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여행 중에는 시간이 잘 가지 않는다.
딱히 바쁘게 무언가를 하지 않아도 되는 시간.
먹고, 마시고, 걷고, 낮잠을 자고, 술 한잔 하고,
이 모든 것들이 반복되는 나날들.
그러나 이상하게도,
그 느슨함 속에서 시간은 더디게 흘러간다.
‘아직도 이 시간이야?’ 하고 시계를 보게 되는 순간이 있다.
어쩌면 해야 할 일이 없다는 자유 속에서,
오히려 시간이라는 존재를 또렷이 느끼게 되는지도 모른다.
그런 시간 속에서, 문득 마음에 남는 장면들이 있다.
영도의 한적한 카페, 손님은 나 혼자.
일부러 붐비는 곳이 아닌 한적한 곳을 선택했다.
창밖 너머로 펼쳐진 바다는 무심하고 잔잔했다.
그 풍경 앞에서 나는 조용히 커피를 마셨고,
노트에 글을 쓰고, 문득 지난 추억을 떠올리기도 했다.
조용한 공간과 움직이지 않는 시간 속에서
내 안의 감정들이 조심스레 피어올랐다.
해운대 바다는 또 달랐다.
바다의 역동성이 인상 깊었다.
거센 파도 소리, 쉼 없이 밀려오는 물결.
그 풍경 앞에서는 마음이 흔들렸다.
파도가 철썩일 때마다 내 마음을 건드렸다.
영도의 바다와 해운대의 바다는,
고요함과 생동감,
두 바다는, 전혀 다른 감정을 안겨주었지만,
시간은 여전히 느리게 흘렀다.
그 느린 시간 속에서
내가 느낀 감정은 하나로 정의할 수 없었다.
조금은 지루했고, 한편으론 평온했다.
어디선가 외로움도 스며들었지만,
멍하게 무뎌지진 않았다.
혼자라는 감각은 명확했지만,
그건 꼭 혼자일 때만 드는 감정은 아니었다.
돌이켜보면, 연인과 함께하는 여행 중에도,
나는 같은 고독과 같은 평온 속에 있었다.
마치 시간이라는 강에 나 혼자 띄워진 듯한 느낌.
함께 있어도, 결국 여행은 각자의 감정으로 떠나는 것 같다.
그리고 여행이 끝나 돌아가는 길에,
항상 같은 생각이 든다.
‘시간이 너무 빨리 갔다.’
그토록 느리게 흐르던 시간은
이제 아득히 멀어진다.
불과 며칠 전의 일이었는데,
마치 한 달도 더 지난 일처럼 느껴진다.
어제의 내가 앉아 있던 창가,
바라보던 바다, 적어내린 글들은
이미 흐릿한 기억의 저편에 있다.
놀랍게도, 나는 너무도 빨리 다시 일상에 적응해버린다.
그리고 여행은,
느리게 흘렀지만 너무도 빠르게 스며든 시간으로 남는다.
그러니까 여행이란 건,
내 삶의 시간축에서
유독 밀도 있고, 또 가벼운 한 조각이 아닐까.
이 글의 내용을 토대로 Slowly, then gone 이라는 노래를 만들어서 유튜브에 업로드 했어요.
노래 좋아요! 들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Sy2BqkXOQW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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