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픔은 전염병이다. 분노는 공동체의 해악이다. 불안은 생산성을 저해한다."
이 문구는 거리마다 붙어 있는 정부의 공식 슬로건이었다.
인공지능 기술의 발전으로 사람의 감정을 판독할 수 있는 "에모트렉 시스템"이 개발되면서, 감정은 더 이상 사적인 것이 아니었다. 사람들의 표정, 심박수, 목소리의 미세한 떨림까지 분석하여 AI는 감정을 실시간으로 수치화했다. 초기에는 우울증 예방, 범죄 방지, 사회적 안정성을 위한 긍정적인 목적으로 사용되었다.
그러나 부정적 감정이 사회의 생산성을 저해한다는 논리 아래, 곧 부정적 감정을 억제하는 법령이 통과되었다. 일정 기준 이상의 슬픔, 불안, 분노를 보이는 사람들에게는 감정 조절 약물이 강제로 투여되었다. 더 이상 울거나 화를 내거나 좌절하는 모습은 어디에서도 볼 수 없었다.
그렇게 사회는 조용히, 완벽히 작동하는 듯 보였다.
1. 감정 없는 세상
주인공 하린은 매일 아침 거리를 걸으며 거리 곳곳에서 반짝이는 감정 모니터를 지나간다. 모니터는 지나가는 사람들의 감정 상태를 실시간으로 보여준다.
- 긍정적 감정: 82%
- 부정적 감정: 0%
- 중립적 상태: 18%
도시는 밝고 조용하며, 모든 사람은 항상 웃고 있었다. 그들은 슬픔을 느끼지 않았다. 화를 내지도 않았고, 불안을 표현하지도 않았다. 하린 역시 자신이 슬프거나 좌절했던 기억이 잘 떠오르지 않았다.
그녀는 매일 아침 직장에 나가 일하고, 점심을 먹고, 동료들과 웃으며 대화했다. 하지만 밤이 되면 이유를 알 수 없는 공허감에 사로잡혔다. 감정 조절 약물이 그녀의 부정적 감정을 억눌렀지만, 그 빈자리는 설명할 수 없는 결핍으로 채워졌다.
"나는 행복한 건가?" 그녀는 자신에게 묻지만, 이 질문조차도 곧 약물의 효과로 사라져 버린다.
2. 잃어버린 인간다움
에모트렉의 핵심 개발자 중 한 명인 지우는 이 기술의 초기 도입에 참여했었다. 그는 부정적 감정을 억제하면 사회가 더 평화롭고 조화롭게 운영될 것이라고 믿었다.
그러나 기술이 도입된 지 몇 년이 지난 지금, 그는 자신이 창조한 세상이 이상하게 느껴졌다.
"사람들은 더 이상 싸우지 않는다. 하지만 더 이상 서로를 진심으로 이해하려 하지도 않는다."
지우는 과거 사람들이 부정적인 감정을 통해 서로 연결되었던 순간들을 떠올렸다. 친구가 슬퍼할 때 옆에서 위로했던 기억, 분노 속에서 함께 불의에 맞섰던 경험, 좌절 속에서도 함께 희망을 찾아갔던 시간들.
지금의 세상에서는 그런 일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았다. 사람들은 웃었지만, 그 웃음 속에는 진정성이 없었다. 연대감, 공감, 그리고 자기 성찰 같은 인간다움의 중요한 요소들이 서서히 사라지고 있었다.
3. 감정의 폭발
어느 날, 하린은 출근길에 감정 모니터가 이상 반응을 표시하는 것을 목격한다. 모니터는 한 남성의 데이터를 비추고 있었다.
- 부정적 감정: 67%
경고: 기준 초과! 감정 조절 약물 투여 필요!
남성은 갑자기 거리에서 울기 시작했다. 그의 울음소리는 금세 집행관들을 불러들였고, 그들은 남성을 붙잡아 약물을 투여했다. 하지만 그 순간 하린은 무언가 깨달았다. 울고 있는 남성의 얼굴에는, 슬픔 속에서도 진짜 살아 있다는 느낌이 담겨 있었다.
그녀는 그날 이후 점점 자신의 감정을 의심하기 시작했다.
"나는 정말로 행복한 걸까? 아니면 그냥 약물 때문에 행복한 척을 하고 있는 걸까?"
4. 감정의 해방
지우는 결국 에모트렉 시스템의 부작용을 폭로하기로 결심한다. 그는 몇몇 동료들과 함께 시스템의 메인 서버를 해킹해 부정적 감정을 억제하는 코드를 제거했다. 이 사건으로 인해 사회 전체의 감정 조절 시스템이 붕괴되었다.
부정적 감정을 느끼지 못하도록 억눌렸던 사람들은 처음으로 자신의 감정을 온전히 마주하게 되었다.
5. 혼란 속에서
시스템이 사라진 세상은 처음엔 혼란 그 자체였다. 사람들이 오랫동안 억눌러왔던 부정적 감정들이 한꺼번에 폭발했다. 누군가는 슬픔에 빠져 울부짖었고, 누군가는 오랜 분노를 참지 못해 싸움을 벌였다.
하린도 예외는 아니었다. 그녀는 자신이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감정들에 휘둘리며 혼란스러워했다.
"이게 슬픔이야? 아니, 분노? 도대체 왜 이런 기분이 드는 거지?"
감정의 스펙트럼을 처음 마주한 사람들은 그것을 구분하지 못하고 당황했다. 그들은 부정적 감정을 어떻게 다뤄야 할지 알지 못했다.
에필로그
몇 년이 지난 후, 도시는 점차 안정을 되찾았다. 사람들은 다양한 감정을 받아들이고, 그것을 표현하고, 다스리는 법을 배워가고 있었다.
하린은 창문을 열고 하늘을 바라보았다. 어딘가에서 누군가가 웃고, 또 다른 누군가는 울고 있었다. 그녀는 생각했다.
"감정은 혼란스러울 때도 있지만, 그것이 바로 인간이라는 증거야. 우리는 결국 적응하게 될 거야. 부정적인 감정도 결국 우리를 성장하게 만드는 힘이 될 테니까."
세상은 완벽하지 않았지만, 이제 사람들은 스스로 살아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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