그의 상상과 달랐다. 손님은 점점 줄어들었고, 동네는 재개발로 고급 주거단지로 변해갔다. 대형 서점과 온라인 서점의 공세 속에서 그의 책방은 과거의 유물처럼 느껴졌다.

진수는 변화를 인정하지 않았다. 그는 책방을 새롭게 꾸미거나, 다른 방향으로 사업을 확장하는 대신, 여전히 오래된 방식으로 운영했다. 아날로그 감성을 강조하며 손님들에게 직접 손으로 쓴 추천 글귀를 남기곤 했다. 하지만 그의 노력이 무색하게 손님은 계속 줄어들었고, 책방은 점점 더 고립되어갔다.

어느 날, 단골이었던 젊은 직장인 현수가 찾아왔다.
“사장님, 여기 정말 좋지만, 요즘 사람들은 전자책이나 온라인으로 책을 더 많이 사요. 혹시 온라인으로도 판매해 보실 생각은 없으세요?”
진수는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
“책은 직접 만지고, 냄새를 맡고, 페이지를 넘기면서 읽어야 제맛이지. 그건 변하지 않는 진리야.”

현수는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책 한 권을 사고 나갔다. 그날 이후로 현수마저 책방에 오지 않았다.



책방 운영이 점점 어려워지던 어느 날, 진수는 10년 만에 대학 동기 모임에 나갔다. 과거 책과 글쓰기를 좋아하던 친구들이 어떻게 변했을지 궁금하기도 했고, 속으로는 자신이 여전히 문학을 사랑하며 살아간다는 사실에 은근히 자부심을 느꼈다.

모임에서 그는 놀라움을 감출 수 없었다. 친구들은 모두 다른 모습으로 변해 있었다. 시를 쓰던 선배는 인기 유튜버가 되어 자신의 시를 낭송하고 있었고, 출판사에서 일하던 친구는 온라인 서점 플랫폼에서 새로운 사업을 시작하고 있었다.

“진수야, 너는 아직도 책방 운영하니?” 한 친구가 물었다.
“응, 똑같이 하고 있어. 그게 가장 책다운 방식이잖아.”
그러나 그의 말에 친구들은 미묘한 침묵을 흘렸다. 한 친구가 조심스럽게 말했다.
“진수야, 세상이 변하고 있어. 우리도 그 흐름 속에서 책을 사랑하는 방식이 달라질 수밖에 없어. 네 방식도 좋지만, 그것만 고집하다 보면 놓치는 게 많아.”

진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는 여전히 자신이 옳다고 믿었지만, 친구들의 성공과 자신이 처한 현실 사이의 괴리감은 그를 불편하게 만들었다.



모임에서 돌아온 진수는 책방으로 가던 길에 폐허가 된 옛 동네를 지났다. 그곳은 재개발로 사라진 오래된 건물들이 있던 곳이었다. 그는 문득, 자신이 이 책방을 운영하며 고집했던 방식이 과거의 잔재에 불과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날 밤, 그는 책방에 홀로 앉아 오래된 책들을 바라봤다. 책방은 여전히 그에게 소중했지만, 그 소중함을 지키기 위해서는 자신도 변해야 한다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했다.

그는 결국 결심했다. 다음 날 그는 작은 카메라를 사서 자신의 책방에서 책을 소개하는 영상을 찍기 시작했다. 예전처럼 손으로 쓴 글귀를 화면에 띄우고, 책의 매력을 직접 말로 전달했다. 처음엔 어색했지만, 점점 익숙해졌다.



몇 달이 지나자 진수의 책방은 온라인에서 점점 더 알려지기 시작했다. 그의 영상은 진심이 느껴진다며 사람들 사이에서 화제가 되었고, 책방의 문을 두드리는 사람들이 하나둘 늘어났다.

진수는 깨달았다. 세상은 끊임없이 변하고, 자신도 그 안에서 변해야 한다는 것을. 하지만 변한다는 것이 자신의 본질을 잃는 것은 아니었다. 그는 여전히 책을 사랑했고, 그것을 전달하는 방식만 달라졌을 뿐이었다.

그날 밤, 그는 강변을 걸으며 흐르는 물을 바라보았다. 물살은 끊임없이 변했지만, 강은 여전히 그 자리에서 흐르고 있었다. 그는 미소 지으며 중얼거렸다.
“변화 속에서도 나를 지킬 수 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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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수영은 대학을 졸업하고 첫 직장에 입사했을 때, 그곳에서의 분위기가 늘 마음에 들지 않았다. 마케팅 팀의 신입사원으로, 그는 항상 '효율성'과 '성과'라는 두 단어에 얽매여야 했다. 그 회사는 결과가 모든 것을 결정짓는 곳이었다. 성과가 좋지 않으면 사라질 수 있다는 사실을 매일같이 느끼며 수영은 점점 더 불편함을 느꼈다. 그는 고객과의 관계에서 중요한 건 숫자와 결과가 아니라, 진정성과 소통이라고 믿었다.

그의 상사인 정 차장은 그와 정반대였다. 차장은 항상 빠르고 정확하게 일을 처리하는 것을 중시하며, 사람들과의 관계보다는 성과를 강조했다.

"수영 씨, 이렇게 고객을 감동시키려고 애쓰면 시간이 너무 걸려요. 이러다 우리는 언제 목표를 달성할 수 있겠어요?"
차장은 몇 번이고 그에게 조언을 주었다. 수영은 차장의 방식이 너무 기계적이고 형식적이라고 생각했지만, 겉으로는 대수롭지 않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수영은 자신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들이 회사에서는 통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점차 깨달았다. 그는 고객과의 깊은 신뢰를 쌓는 것에 집중하며, 때로는 회사의 방침을 무시하고 그들만의 방식으로 일하려 했다. 그 방식이 결국 팀 내에서 갈등을 일으키게 되었다.

"수영 씨, 그런 방식은 이미 시대에 뒤떨어졌어요. 계속 고집하면 결국 회사에 피해를 줄 수밖에 없어요."
상사인 차장의 말은 날카로웠다. 결국, 수영은 퇴사를 결심했다. 그는 그때만 해도 자신의 방식이 옳다고 믿었다. 고객을 존중하는 일이 비효율적일지라도, 그것이 결국 더 큰 가치를 창출할 것이라고 확신했다.

하지만 창업을 시작한 후, 현실은 그리 녹록지 않았다. 수영은 고객의 진심을 담고자 했지만, 시장은 그가 생각한 것과 달리 '효율'과 '성과'가 중요시되는 곳이었다. 그는 몇 번의 실패를 겪고, 결국 그가 고수했던 방식이 시장의 현실과 맞지 않았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10년 후, 수영은 어느 중견기업의 마케팅 팀장으로 자리를 잡고 있었다. 그의 경력이 늘어날수록, 그는 과거의 경험을 되새기며 더욱 현실적인 접근을 중요시하게 되었다. 그가 맡고 있는 팀에는 신입사원 지호가 들어왔다. 지호는 수영의 젊은 시절을 그대로 닮은 사람처럼 보였다. 그는 고객과의 진정성 있는 관계를 강조하며, '성과'보다는 사람의 마음을 중시했다.

"팀장님, 우리가 이 캠페인을 하는 이유는 단지 매출을 올리기 위한 것만이 아니라, 고객들에게 진정으로 도움이 되는 가치를 전달하기 위해서죠."
지호의 말은 수영에게 과거의 자신을 떠올리게 했다. 그때는 자신도 그렇게 믿었었다. 하지만 수영은 이미 그런 사고방식이 회사의 목표와 맞지 않다는 것을 깨달은 후였다.

"지호 씨, 그렇게 생각하는 게 나쁜 건 아니에요. 하지만 우리 팀의 목표는 고객과의 관계를 맺는 것만이 아니라, 결국 결과로 이어져야 하잖아요. 효율성을 고려하면서도 그 진정성을 지켜야 해요."
수영은 지호에게 그런 말을 했지만, 지호는 여전히 고집을 꺾지 않았다. 그날 이후, 수영은 지호가 지나치게 '고객과의 관계'에만 집중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가 성과를 무시하면서까지 고객의 감정에만 의존하려는 태도는 수영에게 불편하게 느껴졌다.

그리고 몇 달 후, 팀은 큰 프로젝트에서 실패를 겪었다. 마케팅 전략이 효과를 보지 못하고, 회사는 큰 손해를 입었다. 그 결과, 지호는 자신의 방식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기 시작했다.

"팀장님, 제가 잘못했어요. 고객의 진심을 이해하려고 했지만, 그게 시장의 흐름과 맞지 않았던 것 같아요."
지호는 고백했다. 수영은 잠시 침묵을 지키며, 자신이 과거에 겪었던 갈등을 떠올렸다.

"지호 씨, 나도 한때는 그런 생각을 했어요.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깨달았죠. 진정성을 잃지 않으면서도, 시장의 흐름에 맞추는 것이 중요하다는 걸요. 그때의 고집이 지금의 내가 만든 거지만, 때로는 그 고집이 나를 어렵게 만들기도 했어요."

지호는 수영의 말을 깊이 새기며, 자신도 변해야겠다고 결심했다. 이제 그는 고객의 마음을 이해하는 동시에, 결과를 만들어낼 수 있는 방법을 찾아가기 시작했다.



수영은 창밖을 바라보며, 과거의 자신과 지호의 모습을 떠올렸다. 그는 고백했다.
"그때는 틀렸지만, 지금은 맞을 수 있어. 인생은 언제나 그때의 선택들이 결국 나를 이끌어가고 있다는 걸 깨닫는 순간이 온다."

그는 이제 더 이상 과거의 고집을 고수하지 않았다. 과거의 실수를 통해 얻은 교훈들이 지금의 자신을 만들어 주었다는 사실을 깨닫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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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유명 인터뷰 프로그램의 촬영장.
30대 초반의 청년이 무대 중앙에 앉아 있었다. 그는 이제 막 글로벌 스타트업을 상장시키고, 환경 문제를 해결하는 선구자로 인정받으며 수많은 사람들에게 영감을 주는 인물이 되었다. 인터뷰어가 질문을 던졌다.

"이제는 많은 사람들이 당신을 롤모델로 삼고 있습니다. 지금의 성공을 이룰 수 있었던 계기가 있다면 무엇일까요?"

청년, 정우는 잠시 머뭇거리더니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제가 중학생 때 아버지와의 대화가 제 인생을 완전히 바꿨습니다."



15년 전, 정우가 중학생이었던 어느 저녁.

정우는 방에서 문제집을 풀며 깊은 한숨을 내쉬고 있었다. 공부가 잘 되지 않아 짜증이 났다. 책상 위에는 몇 시간째 답을 못 찾은 수학 문제가 놓여 있었다. 그때 거실에서 TV를 보던 아버지가 방으로 들어왔다.

"정우야, 뭐 하고 있니?"
"공부해요. 근데 잘 안 풀려요."
아버지는 정우의 책상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말했다.
"잠깐 나랑 얘기 좀 할래?"

정우는 펜을 내려놓고 고개를 들었다. 아버지의 표정이 어딘가 진지했다. 두 사람은 책상 옆에 놓인 침대에 나란히 앉았다.

아버지가 입을 열었다.
"정우야, 네가 나중에 커서 꿈이 생길 거야. 그때 아빠가 네가 하겠다는 일을 반대할 수도 있어."
"왜요?"
"아빠니까. 아들이 실패하거나 힘들어지는 걸 보고 싶지 않으니까. 하지만 말이다, 정우야. 네가 정말 하고 싶은 일이 생긴다면, 그걸 끝까지 고집스럽게 해내는 사람이 됐으면 좋겠다."

정우는 뜻밖의 말에 놀라며 아버지를 쳐다봤다.
"근데 아빠가 반대하면 어떻게 해요?"
아버지는 미소를 지으며 정우의 어깨를 토닥였다.
"아빠가 반대해도 괜찮아. 그땐 네 마음을 믿고 나아가라. 아빠는 결국 네 편일 거니까."

그날의 대화는 어린 정우의 마음에 깊이 새겨졌다.



현재, 인터뷰장으로 돌아와서.

정우는 아버지와 나눴던 대화를 떠올리며 말을 이었다.
"아버지께서는 제가 하고 싶은 걸 반대하실 수도 있다고 하셨지만, 결국엔 제가 제 길을 가길 바라셨던 거죠. 그 말이 없었다면, 아마 저는 지금처럼 제 꿈을 위해 도전하지 못했을 겁니다."

인터뷰어는 감탄하며 물었다.
"그 대화가 당신을 그렇게까지 강하게 만들었다는 거군요."
"네, 그날 아버지의 한 마디가 제 인생의 방향을 정해줬습니다. 저는 제 꿈을 위해, 그리고 이 세상을 더 나은 곳으로 만들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다짐했죠."

그날 인터뷰가 방송되자, 많은 사람들이 정우의 이야기에 감동했다. 그리고 화면 너머로 그 인터뷰를 조용히 보고 있는 정우의 아버지가 있었다. 그는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끝까지 고집스럽게 해내라 했더니, 정말 잘 해냈구나, 내 아들."

그는 자신의 아들이 이룬 성취에 조용히 미소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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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철은 누구보다 정직했다. 사람들은 그를 대쪽같은 사람이라 불렀다. 그는 언제나 도덕을 내세우며 살았고, 그 어떤 타협도 하지 않았다.
“이기철 씨, 도덕적이시네요. 어려운 상황에서도 절대 손을 더럽히지 않으시죠?”
그의 이러한 태도는 업계에서 유명했다. 사람들은 그를 존경했지만, 동시에 의문을 품었다.
"그렇게 철저하게 살아서 어디까지 갈 수 있을까?"
그가 살아가는 방식이 불편하고 어려워 보였기 때문이었다.

돈을 벌 능력은 없었지만, 그는 언제나 다른 사람들을 도덕적인 기준으로 비판했다. “돈보다 중요한 게 있다.” 이렇게 말하며 가난에 시달리던 그는 가족을 위해 더 나은 미래를 꿈꾸며 살았다. 그러나 그는 그 누구보다 가난과 싸우고 있었다.

어느 날, 그에게 뜻밖의 제안이 들어왔다. 대기업에서 찾아온 고위직 변호사, 임 대표는 이기철을 잘 알고 있었다. 그가 업계에서 ‘도덕적인 사람’으로 유명하다는 것을, 그래서 그를 테스트해보려는 생각을 품고 있었다.
“이기철 씨, 우리가 이번에 하나의 큰 거래를 맡고 있습니다. 그런데 사업상 몇 가지 비밀스러운 일이 있어요. 혹시 우리가 이 거래를 원활하게 진행할 수 있도록 도와주실 수 있을까요?”
이기철은 직감을 느꼈다. 이 일이 그의 도덕적 기준에 어긋나는 일일 거란 확신이 들었지만, 그와 동시에 가족을 위한 절박함이 그를 흔들리게 만들었다.
“하지만 그것은...”
“우리는 돈을 줄 겁니다. 어쩔 수 없는 일이죠. 당신이 뭘 원하든, 가족을 위해서 선택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아닐까요?” 임 대표는 말을 돌려 그를 유혹했다.

그는 처음엔 강하게 거절했지만, 반복되는 압박에 결국 결정을 내렸다. “이번 한 번만이야. 가족을 위해 어쩔 수 없었어.”
이기철은 그런 생각으로 다시 한 번 손을 더럽혔다.



처음에는 단순한 일이었다. 그는 자신이 필요해서 그렇게 선택했다고 믿었다. 그리고 큰 돈을 벌게 되었다. 공과금도 해결되고, 아이들의 학원비도 문제없어졌다. 그가 하는 일이 세상에서 옳지 않다는 생각은 잠시나마 잊을 수 있었다. 하지만 점점 더 많은 유혹이 그를 찾아왔다.

그가 일을 맡고 나서부터 이상한 점을 느꼈다. 그를 '도덕적 기준'으로 삼고 도전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임 대표는 다시 찾아왔다.
“이기철 씨, 이번에 더 큰 거래가 있습니다. 당신이 했던 일이 무사히 진행되었죠. 그런데 이젠 더 중요한 일을 부탁드릴 수 있을까요?”
그는 갈등했다. 그의 도덕적 기준이 무너지면서 점점 더 많은 유혹이 그를 조종했다. "이번만, 이번만은 괜찮을 거야. 어차피 내가 선택한 거니까."

그는 다시 같은 길을 걸어가면서 점점 더 많은 타협을 했다.
“돈을 많이 벌 수 있어. 선택의 여지가 없다면,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하겠다.”
그렇게 그의 도덕성은 점차 사라졌다. 그가 생각했던 대로, 이기철은 결국 자기 욕망에 휘둘리며 더 큰 유혹에 빠져들었다.



그러던 중, 아내는 그를 향해 일갈했다.
“당신은 결국 자신이 원해서 그렇게 한 거잖아요! 가족을 위해서, 그런 말로 변명하지 마세요. 당신이 욕망을 따라가고 싶어서 그랬잖아요!”
그 말이 그의 심장을 찔렀다. 그는 답답한 마음에 큰 소리로 대답했다.
“너는 모르잖아! 세상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고!”
그러나 그 속에서도 점점 더 자신이 택한 길을 후회하기 시작했다. 자신이 너무 멀리 갔다고 느끼는 순간, 그는 깨달았다. 선택을 바꾸고 싶었지만 이미 너무 늦었다.



결국 이기철은 자신이 원했던 대로 세상에 서게 되었다. 그가 선택한 길은 누구보다 성공적이었다. 그는 이제 ‘대쪽 같은 사람’이라는 평판을 잃었고, 그를 칭송하던 사람들은 그를 비난하기 시작했다. 그는 더 이상 '도덕적인 사람'으로 살아갈 수 없었다.
"이기철, 너도 결국은 그런 사람이었어?"
주변 사람들의 비판이 그의 가슴을 짓눌렀다. 그는 단지 자신이 원했을 뿐이었다. 처음에는 가족을 위해 어쩔 수 없이 했다고 생각했지만, 결국은 자신의 욕망을 채우기 위한 선택이었다.

그는 과거의 자신을, 그리고 주변 사람들이 그를 바라보는 시선에 대한 후회와 죄책감을 느꼈다. 하지만 그는 이젠 그 누구의 말도 듣지 않았다. 그가 선택한 길은 너무 멀리 와버렸고, 그가 돌아갈 수 있는 길은 없었다.
“나는 어쩔 수 없는 상황에서 선택한 거야. 내 잘못이 아니야.”
그는 계속해서 자기 합리화를 하며, 진실을 외면했다.



그의 타락은 단지 그의 개인적인 변화에 그치지 않았다. 주변 사람들, 특히 그의 아내와 아이들에게도 큰 영향을 미쳤다. 아내는 그의 선택을 더 이상 이해할 수 없었고, 아들은 그를 멀리하게 되었다. 그는 더 이상 누구에게도 존경받지 않았다. 그가 잘못된 선택을 했다는 사실을 모두가 알게 된 순간, 그는 완전히 혼자가 되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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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훈은 서울 변두리의 아파트에 산 지 5년째였다. 매일 아침 엘리베이터를 타며 마주치는 이웃들과는 고개를 끄덕이는 정도의 인사도 나누지 않았다. 누군가 엘리베이터를 향해 뛰어오는 소리가 들리면 그저 손을 뻗어 문 닫힘 버튼을 눌렀다. “바빠서 그랬다”라고 자기합리화를 하면서도, 사실 그는 이웃과 어떤 교류도 하고 싶지 않았다. 관계를 맺는 순간, 거기서 비롯될지도 모르는 의무와 불편함이 싫었다.

어느 날, 직장에서의 과중한 업무와 인간관계에 지친 지훈은 결국 병가를 내고 휴직을 결정했다. 상사의 권유로 그는 오랜만에 고향 근처 시골마을에 사는 정애 할머니를 찾아가기로 했다. 휴대전화 알람 대신 새소리와 함께 깨어날 수 있는 몇 주간의 휴식이라면, 몸도 마음도 가벼워질 거라고 생각했다.

시골로 내려간 첫날, 정애 할머니는 환한 미소로 지훈을 맞았다. “얼굴이 반쪽이네, 우리 지훈이. 쉬러 온 건 참 잘한 일이다.” 하지만 마을은 그가 익숙한 도시와는 너무도 달랐다. 도착하자마자 마을 사람들이 할머니 집에 찾아와 자신을 소개하며 다가왔다. “서울서 온 친척분이라면서요? 어서 와요.” 지훈은 당황했다. 이곳 사람들은 필요 이상으로 친절했고, 그들에게 관심을 주고받는 것이 당연해 보였다.

며칠 후, 정애 할머니는 김장철이니 돕자고 했다. 지훈은 탐탁지 않았다. “마트에서 사 먹으면 되지 않아요? 굳이 이렇게 힘들게 해야 해요?” 정애 할머니는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김장은 혼자서 하는 게 아니라 같이 해야 맛도 나고 정이 들지. 그런 건 마트에선 못 사.”

김장날이 되자, 지훈은 억지로 따라 나섰다. 절임 배추를 나르고 양념을 버무리는 일은 그의 체력과 인내심을 금세 소진시켰다. 실수도 잦았다. 배추를 나르다 그만 양념통을 엎질렀을 때, 그는 얼어붙었다. 마을 사람들이 그를 나무랄까 두려웠다. 그런데, 예상과 달리 한 어르신이 웃으며 말했다. “젊은 사람이 그럴 수도 있지, 처음부터 잘하면 그게 더 이상한 거지.” 정애 할머니도 “다음엔 더 잘하겠지. 걱정 마라.”라며 등을 두드렸다.

그날 저녁, 지훈은 김장을 마친 후 마을 사람들과 갓 담근 김치에 수육을 곁들여 먹었다. 사람들은 서로 웃으며 고된 하루를 나눴고, 지훈도 덩달아 웃고 있었다. 도시에서는 느껴본 적 없는 따뜻함이었다. 그는 이 모든 과정이 이상하게도 만족스러웠다.

며칠 후, 한 마을 주민이 갑작스런 병원 방문으로 김장을 끝내지 못했다는 이야기를 들은 지훈은 자발적으로 나서서 돕겠다고 했다. “괜찮습니다, 제가 할 줄 모르는 것도 아니고요.” 그는 여전히 서툴렀지만, 진심을 다해 도왔다. 도움을 받은 주민은 눈물을 글썽이며 말했다. “정말 고마워요. 이런 일, 도시 사람들은 안 한다던데.”

도시로 돌아온 지훈은 여전히 회사를 다니고 있었지만, 그의 삶은 조금 달라져 있었다. 그는 동네에서 소소한 공동체 활동을 제안하며, 작은 모임을 꾸려보기 시작했다. 김치를 직접 담가보고 싶어 하는 몇몇 사람들을 모아 작은 김장 행사를 열었다. 대부분의 이웃들은 여전히 냉담했고, "그런 거 사 먹으면 편하지 뭐 하러 해요?"라며 고개를 저었다. 하지만 지훈은 혼자라도 그 전통을 이어가겠다고 다짐했다.

그는 김장을 마친 후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혼자선 대단한 걸 못 하겠지. 그래도 누군가는 시작해야 하지 않겠어?” 그는 작은 모임을 꾸준히 이어가며, 언젠가는 이 따스함이 더 많은 사람들에게 닿기를 기대했다.



서울로 돌아온 지훈은 일상에 다시 적응하려 애썼지만, 마음속에서 마을에서의 경험은 쉽게 지워지지 않았다. 도시의 빠른 속도와 피상적인 관계 속에서 그는 점점 외로움을 느꼈다. 마을에서의 따뜻한 김장 모임이 그리워졌고, 그 경험이 그를 움직이게 했다. 결국 그는 작은 모임을 제안하기로 결심했다.

“한 번만 해볼까?” 그는 자신에게 말을 걸며 일주일 후, 동네 사람들을 초대했다. 김장을 함께 하자는 얘기였다. 모임이 이루어질 공간은 그의 아파트 단지 내의 공동 정원이었다. 아파트가 밀집해 있는 동네에서, 사람들은 공공 공간에 거의 나가지 않았지만, 지훈은 그곳에서 작게나마 사람들을 모을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그는 주변 이웃들에게 전단지를 돌리며 김장을 하자고 말했다. “그냥 오셔서 돕기만 해도 좋습니다. 함께 나누는 시간이 필요해요.”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냉담하게 반응했다. “김장은 언제나 집에서 하죠. 굳이 왜 여기에 나가요?” “그냥 마트에서 사 먹으면 되지 않나요?” 이런 말을 들으며 지훈은 조금씩 마음이 상했지만, 계속해서 사람들에게 직접 말을 걸었다. 그들은 여전히 의심쩍고, 이따금은 비웃기까지 했다. “그래도 한번 해봐야지,” 지훈은 마음속으로 되뇌이며 기다렸다.

마침내 그날이 다가왔고, 예정된 시간에 모인 사람은 고작 네 명이었다. 지훈은 예상보다 적은 인원에 실망했지만, 그래도 시작했다. 그가 준비한 배추와 양념을 가져다 놓고, 사람들이 어색하게 서 있었다. 지훈은 그들에게 김장을 어떻게 하는지 간단히 설명하며, 각자 맡을 일을 나누었다. 그 순간, 한 명이 손을 흔들며 말했다. “솔직히 말하면, 그게 그렇게 재밌을지 모르겠어요. 저는 그냥 마트에서 사서 먹을래요.”

“그럴 수도 있죠,” 지훈은 웃으며 대답했다. “하지만 함께 하면, 뭔가 달라요. 고백하자면, 저는 이걸 한번 해보고 싶었어요. 다른 이유는 없고요, 그냥... 함께 하는 게 좋으니까요.”

그날 김장은 예상보다 더 오래 걸렸다. 사람들이 서로 조금씩 도와가며, 가끔은 웃고 떠들며 일했다. 김치가 양념에 버무려지는 동안, 지훈은 다른 사람들의 얼굴에서 처음에는 어색했던 표정이 점차 편안해지는 것을 느꼈다. “여기서 김장을 하는 기분, 이상하지만 재미있네요,” 한 사람이 말했다. “이렇게 큰 배추를 함께 나누는 것도 처음이에요.”

그 순간 지훈은 깨달았다. 김장 자체가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중요한 건 함께하는 시간과, 그 안에서 나누는 마음이었다. 마트에서 사서 먹는 김치도 좋지만, 함께 만든 김치에는 그 이상의 의미가 담겨 있었다.

김장이 끝난 후, 사람들은 저녁을 함께 나누며 이야기를 했다. 마치 정해진 듯 자연스럽게 분위기가 이어졌다. “다음에도 이런 거 해봐요,” 한 이웃이 말했다. “진짜, 혼자 할 땐 몰랐는데 이렇게 하니까 뭔가 달라요.”

지훈은 그들의 말을 듣고 마음속으로 웃었다. 그들이 모두 모여서 같은 일을 하게 되면, 그 안에서 새로운 방식으로 소통하고, 또 서로를 이해하는 기회가 생긴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는 처음으로 느꼈다. 혼자서 아무리 노력해도, 한 사람의 힘은 한계가 있지만, 여럿이 함께하면 뭔가 달라진다는 것을.

그 모임이 끝난 뒤, 지훈은 만족스럽게 집으로 돌아갔다. 비록 아직 소수였지만, 그날의 경험은 그에게 큰 의미였다. 그는 다시금 다짐했다. 자신이 작은 변화를 만들어가며, 언젠가는 더 많은 사람들이 이 따뜻함을 느낄 수 있을 것이라 믿었다.

"이제 시작이야," 지훈은 속으로 말했다. "기다릴 거야. 언젠가는 이 문화가 더 많은 사람들에게 퍼질거라 믿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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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12월 31일, 한서윤은 창밖을 바라보고 있었다. 흐릿한 겨울 하늘 아래 바람은 차갑게 불었고, 도로 위를 오가는 차들 사이에서 세상은 여전히 돌아가고 있었다. 그러나 그녀의 시간은 멈춰 있었다.

지난 이틀 동안 TV 화면에 각인된 숫자가 그녀의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179. 그리고 2.

사고 소식이 처음 전해졌을 때만 해도 그것은 단순히 뉴스였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며 그 숫자는 점점 더 무겁게 그녀의 마음을 짓눌렀다. 179명. 사람들의 이름도, 얼굴도 모르는 숫자였지만, 그 안에 담긴 무게를 그녀는 느낄 수 있었다. 사랑하는 이들을 잃은 가족들, 꿈을 이루지 못한 채 떠나간 사람들, 그들이 남기고 간 공허함.

그리고 2명. 살아남은 사람들. 그들은 무엇을 느낄까? 그녀는 그들의 목소리가 뉴스를 통해 전해지는 순간마다 마음 한구석이 찢어지는 듯했다.



서윤은 책상 위에 앉아 있었다. 노트북은 켜져 있었지만, 손은 움직이지 않았다. 회사에서 처리해야 할 일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었지만,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이 사고와 아무 상관도 없는 그녀였지만, 마치 그 비극이 자신의 삶을 침범한 듯한 기분이었다.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 그런데도 무언가를 해야만 할 것 같다.'

그녀는 공허하게 책상을 노려보다가, 한쪽 구석에 놓인 오래된 공책에 시선을 멈췄다. 몇 년 전 새해를 맞아 산 공책이었다. 대부분의 페이지는 여전히 비어 있었다. 그녀는 천천히 공책을 집어들고 펜을 꺼냈다.

처음에는 아무것도 적을 수 없었다. 손이 떨리고, 머릿속은 복잡했다. 그러나 몇 번이고 펜 끝을 종이에 대던 그녀는 결국 첫 문장을 적어 내려갔다.

"179+2. 이 숫자는 내게 무엇을 말하고 있는 걸까?"

그녀는 펜을 멈추고 한참 동안 그 문장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다시 펜을 움직였다.

"그 숫자는 내게 무력함을 가르쳐 주었다. 내가 아무리 애를 써도 이 세상의 비극을 바꿀 수 없다는 사실을. 하지만 또 다른 한편으로는 내게 질문을 던진다. 내가 살아 있다는 사실은 무엇을 의미하는 걸까?"

글을 쓰는 동안 서윤은 마음속 깊은 곳에 숨겨져 있던 슬픔이 펜 끝으로 흘러나오는 것을 느꼈다. 그녀는 자신도 모르게 계속해서 글을 적어나갔다.

"나는 이 숫자를 기억하겠다. 179명의 삶과 2명의 생존을 잊지 않겠다. 이 공허함 속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은 그들을 기록하고, 기억하는 것이다."



그날 이후, 서윤은 매일 글을 쓰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자신이 느끼는 무기력과 공허함에 대해 썼다. 그러다 차츰 사고로 희생된 사람들에 대한 상상을 시작했다. 그들의 삶, 그들의 가족, 그리고 그들이 남기고 간 흔적들.

글을 쓰는 동안 그녀는 자신의 상처가 조금씩 치유되는 것을 느꼈다. 그녀가 느꼈던 무기력함은 이제 희망으로 바뀌고 있었다. 누군가를 기억하는 일, 그 기억을 통해 세상을 더 나은 곳으로 만드는 일이 비록 작더라도 결코 의미 없는 일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2025년 1월 1일, 서윤은 다시 공책을 펼쳤다. 창밖으로 새해의 첫 빛이 비치고 있었다. 그녀는 한참 동안 펜 끝을 바라보다가 마지막 문장을 적었다.

"179+2. 그 숫자는 이제 나의 이야기가 되었다. 슬픔과 공허 속에서도 살아가야 한다는 이유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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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재는 누구보다 평탄한 삶을 살고 있었다. 안정된 직장, 나쁘지 않은 연봉, 무난한 인간관계. 모두가 꿈꾸는 삶이었지만, 그에게는 하루하루가 끝없는 공허함이었다. 매일 똑같은 아침, 똑같은 일, 똑같은 저녁. 친구들과의 술자리나 여행도 더 이상 그를 설레게 하지 못했다.

어느 날, 민재는 우연히 유튜브에서 ‘기억에 남는 하루를 만드는 법’이라는 영상을 보게 됐다. 그 안에서 강사는 이렇게 말했다.
“사람은 고통을 통해 기억에 남는 경험을 만들어냅니다. 편안한 하루는 쉽게 잊혀지지만, 불편한 하루는 오래 기억되죠. 적당한 불편함이 삶을 더 풍요롭게 만듭니다.”

그 말을 들은 민재는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졌다. ‘내 삶에서 고통이란 무엇일까?’

그는 그날부터 작은 실험을 시작했다. 매일 아침 6시에 일어나 차가운 물로 샤워를 했다. 처음에는 몸이 얼어붙는 것 같아 괴로웠지만, 샤워를 마치고 나면 묘한 상쾌함이 몰려왔다. "이건 괜찮은데?" 민재는 고개를 끄덕였다.
다음으로 그는 달리기를 시작했다. 처음엔 한 블록을 뛰는 것조차 버거웠다. 다리가 뻐근하고 폐가 터질 것 같았지만, 땀이 흐를 때마다 묵직한 생각들이 씻겨 내려가는 듯했다. 민재는 달리기 끝에 공허 대신 성취감을 느끼기 시작했다.

시간이 지나자 민재는 자신의 일상에도 ‘적절한 고통’을 더했다. 엘리베이터 대신 계단을 이용하고, 퇴근 후에는 좋아하는 책을 읽으며 스스로 정한 독서 노트를 썼다. 쉬운 책이 아니라, 머리를 쓰게 만드는 철학서나 인문학 서적이었다. 그 과정은 어렵고 힘들었지만, 책 한 권을 끝낼 때마다 그는 마치 산을 넘은 듯한 충만함을 느꼈다.

주말엔 봉사활동을 시작했다. 시설에서 고된 일을 돕는 건 육체적으로 피곤했지만, 다른 사람들에게 작게나마 도움이 된다는 사실이 그의 마음을 묵직하게 채웠다. 이 모든 활동은 그를 지치게 했지만, 그 지침 속에는 묘한 활력이 있었다.

친구들은 그의 변화를 의아해했다.
“굳이 그렇게 힘든 일을 할 필요가 있어? 그냥 편히 쉬면 안 돼?”
하지만 민재는 웃으며 말했다.
“몸이 힘들면 이상하게 마음은 가벼워지더라. 그게 더 나아.”

그는 이제 권태로운 일상을 벗어나, 하루를 살아있다고 느끼기 시작했다. 아침에 차가운 물을 맞을 때, 숨이 가쁘도록 뛰고 땀을 흘릴 때, 고된 일을 끝내고 나서 드는 성취감을 통해 민재는 깨달았다.

“고통은 삶의 무게를 잠시 잊게 해주는 가장 순수한 방식일지도 몰라.”

이제 민재의 하루는 여전히 고통으로 가득 차 있었다. 하지만 그것은 그가 스스로 선택한 고통이었다. 그는 더 이상 권태로운 일상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 권태를 이겨낼 무기를 손에 쥔 듯한 기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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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장: 민호와 세연

민호는 언제나 밝고 단단한 아이였다. 부모님이 운영하는 작은 식당에서 돕느라 늘 바빴지만, 그는 친구들에게 누구보다 잘 웃어주었다. 가끔 낡은 운동화를 신고 있어도, 민호의 자신감은 그의 겉모습과는 상관없어 보였다.

세연은 달랐다. 그녀는 누구나 부러워할 만한 환경에서 자랐다. 아파트 창밖으로 보이는 강남의 스카이라인은 그녀의 배경이었고, 부모님은 세연의 학업과 장래를 위해 무엇 하나 아끼지 않았다. 하지만 완벽하게 보이는 세연의 마음속에는 늘 알 수 없는 불안감이 자리 잡고 있었다.

“왜 민호 같은 애는 늘 당당하지? 가진 것도 없으면서…”

세연은 민호가 웃고 떠드는 모습만 봐도 어딘가 불편했다. 민호가 자기가 이룬 것도 없는 주제에 주목받는 게 싫었고, 자신이 가졌지만 채우지 못한 것을 민호가 가진 듯한 느낌이 들었다.



2장: 연극 대회 준비

학교에서 반 대항 연극 대회가 열리기로 했다. 민호가 팀장이 되었고, 세연은 그 사실을 듣자마자 속으로 코웃음을 쳤다.
“왜 민호가 팀장이야?” 세연은 친구들에게 물었다.
“민호가 제일 열심히 하잖아. 다들 좋아하고.”

세연은 불만스러웠다.
“그냥 다들 만만하니까 따라가는 거겠지.”

연극 회의가 시작되었다. 민호는 친구들의 의견을 하나하나 받아들이며 대본 아이디어를 정리했다.
“우리 연극은 평범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해보자.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내용이면 좋을 것 같아.”

세연이 손을 들었다.
“민호야, 그거 너무 뻔하지 않아? 관객들이 재미없어할 것 같은데.”

민호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럼 세연이는 어떤 아이디어가 있어?”

세연은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글쎄. 난 민호처럼 뻔한 생각은 안 할 것 같은데.”

주변 친구들이 당황한 기색을 보였지만, 민호는 그저 웃으며 말했다.
“좋아. 더 좋은 아이디어 있으면 언제든 말해줘.”



3장: 세연의 결핍

세연은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혼자 생각에 잠겼다.
“나는 왜 이렇게 민호가 싫을까?”

그녀는 민호를 보며 자신도 모르게 위축되는 기분이 들었다. 세연은 완벽한 성적표와 우아한 집안을 자랑할 수 있었지만, 자신이 민호처럼 다른 사람을 진심으로 즐겁게 해줄 수 없다는 사실이 신경 쓰였다. 그녀가 민호를 무시하는 말을 할 때마다, 주변에서 들려오는 미묘한 침묵은 그녀를 더욱 불편하게 만들었다.

그녀의 부모는 늘 말했다.
“세연아, 너는 1등이어야 해. 세상은 네가 약해지는 걸 허락하지 않아.”

완벽해야 한다는 압박감 속에서, 세연은 웃음조차 계산하며 살았다. 그래서 민호 같은 아이가 더 이해되지 않았다. 가진 것도 없는 민호가 왜 그렇게 당당한지, 세연은 알 수 없었다.



4장: 갈등의 폭발

연극 연습이 진행될수록 민호와 세연의 갈등은 점점 깊어졌다. 민호는 늦은 시간까지 남아 친구들의 연기를 도왔고, 모두가 그의 노력에 점점 마음을 열었다. 하지만 세연은 점점 소외감을 느꼈다.

어느 날, 연습 도중 민호가 친구들에게 격려의 말을 전하고 있을 때, 세연이 큰 소리로 말했다.
“민호야, 너 좀 너무 우쭐대는 거 아니야? 솔직히 네가 잘해서 연극이 잘 되는 게 아니잖아. 우리가 맞춰주는 거지.”

교실 안이 조용해졌다. 민호는 잠시 말을 멈췄다가 조용히 물었다.
“세연아, 내가 뭘 잘못했어?”

그러나 세연은 멈추지 않았다.
“잘난 척하지 마. 가진 것도 없는 주제에.”

순간, 교실 안은 더 깊은 침묵에 휩싸였다. 민호는 세연의 말을 조용히 받아들였다.
“그래, 나는 가진 게 많지 않아. 하지만 난 지금 이 순간이 좋아. 너한테는 별로 중요하지 않을지 몰라도, 나한테는 정말 소중한 순간이야.”

세연은 민호의 눈빛을 보고 순간적으로 흔들렸다. 하지만 입에서는 또다시 후회할 말이 나왔다.
“어차피 너는 평생 이런 걸로 만족하며 살겠지. 별 기대할 것도 없으니까.”

민호는 더 이상 대꾸하지 않았다. 주변 친구들도 아무 말 없이 고개를 돌렸다.



5장: 후회와 깨달음

그날 밤, 세연은 집에서 침대에 누워있었다. 민호에게 했던 말들이 자꾸 떠올랐다.
“왜 그런 말을 했지? 그 애는 나한테 잘못한 게 없는데…”

민호는 자신이 가진 것이 적어도 그것에 대해 부끄러워하지 않았고, 오히려 자신의 삶을 즐길 줄 알았다. 반면, 세연은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이 오히려 자신을 옭아매는 느낌이었다.

“민호가 나를 미워한 적은 없는데, 왜 나는 그 애를 그렇게 미워했을까?”

세연은 처음으로 자신의 불안을 마주했다. 완벽해야 한다는 압박, 늘 비교당하며 자랐던 자신의 모습을.



6장: 다른 길

연극 대회는 민호가 이끈 반의 승리로 끝났다. 민호는 친구들과 기쁨을 나눴고, 세연은 뒤에서 그 장면을 바라봤다. 그녀는 무언가를 말하고 싶었지만, 그럴 용기가 나지 않았다.

졸업 후, 민호와 세연은 서로 다른 길을 걸었다. 민호는 부모님의 가게를 이어받아 행복하게 살았고, 세연은 끊임없이 성공을 쫓았다.

그러나 가끔, 세연은 민호를 떠올렸다. 자신이 미워했던 것은 민호가 아니라, 민호가 가진 결핍 없는 당당함이었다는 것을 이제야 깨달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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