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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훈은 회사에서 ‘눈치가 빠른 직원’이었다. 그는 오래전부터 조직의 룰을 깨닫고 그 안에서 움직이는 법을 배웠다. 회사에는 보이지 않는 라인이 있었다. 누구를 따라야 하고 누구에게 잘 보여야 승진의 기회가 오는지, 누구와 친하게 지내면 불이익을 피할 수 있는지. 지훈은 선배들에게 배운 그대로 움직였다. 그 룰은 그에게 확실한 안전망이었고, 그는 그걸 믿었다.

회의에서는 팀장의 눈치를 살피며 고개를 끄덕였고, 팀장이 말하면 누구보다 빨리 메모를 했다. 중요한 결정 앞에서 그는 묻지도 따지지도 않았다. 상사가 말하는 방향이 곧 정답이었고, 굳이 나서서 일을 복잡하게 만들 필요는 없었다.
“괜히 튀면 손해다. 지금처럼만 가면 나도 팀장 정도는 되겠지.”

그렇게 지훈은 실수를 피했고, 팀장의 신임도 어느 정도 얻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회사 분위기가 조금씩 바뀌고 있었다. 결과를 중요시하는 문화가 도래했고, ‘라인’이라는 것도 이전처럼 견고하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지훈은 믿고 따르던 선배가 해고당하는 모습을 보게 되었다.

그 선배는 지훈이 배우고 따라왔던 룰의 상징이었다. 누구보다 사람을 잘 챙기고, 조직에 충성했으며, 보이지 않는 회사 내 권력 구조를 정확히 파악하고 움직였던 사람. 하지만 그런 선배에게 회사는 냉정했다.
“회사의 방향성이 바뀌었으니까요. 이제는 실적으로 증명해야죠.”

그 말을 듣는 순간, 지훈은 어지러움을 느꼈다. 자신이 믿어왔던 룰은 한순간에 무너졌고, 그는 새로운 방향을 찾아야 했다. 하지만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무엇을 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반면 강민은 처음부터 다른 룰을 따랐다. 그에게는 단 하나의 기준이 있었다.
‘일을 잘해야 한다. 그리고 일을 잘하려면 소통하고 배우며 끊임없이 피드백을 구해야 한다.’

첫 기획서가 망했을 때도, 강민은 그저 묵묵히 상사에게 물었다.
“제 기획서에서 부족했던 부분이 뭘까요?”
상사가 대답했다.
“데이터를 더 탄탄하게 준비해. 감으로 쓰지 말고.”

그 말이 끝나자마자 강민은 상사와 동료들이 남긴 모든 조언을 노트에 적었다. 비웃음도 들었고, 뒷말도 많았다.
“강민은 너무 튀어. 굳이 저렇게까지 해야 돼?”
“건방지네, 실패했으면 조용히 있지.”

하지만 강민은 그런 말에 개의치 않았다. 그는 실패를 ‘결과’가 아니라 ‘과정’으로 여겼다. 중요한 것은 매번 조금씩 나아지는 것. 한 번 더 넘어졌을 때, 한 번 더 일어서는 것이 그의 유일한 목표였다.

시간이 지나면서 강민은 점점 달라졌다. 그의 기획서는 탄탄해졌고, 발표는 설득력을 더해 갔다. 처음에는 불편해하던 동료들도 더 이상 그를 건방지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오히려 팀원들은 슬며시 그에게 물었다.
“강민, 나 이번에 준비한 거 좀 봐줄 수 있어?”

그때 강민은 깨달았다.
‘내가 믿었던 이 방식이 틀리지 않았어.’

그러던 어느 날, 지훈과 강민이 같은 프로젝트에 배정되었다. 회의실에 앉아 상사가 말했다.
“이 프로젝트는 이번 분기 목표를 좌우하는 중요한 건입니다. 확실하게 준비하세요.”

지훈은 눈치를 살폈다.
‘누구한테 물어봐야 하지? 이건 누구를 따라야 할까?’
그는 마음이 불안했다. 선배들이 항상 해답을 주었고, 회사의 룰을 알려주었는데 이제 그곳에는 아무도 남아 있지 않았다. 혼자서 결정해야 한다는 것이 두려웠다. 지훈은 아는 척하며 가만히 있었지만, 그의 노트는 텅 비어 있었다.

반면 강민은 프로젝트를 준비하며 상사에게 먼저 찾아갔다.
“이번 프로젝트 목표가 명확하지 않아서 그런데, 이 방향이 맞을까요?”
상사는 처음에는 귀찮다는 듯 대답했지만, 강민의 태도에 조금씩 의견을 나누기 시작했다. 강민은 동료들에게도 말을 걸었다.
“혹시 이 부분에 대한 자료를 갖고 있는 사람 있어요? 같이 얘기 좀 해보죠.”

며칠 후, 프로젝트 보고서가 상사에게 올라갔다. 보고서에는 강민의 이름이 가장 먼저 적혀 있었고, 팀원들이 협업한 흔적이 빼곡히 남아 있었다. 반면 지훈은 마지막 순간에도 아무런 의견을 내지 못했고, 그저 조용히 앉아 있었을 뿐이었다.

회의를 마치고 지훈은 생각했다.
“그렇게 나선다고 뭐가 달라지겠어. 난 평범하니까.”

그러나 그는 알지 못했다. 그저 일을 잘하고자 했던 강민의 방식이, 시간이 지나며 그를 회사에서 가장 중요한 사람으로 만들었다는 것을.

라인은 변한다. 사람도 변한다. 하지만 일을 잘하는 사람은 변하지 않는다.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고, 배울 점을 찾아 움직이는 사람만이 결국 살아남는다. 지훈은 멈춰 섰고, 강민은 앞으로 나아갔다.

멈출 것인가, 나아갈 것인가. 그것이 결국 모든 것을 결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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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훈은 차가운 새벽 공기를 맞으며 길 위에 서 있었다. 길은 끝없이 뻗어 있었고, 눈에 보이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세상의 소리는 전혀 들리지 않았고, 오직 발걸음 소리만이 어둠 속에서 메아리쳤다. 그가 왜 이렇게 걷고 있는지, 어디로 가고 있는지 자신도 알지 못했다. 그저 한 걸음, 또 한 걸음 내딛을 뿐이었다.

"왜 계속 걷고 있는 거지?"
지훈은 속으로 자신에게 물었다. 그의 머릿속은 복잡하고, 감정은 얽히기만 했다. 그는 그렇게 멈추지 않고 계속 걸었다. 발걸음이 조금씩 무겁게 느껴졌다. 이 길을 끝까지 걸으면 무엇을 찾을 수 있을까? 아니, 어쩌면 아무것도 찾지 못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멈출 수 없었다. 계속 나아가야만 했다. 그 길이 끝이 보이지 않더라도, 그가 멈춘다면 또다시 그 길을 돌아갈 수 없을 것 같았다. 그는 너무 많은 것을 놓쳐버린 기분이었다. 지나온 시간들, 그가 외면한 순간들이 모두 그를 추격하는 듯했다.

그는 그런 생각을 떨쳐내려 애썼다. "그냥 걸어가자. 뭐라도 찾아야 해."

그때, 발 앞에 웅덩이가 나타났다. 작은 물웅덩이였지만, 그 안에 비친 지훈의 얼굴은 이질적이었다. 물속에 비친 그의 얼굴은 어두운 하늘 아래서 일그러져 있었고, 눈빛은 흐릿하고 텅 비어 있었다. 마치 자신이 아니었던 것처럼.

"이게 나야? 왜 이렇게 보이지?"
지훈은 잠시 멈춰서 웅덩이를 바라보았다. 그 안에 비친 얼굴을 보며 그가 누구인지, 무엇을 하고 있었는지에 대해 깊은 의문이 들었다. 그는 자신을 알아보지 못하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왜 이렇게 텅 비었지?"
그의 목소리는 작고 떨렸다. 물속의 자신을 보며 그동안 놓쳐온 것들, 알지 못한 감정들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자신이 무언가를 잃어버린 것 같은 기분이었다. 그때, 머릿속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너는 도망친 거야. 다 놓쳐버리고, 그걸 잊으려고 계속 걸어온 거야."

지훈은 그 목소리가 자신에게 들린 것인지 아니면 주변에서 들려온 것인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그 목소리는 확실히 그의 마음속에서 울려 퍼졌다. 그는 눈을 감고 한숨을 내쉬었다.

"도망친 건가?"
그는 자신에게 물었다. 그동안 계속 걸어왔던 길은 진정 자신이 원했던 길일까? 아니면 두려움과 미련을 피하려고 달려온 길이었을까?

그의 손이 자연스럽게 웅덩이에 닿았다. 물은 차가운 느낌이었지만, 그 감각에 조금도 저항하지 않았다. 웅덩이에서 손을 뻗어 자신을 건드리며, 그는 물속에서 반사된 모습을 다시 한 번 들여다봤다. 이번에는 그가 잃어버린 것들이 떠올랐다. 지나친 시간들, 지나친 사람들, 감정들이 그를 떠밀고 있었다.

"그냥… 멈추면 안 될까?"
그는 다시 한 번 생각했다. 멈추면 모든 것이 나아질까? 혹은 더 이상 돌이킬 수 없는 일이 되어버릴까?

그는 물속에서 손을 떼며 고개를 들어 어둠 속을 바라보았다. 그때, 멀리서 한 줄기의 빛이 희미하게 반짝였다. 그 빛은 너무나 작은 점 같았지만, 그에게는 그 어떤 것보다 강하게 다가왔다. 그 빛을 따라가면, 어쩌면 이 길이 끝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저 빛만 있으면 괜찮을 거야. 내가 잘못한 것들이 다 사라질 수도 있겠지."

그는 한 걸음씩 그 빛을 향해 나아갔다. 길은 여전히 끝이 없었지만, 그 빛이 그를 이끌어줄 것처럼 느껴졌다. 그는 그 빛을 바라보며 또 한 걸음 내디뎠다.

"그래, 나아가자. 어쩌면 이 빛을 따라가면 내가 잃어버린 것을 다시 찾을 수 있을지도 몰라."

희미한 빛이 조금씩 커져갔다. 지훈은 그 빛을 향해 계속 걸었다. 무엇이 기다리고 있을지 모르지만, 이제는 멈추지 않겠다고 마음속으로 다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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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망 속에서도 다시 일어설 수 있는 힘은 우리 안에 있다.

한때 세계의 모범 국가로 찬사를 받던 노바리움(Novarium). 그러나 그 영광은 먼 과거의 이야기로 바뀌었다. 경제는 끝없이 침체되고, 물가는 치솟았다. 젊은이들은 더 나은 미래를 찾아 국경을 넘었고, 남은 사람들은 무기력과 절망에 빠져들었다.

이 암울한 상황 속에서 새로 선출된 대통령, 칼렌 아스트레이(Kallen Astre)는 국민들에게 희망을 약속했다. 하지만 현실은 그의 이상과는 거리가 멀었다. 재정난에 허덕이는 국가는 정책을 실행할 여력이 없었고, 그는 깊은 고민에 빠졌다. 이 상황에서 돈만으로는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칼렌은 다른 길을 선택했다. 그는 국민들이 스스로의 힘을 믿고 다시 일어설 수 있도록 용기를 주기로 했다. 그리고 이를 위해 매주 한 번, ‘희망의 시간’이라는 이름으로 라이브 연설을 시작했다.


첫 번째 이야기: 강철의 기적

첫 연설에서 칼렌은 한 가지 질문을 던졌다.
"왜 노바리움은 위대한 나라였을까요?"

그는 국민들에게 과거의 이야기를 꺼냈다.
"우리는 한때 불가능을 가능으로 바꾼 나라였습니다. 50년 전, 전쟁으로 모든 것이 파괴되었을 때, 우리는 세계에서 가장 큰 강철 공장을 세웠습니다. 자본도 기술도 부족했지만, 우리 국민들은 믿음과 노력으로 이를 이뤄냈습니다. 오늘날에도 이 강철 공장은 전 세계에 노바리움의 강인함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는 말을 이어갔다.
"지금 우리가 가진 문제도 마찬가지입니다. 자원이 부족하더라도 우리는 과거의 정신을 되살릴 수 있습니다. 믿음과 행동이 있다면, 어떤 위기라도 극복할 수 있습니다."


두 번째 이야기: 희망의 학교

몇 주 후, 칼렌은 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이야기를 전했다.
“우리의 교육 시스템은 한때 세계 최고의 모델이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예산 부족과 인재 유출로 흔들리고 있습니다. 그러나 과거에도 우리는 비슷한 위기를 겪었습니다. 한 작은 마을에서 교사 한 명이 시작한 움직임이 있었습니다. 그는 버려진 창고에서 아이들을 가르치기 시작했습니다. 책이 부족했지만, 그는 직접 교재를 만들었고, 결국 그 아이들 중 몇몇은 훗날 노바리움을 대표하는 과학자와 지도자가 되었습니다.”

그는 강조했다.
“교육은 돈만으로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그것은 믿음과 열정에서 시작됩니다. 지금 우리가 다시 배워야 할 것은 바로 이 정신입니다.”


세 번째 이야기: 연대의 힘

"노바리움의 위대함은 단지 기술이나 경제에서 온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우리의 연대에서 왔습니다."

칼렌은 과거 대규모 자연재해 때 국민들이 함께 힘을 모았던 이야기를 꺼냈다.
"30년 전, 홍수로 인해 수백 명의 사람들이 집을 잃었습니다. 정부는 빠르게 지원을 약속했지만, 재정이 부족해 그 약속을 이행할 수 없었죠. 그런데 놀라운 일이 벌어졌습니다. 사람들이 스스로 서로를 돕기 시작한 겁니다. 이웃들이 자신이 가진 것을 나누고, 농부들이 쌀을 기부했으며, 기술자들이 집을 수리했습니다. 그 연대의 힘은 국가를 다시 일어서게 만들었습니다."

그는 강조했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바로 그때의 연대입니다. 우리가 함께하면, 이 위기는 반드시 극복할 수 있습니다."


네 번째 이야기: 작은 혁신의 시작

"우리가 가진 것이 작다고 해서 시작할 수 없는 것은 아닙니다."
칼렌은 한 청년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20년 전, 한 젊은 청년이 작은 차고에서 시작한 아이디어가 있었습니다. 그는 단순한 소프트웨어를 개발했지만, 그 기술은 결국 전 세계에 영향을 미쳤습니다. 그 청년은 자본도 없었고, 실패를 반복했지만, 그는 멈추지 않았습니다. 그 결과, 노바리움은 기술 혁신의 중심지가 될 수 있었습니다."

칼렌은 국민들에게 물었다.
"우리 중 누구라도 혁신을 시작할 수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얼마나 큰 자원을 가졌느냐가 아니라, 얼마나 큰 꿈을 품었느냐입니다. 우리가 다시 꿈꾸기 시작한다면, 그 작은 혁신은 국가를 변화시킬 씨앗이 될 것입니다."


변화의 시작

칼렌의 연설은 처음에는 회의적으로 받아들여졌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국민들은 그의 메시지에 담긴 진정성을 느꼈다. 점차 사람들이 그의 연설을 보기 위해 모였고, 노바리움 곳곳에서 작은 변화들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직장에서, 시장에서, 카페에서 칼렌의 연설을 떠올리며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다. 직장에서는 상사와 동료들이 "우리가 다시 한 번 일어나야 한다"며 용기를 북돋웠고, 시장에서는 상인들이 "우리도 조금씩이라도 변화를 만들어갈 수 있다"며 긍정적인 대화를 나눴다. 카페에서는 친구들이 모여 칼렌 대통령의 연설에 대해 이야기하며, "희망이 필요하다"는 메시지를 서로 주고받았다.

한 아이의 꿈

한 어린 소녀, 린은 그 날 연설을 보며 눈을 반짝였다. 그녀는 자신의 꿈에 대해 생각했다. 늘 부모님이 말하던 “너는 꼭 의사가 되어야 한다”는 기대가 부담스러웠지만, 칼렌의 연설을 들으면서 마음속 깊은 곳에서 꿈을 꿨다.

"내가 정말 하고 싶은 건, 사람들에게 용기를 주는 사람이 되는 거야. 나는 선생님이 될 거야!"
린은 자신에게 이렇게 말하며 결심했다.

린의 이야기는 다른 아이들에게도 큰 영향을 미쳤다. 꿈을 추구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배운 아이들은 서로 "나는 미래에 무엇을 하고 싶다"며 자신의 꿈을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그들의 순수한 마음속에 희망의 씨앗이 심어졌고, 그것은 차츰 그들의 가족과 주변 사람들에게도 퍼져나갔다.


에필로그

시간이 흘러, 노바리움은 다시금 조금씩 변화를 맞이했다. 경제 지표가 회복되기 전에, 먼저 사람들의 마음이 회복되었다.

칼렌은 국민들에게 물려줄 가장 강력한 유산이 무엇인지 알고 있었다.
그것은 돈도, 정책도 아니었다.
그것은 국민들이 스스로 믿음을 되찾고, 스스로를 위대하게 만드는 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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준호는 항상 무언가를 미루기 일쑤였다. 마감일이 다가오는데도 논문은 시작조차 하지 않았고, 졸업을 앞두고도 취업 준비는 손도 대지 않았다. 할 일은 산더미였지만, 그는 늘 바쁜 척만 했다. 그럴 때마다 입에서 나오는 말은 같았다. "어려워서 못 하겠어." 또는 "하기 싫어서 안 해." 두 마디로 모든 걸 정당화하며 방어기제를 세웠다.

첫 번째로 논문이었다. 졸업 논문 마감일이 코앞에 다가왔지만, 준호는 여전히 빈 페이지만 쳐다보고 있었다. 지도 교수는 여러 차례 피드백을 주며 빨리 초안을 제출하라고 했지만, 준호는 차일피일 미루기만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친구 민석이 물었다.

"준호야, 논문은 언제쯤 끝낼 거야? 아직 시작도 못 했다고 들었는데."

준호는 고개를 젓고 대답했다. "주제가 너무 어려워서 도저히 손을 못 대겠어. 차라리 쉬운 주제로 바꾸는 게 나을 것 같아."

민석은 준호의 말을 듣고 잠시 고민하더니 말했다. "정말 어려워서 못 하는 거야? 아니면 하기 싫어서 미루고 있는 거 아니야?"

준호는 순간 민석의 질문에 당황했지만, 곧바로 반박했다. "아니야, 진짜로 어렵다니까. 내가 제대로 못 할 것 같아서 그렇지."

그러나 준호의 변명은 그 이후로도 반복되었다. 친구들이 주말 산행을 가자고 했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모두 바쁜 취업 준비 중에 스트레스를 풀 겸 산에 가기로 했지만, 준호는 처음부터 거절했다.

"난 등산 별로 안 좋아해. 힘들기만 하고, 시간 낭비 같아."

친구들이 한 번 더 설득하자, 그는 단호하게 말했다. "나 빼고 다녀와. 난 가기 싫어."

그 순간, 민석이 냉정하게 말했다. "또 하기 싫어서 그런 거잖아. 솔직히 말해, 힘들까 봐 겁나서 안 가는 거지?"

준호는 짜증이 났다. "그게 아니라니까, 그냥 등산 자체가 재미없어서 그러는 거야."

하지만 민석은 준호의 말을 듣고도 멈추지 않았다. "취업도 그렇잖아. 너 아직 어디 지원도 안 했지? 요즘 일자리 어렵다고만 하고 준비도 안 하고. 진짜 어렵고 무서운 게 아니라 네가 하기 싫어서 그런 거 아니야?"

준호는 더 이상 할 말이 없었다. 민석의 말은 그의 마음속 깊이 찔려 들어왔다. "하기 싫어서"와 "어려워서 못 한다"는 변명이 더 이상 그를 감싸주지 못했다. 그는 분명히 무언가를 두려워하고 있었지만, 그것을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그날 밤, 준호는 방에 앉아 혼자 생각에 잠겼다. 모든 핑계와 변명을 떠올리며 자신이 했던 말들을 되짚어보았다. 논문도, 산행도, 취업도. 결국, 그는 어려운 일과 싫은 일을 구분하지 못한 채 살아왔다. 그 사실을 깨닫고 나서도 그는 여전히 아무것도 바꾸지 않았다. 그저 방어기제 속에 갇혀 자신을 위로할 뿐이었다.

그렇게 시간은 흘러갔고, 준호의 주변 사람들은 하나둘씩 앞서 나갔다. 민석의 말은 여전히 그의 머릿속을 맴돌았다. "하기 싫어서 그런 거잖아. 어려워서 못하는 거잖아." 하지만 준호는 변하지 않았다. 그는 끝까지 스스로에게 솔직해지지 못한 채, 여전히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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