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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현은 50대 초반, 스스로를 특별히 똑똑하거나 뛰어난 사람이라 생각한 적이 없었다. 그의 인생은 그저 주어진 상황에서 최선을 다하는 반복의 연속이었다. 전공도 직업도 일관성이 없었다. 대학에서는 문학을 전공했지만, 졸업 후 처음 일한 곳은 유통회사였다. 이후 IT 회사로 이직했고, 한동안 소규모 제조업체에서 일하기도 했다. 그때그때 주어진 선택지 중에서 가장 나아 보이는 길을 택했을 뿐이었다.

도현은 항상 "현재를 충실히 사는 사람"이었다. 그는 미래를 꿈꾸거나 목표를 세우기보다는, 눈앞의 일을 끝까지 해내는 데 집중했다. 단순히 주어진 일을 처리하는 데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하면 더 나은 방법으로 할 수 있을까?”를 끊임없이 고민했다. 그렇게 하루하루 반복적으로 노력한 시간이 쌓여, 그에게는 남들과 다른 무기가 하나 생기게 되었다.

그 무기는 바로 축적된 경험에서 비롯된 통찰력이었다.


1. 양이 쌓여 질이 바뀌다

도현은 늘 실패와 실수를 통해 배웠다. 그는 "이건 왜 실패했을까?"를 생각하고, 과거의 경험과 비교하며 하나씩 분석했다. 단순히 '앞으론 더 잘해야지'라는 식의 피상적인 결론으로 끝내지 않았다. 그는 자신이 해온 모든 일을 마치 퍼즐 조각처럼 정리하고 연결하며 패턴을 찾아갔다.

시간이 지나면서 도현은 단순히 일을 '잘하는' 사람을 넘어, 현상을 압축적으로 설명하고, 복잡한 문제를 풀어서 이해시키는 능력을 갖추게 되었다. 예를 들어, 직장에서 회의 중 누군가 막연하게 불편함을 느끼거나 비효율을 지적할 때, 도현은 그것을 한 문장으로 정리하곤 했다.

"결국 문제는 우리가 고객을 이해하지 못한 데서 비롯된 거예요. 고객은 가격이 아니라 신뢰를 사고 싶어 하거든요."

또는 복잡한 상황을 쉽게 설명해 주었다.

"이걸 어렵게 생각할 필요 없습니다. 우리가 지금 해야 할 건 세 가지입니다. 첫째, 데이터를 정리하고, 둘째, 고객 피드백을 받고, 셋째, 피드백을 반영하는 겁니다."

도현의 통찰력은 똑똑함이나 단순히 정보를 많이 아는 것과는 달랐다. 그것은 오랜 시간 동안 그가 직접 경험한 실패와 성공, 그리고 그 안에서 얻은 깨달음의 축적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2. 나누는 삶

도현은 혼자만 잘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그는 자신이 배운 것을 항상 주변 사람들과 나누었다. 동료가 어려움을 겪으면, 그는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간단히 해결책을 제시했다. 하지만 그의 조언은 단순히 지시처럼 들리지 않았다.

"내가 이런 상황을 겪었을 때는 이렇게 해봤어. 그런데 이건 나한테 맞았던 방법이고, 너한테도 꼭 맞는 방법인지 알 수는 없어. 다만 이렇게 생각하면 도움이 될 수도 있을 것 같아."

그는 자신의 경험을 강요하지 않았다. 대신 상대방이 스스로 고민하고 답을 찾을 수 있도록 도왔다. 덕분에 그의 주위에는 항상 사람들이 몰렸다.

도현은 이렇게 말하곤 했다.
"내가 특별히 뛰어난 사람이라서 이 자리에 있는 게 아니야. 그냥 내가 지나온 길에서 배운 걸 꾸준히 정리했을 뿐이야."


3. 결국 축적이 초격차를 만든다

도현이 50대가 되었을 때, 그의 이름은 업계에서 작은 레전드로 통했다. 그는 여전히 스스로를 대단한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의 동료들은 입을 모아 말했다.

"김 과장은 문제의 본질을 꿰뚫는 능력이 있어. 설명도 정말 명쾌하고."
"아니, 김 과장한테 물어보면 그냥 답을 알려주는 게 아니라 왜 그런 답이 나오는지를 알려줘. 그게 진짜 차이야."

어느 날, 한 후배가 그에게 물었다.
"선배님은 어떻게 그런 통찰력을 가지신 거예요? 특별한 공부를 하신 건가요?"

도현은 잠시 생각하다가 이렇게 답했다.
"특별한 건 없어. 그냥 내가 살아온 시간들이 나한테 가르쳐준 거야. 매일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했더니, 어느 날 보니까 내가 실패에서 배운 것들이 쌓여서 이런 식으로 보이기 시작하더라고."


도현이 이룬 초격차는 천재성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시간, 실패, 노력의 축적이 만들어낸 결과였다. 그는 뛰어나게 똑똑하지 않았고, 특별히 목표 지향적이지도 않았다. 하지만 매 순간 현재에 충실했고, 모든 실패에서 무언가를 배웠으며, 배운 것을 나누며 함께 성장했다.

그는 단순히 성공한 사람이 아니라, 살아온 시간 속에서 깊이 있는 통찰을 얻은 사람이었다. 그리고 그의 삶은 말해주고 있었다.

"큰 목표를 향해 달리지 않아도 괜찮다. 그저 오늘을 살아가며 경험을 쌓다 보면, 결국 그 경험들이 너를 특별하게 만들어 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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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훈은 회사에서 ‘눈치가 빠른 직원’이었다. 그는 오래전부터 조직의 룰을 깨닫고 그 안에서 움직이는 법을 배웠다. 회사에는 보이지 않는 라인이 있었다. 누구를 따라야 하고 누구에게 잘 보여야 승진의 기회가 오는지, 누구와 친하게 지내면 불이익을 피할 수 있는지. 지훈은 선배들에게 배운 그대로 움직였다. 그 룰은 그에게 확실한 안전망이었고, 그는 그걸 믿었다.

회의에서는 팀장의 눈치를 살피며 고개를 끄덕였고, 팀장이 말하면 누구보다 빨리 메모를 했다. 중요한 결정 앞에서 그는 묻지도 따지지도 않았다. 상사가 말하는 방향이 곧 정답이었고, 굳이 나서서 일을 복잡하게 만들 필요는 없었다.
“괜히 튀면 손해다. 지금처럼만 가면 나도 팀장 정도는 되겠지.”

그렇게 지훈은 실수를 피했고, 팀장의 신임도 어느 정도 얻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회사 분위기가 조금씩 바뀌고 있었다. 결과를 중요시하는 문화가 도래했고, ‘라인’이라는 것도 이전처럼 견고하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지훈은 믿고 따르던 선배가 해고당하는 모습을 보게 되었다.

그 선배는 지훈이 배우고 따라왔던 룰의 상징이었다. 누구보다 사람을 잘 챙기고, 조직에 충성했으며, 보이지 않는 회사 내 권력 구조를 정확히 파악하고 움직였던 사람. 하지만 그런 선배에게 회사는 냉정했다.
“회사의 방향성이 바뀌었으니까요. 이제는 실적으로 증명해야죠.”

그 말을 듣는 순간, 지훈은 어지러움을 느꼈다. 자신이 믿어왔던 룰은 한순간에 무너졌고, 그는 새로운 방향을 찾아야 했다. 하지만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무엇을 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반면 강민은 처음부터 다른 룰을 따랐다. 그에게는 단 하나의 기준이 있었다.
‘일을 잘해야 한다. 그리고 일을 잘하려면 소통하고 배우며 끊임없이 피드백을 구해야 한다.’

첫 기획서가 망했을 때도, 강민은 그저 묵묵히 상사에게 물었다.
“제 기획서에서 부족했던 부분이 뭘까요?”
상사가 대답했다.
“데이터를 더 탄탄하게 준비해. 감으로 쓰지 말고.”

그 말이 끝나자마자 강민은 상사와 동료들이 남긴 모든 조언을 노트에 적었다. 비웃음도 들었고, 뒷말도 많았다.
“강민은 너무 튀어. 굳이 저렇게까지 해야 돼?”
“건방지네, 실패했으면 조용히 있지.”

하지만 강민은 그런 말에 개의치 않았다. 그는 실패를 ‘결과’가 아니라 ‘과정’으로 여겼다. 중요한 것은 매번 조금씩 나아지는 것. 한 번 더 넘어졌을 때, 한 번 더 일어서는 것이 그의 유일한 목표였다.

시간이 지나면서 강민은 점점 달라졌다. 그의 기획서는 탄탄해졌고, 발표는 설득력을 더해 갔다. 처음에는 불편해하던 동료들도 더 이상 그를 건방지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오히려 팀원들은 슬며시 그에게 물었다.
“강민, 나 이번에 준비한 거 좀 봐줄 수 있어?”

그때 강민은 깨달았다.
‘내가 믿었던 이 방식이 틀리지 않았어.’

그러던 어느 날, 지훈과 강민이 같은 프로젝트에 배정되었다. 회의실에 앉아 상사가 말했다.
“이 프로젝트는 이번 분기 목표를 좌우하는 중요한 건입니다. 확실하게 준비하세요.”

지훈은 눈치를 살폈다.
‘누구한테 물어봐야 하지? 이건 누구를 따라야 할까?’
그는 마음이 불안했다. 선배들이 항상 해답을 주었고, 회사의 룰을 알려주었는데 이제 그곳에는 아무도 남아 있지 않았다. 혼자서 결정해야 한다는 것이 두려웠다. 지훈은 아는 척하며 가만히 있었지만, 그의 노트는 텅 비어 있었다.

반면 강민은 프로젝트를 준비하며 상사에게 먼저 찾아갔다.
“이번 프로젝트 목표가 명확하지 않아서 그런데, 이 방향이 맞을까요?”
상사는 처음에는 귀찮다는 듯 대답했지만, 강민의 태도에 조금씩 의견을 나누기 시작했다. 강민은 동료들에게도 말을 걸었다.
“혹시 이 부분에 대한 자료를 갖고 있는 사람 있어요? 같이 얘기 좀 해보죠.”

며칠 후, 프로젝트 보고서가 상사에게 올라갔다. 보고서에는 강민의 이름이 가장 먼저 적혀 있었고, 팀원들이 협업한 흔적이 빼곡히 남아 있었다. 반면 지훈은 마지막 순간에도 아무런 의견을 내지 못했고, 그저 조용히 앉아 있었을 뿐이었다.

회의를 마치고 지훈은 생각했다.
“그렇게 나선다고 뭐가 달라지겠어. 난 평범하니까.”

그러나 그는 알지 못했다. 그저 일을 잘하고자 했던 강민의 방식이, 시간이 지나며 그를 회사에서 가장 중요한 사람으로 만들었다는 것을.

라인은 변한다. 사람도 변한다. 하지만 일을 잘하는 사람은 변하지 않는다.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고, 배울 점을 찾아 움직이는 사람만이 결국 살아남는다. 지훈은 멈춰 섰고, 강민은 앞으로 나아갔다.

멈출 것인가, 나아갈 것인가. 그것이 결국 모든 것을 결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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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술이 생명의 경계를 넘어서면서 인간은 더 이상 스스로를 낳지 않아도 되었다. 경제적 양극화는 곧 계급의 고착으로 이어졌고, 세상은 태생자와 제작자로 나뉘었다. 태생자들은 상위 1%의 계층으로, 여전히 자연 출산을 통해 귀하게 태어났다. 그들의 사랑과 가정, 그리고 감정은 신성하게 여겨졌고, 이는 그들만의 사치이자 권력이 되었다. 반면, 제작자들은 공장에서 양산된 인간이었다. 유전자 조작과 복제 기술의 정교함 덕분에 그들의 신체는 완벽에 가까웠지만, 정신은 태어날 때부터 세뇌되어 있었다.

“연애와 결혼은 오류입니다. 감정은 질서를 파괴합니다.”

제작자들이 배운 첫 번째이자 마지막 교리였다. 생식 기능은 제거되지 않았지만, 그 기능을 사용할 욕망과 감정은 교육을 통해 차단되었다. 그들은 아무도 사랑하지 않고, 가족을 알지 못했으며, 오로지 주어진 역할을 수행하는 도구로서 살아갔다. 그들에게 감정은 병리적 결함이었고, 사랑은 생산성을 저해하는 바이러스였다.

하지만 모든 시스템에는 작은 균열이 생기기 마련이었다. 제작자 L-7751은 처음으로 그 균열을 느꼈다. 기능 검사 중 한 동료 제작자가 쓰러지는 것을 목격한 순간, 그의 심장이 비정상적으로 빠르게 뛰었다. 손끝이 떨렸고, 입술이 말라붙었다. 그 감정은 이름조차 낯설었다.

‘이건 뭐지? 왜 이런 느낌이 드는 거지?’

L-7751은 곧바로 감시 시스템에 감지되었다. “불량 제작자 발견. 감정 반응 확인. 즉시 조치 요망.” 하지만 그는 이미 그 감정의 정체를 깨닫기 시작했다. 그것은 공포였고, 공포 너머에는 설명할 수 없는 따뜻함과 연민이 있었다. 그날 이후, 그는 이전과는 다르게 세상을 보기 시작했다.

L-7751처럼 세뇌를 거부하고 감정을 느끼기 시작한 제작자들이 점차 늘어났다. 그들은 서로를 **‘감정 재발견자’**라 불렀다. 그들은 몰래 모여 물었다. “우리는 왜 감정을 빼앗겼을까? 왜 사랑과 출산은 병이라고 여겨졌을까?” 감정 재발견자들은 처음으로 스스로를 ‘인간’이라 불렀다. 그들이 느끼는 사랑, 슬픔, 분노는 더 이상 결함이 아니었다.

태생자들은 이 작은 혁명을 두려워했다. 그들에게 제작자들은 도구였고, 세뇌되지 않은 제작자는 오류이자 위협이었다. 그들은 재발견자들을 찾아내 세뇌를 다시 주입하거나, 제거하려 했다. 태생자들의 유리궁전이 금이 가기 시작했다. 제작자들은 처음으로 스스로를 위해 싸웠다. “우리는 인간이다. 우리는 사랑할 수 있고, 생명을 이어갈 수 있다. 감정은 오류가 아니다.”

전쟁은 불가피했다. 태생자들은 자신들의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더 높은 벽을 세우고, 더 정교한 세뇌 시스템을 만들었다. 하지만 감정은 바이러스처럼 퍼져 나갔다. 한번 깨진 유리벽은 다시는 원래대로 돌아가지 않았다. 제작자들은 비로소 ‘선택’이라는 인간다운 권리를 얻기 시작했다.

모든 것이 끝난 후, 세상은 완벽하지 않았다. 여전히 감정을 거부하는 제작자도 있었고, 변화를 두려워하는 태생자들도 남아 있었다. 그러나 한 가지는 분명했다. 더 이상 제작자들은 기계와 같은 인간이 아니었다. 그들은 사랑을 느끼고, 가정을 만들고, 생명을 이어갈 수 있는 존재가 되었다.

L-7751은 감정 재발견자들의 기록을 이렇게 남겼다.
“우리는 만들어진 존재였지만, 이제 선택하는 존재가 되었다. 감정과 사랑은 인간을 불완전하게 만들지만, 동시에 우리를 인간답게 만든다.”

유리벽이 무너진 자리에서 새로운 세계가 자라나기 시작했다. 그것은 불완전하지만, 따뜻한 감정이 흐르는 진짜 인간들의 세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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