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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속에는 부지런하고 경험이 많은 닭, 해솔과 아직 호기심 많고 에너지가 넘치는 어린 닭, 초롱이가 함께 살고 있었습니다.

초롱이는 하루가 다르게 변화하는 숲속 분위기에 휩싸여 항상 바쁘게 돌아다녔습니다. 숲속 동물들 사이에는 빠르게 적응하고 효율적으로 움직이는 것이 최고의 가치처럼 여겨졌습니다. 예를 들어, 다람쥐들은 전보다 빨리 먹이를 모으기 위해 낮 동안 쉼 없이 일했고, 두더지들은 터널을 빠르게 파낼 수 있는 새로운 기술을 배워 서로 경쟁하듯 터널을 넓혀가고 있었습니다. 심지어 부엉이들도 날카로운 시력과 관찰력을 통해 먹잇감을 포착하는 시간 단축을 위한 훈련을 하고 있었죠.

초롱이는 동물들이 변화의 흐름에 발맞춰 나아가는 모습을 보며 조급함을 느꼈습니다. ‘나도 더 빨리 뛰고, 더 빨리 날아야 해. 그러지 않으면 도태되고 말 거야!’ 초롱이는 어느 날 더 넓은 숲으로 탐험을 떠나면서 자신만의 특별한 능력을 키워야겠다고 다짐했습니다.

그러나 초롱이가 숲을 돌아다니며 쉴 새 없이 바쁘게 지내는 동안, 해솔은 한결같이 둥지에서 달걀을 품고 있었습니다. 초롱이는 그런 해솔이 답답해 보였습니다. “해솔 언니, 요즘 숲은 효율성이 생존의 열쇠라고들 해요. 다들 앞다투어 빨라지고 있는데, 언니는 왜 여기서 가만히 달걀만 품고 있는 거예요?”

해솔은 여유로운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습니다. “초롱아, 이 달걀 안에 소중한 생명이 자라고 있단다. 이 아이가 세상에 나올 준비를 마칠 때까지는 아무리 서두른다고 해도 의미가 없어. 때로는 인내가 가장 중요한 거란다.”

초롱이는 해솔의 말이 이해되지 않았습니다. 숲속의 빠른 변화와 동물들의 새로운 기술을 따라잡지 않으면 도태될 것만 같았습니다. 초롱이는 다시 숲속을 누비며 자신만의 목표를 쫓기 시작했습니다.

시간이 흘러, 초롱이는 여러 기술과 경험을 쌓았지만 어딘가 채워지지 않는 공허함을 느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해솔의 둥지에서 작은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해솔이 오랫동안 품어온 달걀에서 새 생명이 탄생하고 있었던 겁니다. 초롱이는 그 장면을 숨죽이며 바라보았습니다. 해솔이 정성스레 품어온 시간이 결국 귀여운 병아리로 태어난 것입니다.

해솔은 부드럽게 초롱이에게 말했습니다. “초롱아, 숲속의 모든 동물들이 빠르게 변해가고 있지만, 진정으로 중요한 것은 마음속에 소중히 품고 기다려야 얻을 수 있는 법이란다. 내가 달걀을 품으며 이 생명이 준비될 때까지 기다린 것처럼 말이야.”

그 순간 초롱이는 깊은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주변의 빠른 속도를 쫓아다니기만 하며 정작 무엇을 품어야 할지 놓치고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죠.

그리고 몇 해가 지나, 이제는 초롱이가 어른 닭이 되어 자신만의 달걀을 품게 되었습니다. 숲속 동물들은 여전히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지만, 초롱이는 느긋하게 둥지에 앉아 달걀을 품으며 미소를 지었습니다.

이제는 해솔 언니처럼 인내와 기다림이 주는 기쁨을 알게 된 초롱이. 그도 언젠가 이 달걀이 세상에 나올 준비를 마칠 때까지 느긋하게 기다릴 준비가 되어 있었습니다. 숲의 빠른 변화 속에서도 진정한 의미를 찾은 초롱이는 이제 자신의 삶에 진정한 성취와 기쁨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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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이 눈을 떴을 때, 방 안에는 고요함이 감돌았다. 처음에는 어제와 다를 바 없는 아침이라 생각했지만, 뭔가 이상했다. 부엌에도, 집 밖에도 아무도 없었다. 마을을 돌아다녀도 마찬가지였다. 소년은 텅 빈 길을 걸으며, 부모님은 물론 이웃들까지 마을의 모든 사람들이 사라진 것을 깨달았다.

처음 며칠은 그저 기다리기로 했다. 어디선가 모두 돌아올 거라는 믿음 하나로 집 안의 음식을 나눠 먹으며 버텼다. 그러나 아무도 돌아오지 않았고, 시간이 지날수록 소년은 점점 혼자만의 시간이 길어졌다. 외롭고 불안했지만, 소년은 살아남기 위해 스스로를 다독이며 편의점과 마트를 오가며 음식을 구해왔고, 물도 찾아내며 생활을 이어갔다.

그렇게 무려 2년 반의 시간이 흘렀다. 소년은 낯선 고독에 익숙해졌지만, 사람에 대한 그리움은 날이 갈수록 커져갔다. 그런데 어느 날, 낯선 생명이 소년의 마음을 흔들었다. 집 앞에 작은 강아지 한 마리가 나타난 것이다. 말도 안 되게 쓸쓸한 눈빛을 가진 강아지는, 마치 자신을 기다리기라도 한 듯 소년을 바라보았다.

소년은 강아지에게 다가가 천천히 손을 내밀었다. “너… 어디서 왔어?”

소년은 강아지의 고운 털을 쓰다듬으며 속삭였다. 강아지는 겁내지 않고 소년의 손길을 받아들였다. 그 순간 소년은 오랫동안 묻어두었던 감정이 풀리는 것을 느꼈다. 강아지를 소중히 안아 올리며 말했다.

"너를 보니 이름을 지어줘야 할 것 같아. 이제 내가 너의 가족이니까." 잠시 고민하던 소년은 따뜻한 웃음을 지으며 강아지를 내려놓고 부드럽게 말했다. "넌 이제 ‘별’이야. 밤하늘의 별처럼 나에게 빛이 되어줬으니까."

별은 이름을 알아듣기라도 한 듯 꼬리를 흔들며 소년을 따라 걸었다. 소년은 그날 이후 매일같이 별에게 이야기를 쏟아냈다. "별아, 오늘은 우리가 무엇을 먹을까?" 아침이 되면 소년은 별에게 하루 계획을 들려주었고, 밤이 되면 하루의 일과와 그리운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별은 소년의 이야기를 조용히 들어주며 옆에서 늘 함께해 주었다. 소년에게 별은 단순한 동물이 아닌 소중한 친구이자 가족이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점점 문제가 생겼다. 마을에 남아있던 음식이 거의 다 떨어져 갔다. 가게의 선반들은 텅 비었고, 이제는 편의점이나 마트 어디에서도 먹을 것을 구할 수 없었다. 소년은 결국 결심했다. 별과 함께 마을을 떠나 더 넓은 세상으로 나가기로.

"별아, 우리 이제 떠나야 할 것 같아." 소년은 배낭에 남은 물건들을 챙기고, 별의 고운 털을 쓰다듬으며 다짐했다. "우리가 함께라면 어디든 갈 수 있을 거야. 그리고 언젠가 사람들도 만날 수 있겠지."

소년과 별은 작은 배낭 하나를 메고 마을을 벗어났다. 처음으로 나서는 낯선 길이었고, 소년의 마음은 두려움과 설렘이 교차했다. 길을 따라 걷다 보니 작은 마을 하나가 나타났다. 소년은 기대에 찬 마음으로 둘러보았지만, 사람들은 보이지 않았다. 대신 그곳에는 오래된 물건들과, 누군가 남기고 간 자잘한 흔적들만 남아 있었다. 마치 누군가가 이곳에서 생활했지만 갑자기 사라진 듯한 흔적들. 소년은 그 흔적들 사이에서 다시 한 번 사람들을 그리워했다.

그날 밤, 소년은 별과 나란히 앉아 하늘을 바라보았다. 별에게 속삭이며 작은 희망을 다졌다. "아직 가야 할 길이 많이 남았을 거야. 분명히 누군가는 살아 있을 거야. 우리가 꼭 찾아내자."

소년과 별은 그렇게 매일 길을 걸어갔다. 마을마다 들르며 사람들의 흔적을 찾아보았지만, 모두 사라진 흔적들만 남아 있었다. 문득 길을 걷다가 지친 소년이 별에게 말을 걸었다. "너와 내가 왜 이곳에 남겨졌는지는 모르겠지만… 우리가 계속 걸어가다 보면, 꼭 만날 수 있을 거라고 믿어." 별은 소년을 바라보며 조용히 꼬리를 흔들었고, 그 모습에 소년은 다시 마음을 다잡고 길을 나섰다.

소년과 별은 사람이 없어진 황량한 세상을 묵묵히 걸었다. 희미한 불안과 외로움 속에서도 서로에게 기대며, 소년과 별은 무언가를 찾기 위한 여정을 계속했다.

소년과 별은 길 위에서 수많은 흔적을 만났다. 낡고 먼지 쌓인 식료품, 흩어진 옷가지, 급히 버려진 가방들까지—마치 사람들이 어딘가로 떠나다 실패한 듯한 흔적들이었다. 소년은 이 모든 것이 무슨 의미일지 생각했지만, 대답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별과 함께 걷는 한 걸음 한 걸음이 소년에게 힘을 주었다.

어느 날, 소년과 별은 오래된 고층 빌딩이 서 있는 도시로 들어섰다. 차가운 바람이 부는 도시의 풍경은 마치 시간이 멈춘 듯했다. 소년은 텅 빈 거리와 부서진 유리창을 보며 속으로 혼잣말을 했다. "사람들은 어디로 간 걸까… 여기도 빈 껍데기만 남았네."

소년과 별은 도시의 구석구석을 살펴보며 물과 음식을 찾았다. 남아 있는 캔 음식 몇 개를 발견해 허기를 달랬지만, 갈수록 상황은 점점 더 힘들어졌다. 그렇게 길고 긴 여정을 이어가던 어느 날, 별이 몸을 웅크리고 아픈 듯이 신음했다.

"별아, 괜찮아?" 소년은 깜짝 놀라 별을 안아들고 가방에 남은 물과 약간의 음식을 별에게 먹였다. 별이 지친 눈으로 소년을 바라보자 소년은 애타게 손을 뻗어 별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내가 지켜줄게. 너도 나를 도와줬잖아."

며칠 동안 소년은 별을 간호하며 떠나지 않고 그 자리에 머물렀다. 소년은 불안한 마음에 잠도 제대로 자지 못한 채, 별의 곁을 지키며 끊임없이 말을 걸어주었다. "별아, 넌 나의 별이잖아. 넌 분명히 다시 건강해질 거야." 그렇게 온 힘을 다해 보살핀 덕분에, 별은 서서히 기력을 되찾았고, 다시 소년과 함께 길을 걸을 수 있게 되었다.

소년은 별을 더욱 소중하게 여기게 되었고, 둘은 서로를 의지하며 점점 더 먼 곳으로 나아갔다. 이젠 마을과 도시를 넘어 황량한 벌판과 거친 산을 지나야 했다. 길은 갈수록 험난했지만, 소년은 별과 함께라면 어떤 고난도 이겨낼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러던 어느 날, 소년은 먼 곳에서 희미한 연기가 피어오르는 것을 발견했다. "별아, 저기 봐! 저기에 누군가가 있을지도 몰라!" 소년은 희망에 찬 눈빛으로 별을 바라보며 발걸음을 재촉했다. 별도 지친 몸을 일으켜 소년과 함께 힘차게 달렸다.

소년과 별은 그렇게 연기가 나는 곳을 향해 끝없는 길을 걸었다. 소년의 마음속에는 오랜 기다림 끝에 만날 누군가가 있다는 기대가 피어올랐다.

소년과 별은 연기를 따라 한참을 걸었다. 연기는 점점 더 선명하게 보였고, 그곳에 가까워질수록 소년의 가슴은 두근거렸다. 드디어 연기의 근원지에 도착했을 때, 소년은 한낱 버려진 캠프장과 바람에 흔들리는 천막을 발견했다. 그곳에는 사람들이 남겨 둔 흔적이 가득했다—부서진 캠프 장비와 반쯤 먹다 남은 식량, 불에 그을린 작은 화로까지.

소년은 숨죽인 채 주위를 살피며 작은 희망을 품었다. "혹시… 누군가가 여기 있었다면 곧 돌아오지 않을까?" 그러나 주위를 아무리 둘러보아도 사람의 인기척은 느껴지지 않았다. 시간이 흐르면서 소년은 또다시 허망함을 느꼈다.

그때, 별이 천막 쪽에서 뭔가를 발견하고 멈춰 섰다. 소년도 다가가 보니, 그곳에는 한 권의 낡은 노트가 놓여 있었다. 먼지가 쌓인 노트를 펼쳐보자, 누군가의 흔들리는 손글씨로 써진 글들이 나타났다.

"우리는 떠날 수밖에 없었다. 이곳에서는 더는 살아남을 수 없으니까. 만약 이 글을 누군가가 읽는다면… 부디 살아남기를 바란다. 어디든 사람이 있는 곳으로 계속 가길 바란다. 우리는 어딘가에 있을 것이다."

소년은 노트를 손에 꼭 쥐고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여기에도, 결국 아무도 남아 있지 않았구나…" 하지만 이 글을 읽고 나니 희미하게나마 희망이 되살아났다. 누군가가 남긴 마지막 흔적처럼 느껴졌고, 그들은 여전히 어딘가에서 살아가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믿음이 생겼다.

소년은 별을 향해 고개를 돌리며 결심했다. "별아, 우리도 계속 가자. 어딘가에 살아 있는 사람들이 있을 거야. 분명 우리를 기다리는 사람들이 있을 거야."

별은 소년의 결심에 힘을 보태듯 작게 꼬리를 흔들었다. 그렇게 소년과 별은 또다시 길을 떠났다. 이제 그들에게 남은 것은 그저 무한한 길과, 서로를 지켜주겠다는 마음뿐이었다.

소년은 걸음을 재촉하며 앞으로 나아갔고, 별은 그런 소년을 묵묵히 따라주었다. 그들은 이제 단순히 살아남기 위해 걷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희망을 찾기 위한 여정을 이어가고 있었다.

소년은 수없이 많은 마을과 도시를 거쳐 가며 기대와 절망을 반복했다. 사람들의 흔적을 찾을 때마다 가슴이 뛰었지만, 돌아오는 건 늘 텅 빈 공터와 쓸쓸한 잔해들뿐이었다. 시간이 흐르면서 소년의 얼굴은 점점 수척해졌고, 그의 마음은 깊은 외로움과 고독에 갇히기 시작했다.

하루는 폭우가 쏟아지던 날이었다. 소년은 비에 젖은 몸으로 나무 아래에 앉아 하늘을 바라보았다. 비가 차가운 뺨을 타고 흘렀지만, 소년은 울지도 않았다. 이제 희망은 거의 남아 있지 않았고, 그저 무거운 허탈함만이 가슴을 짓눌렀다.

"별아… 미안해." 소년은 지친 목소리로 속삭였다. "여기까지 너를 데리고 온 게 잘한 일인지 모르겠어. 나도 더는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

별은 그런 소년의 곁에 고요히 앉아, 물기 어린 눈으로 소년을 지켜보았다. 소년은 한동안 눈을 감고 있었다. 별은 소년의 따뜻한 체온을 느끼며 그 곁을 떠나지 않았다. 별에게 소년은 전부였고, 소년에게 별은 마지막까지 의지할 수 있는 존재였다.

시간이 지나자, 소년은 결국 눈을 감은 채로 조용히 숨을 거두었다. 더 이상 말을 걸어줄 사람도, 따뜻하게 쓰다듬어줄 손길도 없었다. 소년의 작은 체구는 조용히 고요한 숲속에 머물렀다.

별은 꼬리를 내리고 소년의 곁에 다가가 그의 차가워진 손을 핥았다. 그리고 한참 동안 그 자리에 머물렀다. 별은 소년이 깨어날 때까지 기다리듯 고개를 숙이고 그 곁을 지켰다. 소년이 떠난 뒤에도, 별은 떠나지 않고 끝까지 소년의 옆에서 맴돌았다.

밤이 되자, 별은 소년을 등지고 천천히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어둠 속에서 별은 홀로 남겨졌지만, 그 마음속에는 소년과 함께했던 기억들이 조용히 타오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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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우는 어려운 환경 속에서 자랐다. 그에게는 남들처럼 가지고 싶은 것을 쉽게 가질 수 있는 기회가 없었다. 부모의 싸움과 찬바람이 새어 들어오던 좁은 방, 늘 텅 빈 냉장고는 그의 어린 시절의 전부였다. 학교에서는 늘 낡고 해진 옷을 입고 다녔고, 친구들이 자랑하는 새 학용품이나 장난감을 부러운 눈으로 바라보며 아무렇지 않은 척하는 것이 그에게 익숙해졌다. 그러나 때로는 친구들이 불쌍한 듯 다가와 과자를 나누어주거나, 선생님이 따뜻한 눈길로 그의 어깨를 두드려줄 때면, 그 순간만큼은 마음이 조금이나마 위로받는 듯했다. 성우는 자신이 어렵다는 걸 드러낼 때 사람들에게서 잠깐이라도 따뜻한 시선을 받을 수 있다는 걸 깨달았다. 그것은 그에게 작은 안식처와도 같았다.

시간이 흘러 성우는 사회에 나와 조금씩 자리를 잡아갔고, 예전처럼 힘든 생활은 아니었지만, 동정심을 끌어내는 습관은 몸에 깊이 배어 있었다. 이제 그는 정기적으로 해외여행을 갈 만큼의 여유도 생겼고, 삶은 확실히 나아졌지만, 여전히 사람들에게는 자신의 어려움을 먼저 이야기하곤 했다. 누군가 관심을 보여주는 것, 그의 이야기에 공감해주는 것이 그에겐 중요한 것이었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직장 동료들도 성우의 이야기를 듣고 진심으로 그를 안쓰러워했다. "성우 씨가 힘들면 우리도 함께 힘든 거죠,"라며 응원을 보내던 사람도 있었고, 점심을 살뜰히 챙겨주는 이도 있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사람들은 성우가 예전처럼 어려운 상황이 아님을 눈치채기 시작했다. SNS에 올라온 해외여행 사진이나, 가끔 성우의 차에서 들려오는 최신 모델의 스마트폰 소식이 다른 직원들의 입에 오르내렸다. "성우 씨가 맨날 돈이 없다고 하더니… 근데 작년에도 유럽 다녀오지 않았어?" 누군가가 조심스럽게 묻자, 또 다른 누군가가 고개를 끄덕이며 은근히 그에게 피로감을 느꼈다.

성우는 점차 변화하는 분위기를 감지했다. 예전 같지 않은 사람들의 반응에 불안감이 밀려왔고, 그래서 그는 자신의 어려움을 더 노골적으로 강조하기 시작했다. 점심시간에 동료들이 가볍게 이야기를 나눌 때면 그는 "요즘 정말 빠듯해요. 돈이 없어서 큰일입니다"라고 아무렇지 않게 끼어들었다. 사람들의 눈빛이 피곤해지는 걸 느끼면서도 그는 멈추지 않았다. 자신이 어렵다고 이야기하는 것이 이제는 일종의 습관처럼 몸에 배어 있었고, 그것이 자신을 세상과 연결하는 유일한 방식이라고 느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럴수록 사람들은 그를 점점 더 피했다. 회사 회식 자리에서도, 점심시간에도 누군가가 성우의 곁에 앉지 않으려고 애쓰는 듯했다. 겉으로는 예의 바르게 대하지만, 그의 말이 나오면 묘하게 분위기가 가라앉고 사람들은 곧 다른 주제로 이야기를 돌렸다. 아무도 직접적으로 지적하지는 않았지만, 성우의 과장된 어려움 호소에 대한 불편함은 은근히 퍼져나갔다.

성우는 혼자 남아 있음을 깨달았다. 자신이 외로워진 이유를 깊이 이해하지 못한 채로 그는 여전히 힘들다고 말했지만, 이제는 그 누구도 귀 기울이지 않았다. 주변의 침묵과 거리 두기는 그의 말들을 더 이상 허공에 울리지 않았다. 그는 결국 자신이 만든 고립 속에서 완전히 고독해졌고, 사람들이 자신에게서 멀어진 이유를 뒤늦게 깨달으며, 그의 세상은 아무런 답도 없이 조용히 무너져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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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은 숲 속, 여우, 너구리, 올빼미, 그리고 고슴도치는 모두 한때 같은 꿈을 품고 모였다. 그들이 처음 만난 건 숲을 더 살기 좋은 곳으로 만들고자 각자 모험을 떠나온 날이었다. 먹이가 부족해지거나 서식지가 훼손되는 문제들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며, 어떻게 하면 숲을 더 평화롭고 풍요로운 곳으로 만들 수 있을지 밤늦도록 논의했다.

처음에는 많은 동물들이 모임에 참여했다. 다람쥐, 족제비, 심지어 토끼들까지도 자신의 문제를 가져와서 서로 의견을 나누었고, 그 과정에서 다양한 해결책을 제안했다. 고슴도치는 땅을 더 비옥하게 만드는 법을 제안했고, 올빼미는 밤에도 안전하게 먹이를 구할 수 있는 방법을 논의했다. 여우와 너구리도 나름의 경험과 지혜를 더했다. 숲의 동물들은 매달 초마다 이 모임에 모여, 서로의 이야기를 듣고 새로운 방법을 찾아가며 희망을 키웠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며 동물들은 하나둘 모임에서 떠나기 시작했다. 현실의 벽은 생각보다 높았다. 각자의 생활이 바쁘고, 각자의 가족을 돌보는 것도 점점 어려워졌다. 서로의 생각도 조금씩 달라지기 시작했다. 같은 목표를 품었더라도, 먹이를 구하는 방식이나 살아가는 터전의 차이에서 비롯된 다른 관점들은 때로는 모임에 갈등을 불러일으켰다.

결국, 숲의 모임은 소수의 동물만 남게 되었다. 이제는 여우, 너구리, 올빼미, 그리고 고슴도치만이 남아 있었다. 이들은 여전히 매달 초 작은 나무 밑에 모여 이야기를 나누었다. 더 이상 큰 모임은 아니었지만, 각자 삶에서 마주하는 어려움과 도전들을 함께 이야기하며 서로에게 작은 힘을 주었다.

그날도 고슴도치는 땅을 파며 숲을 더 풍요롭게 할 새로운 아이디어를 이야기했다. 올빼미는 밤에 겪는 어려움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며, 안전하게 먹이를 구하는 새로운 방법을 제안했다. 여우는 주변 숲의 변화를 전하며, 앞으로의 어려움에 대해 모두가 대비할 수 있도록 했다. 너구리는 더 강한 쉼터를 만드는 법에 대해 조언을 나눴다.

모임은 이제 작아졌지만, 남은 동물들에게는 이 시간이 소중한 자극이 되었다. 숲의 다른 동물들은 각자의 길로 떠났지만, 이 작은 무리만은 서로를 통해 다시금 힘을 얻고, 더 나은 숲을 향해 각자 최선을 다했다.

언젠가 더 많은 동물들이 이 모임으로 돌아오게 될지, 아니면 남은 이들마저 사라지게 될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여우, 너구리, 올빼미, 고슴도치는 오늘도 이 작은 만남이 자신들에게 큰 의미를 준다는 걸 알고 있었다. 그들은 여전히 같은 지향점을 품고, 서로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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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진은 고집이 셌다. 마음에 안 드는 게 있으면 주저 없이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스스로를 ‘논리의 전사’라 여겼고, 언제나 자신의 신념이 옳다고 믿었다. 회사 회의에서도 늘 자신이 내놓는 의견이 가장 합리적이라 생각했기에, 다른 의견이 나오면 주저 없이 논쟁을 벌였다.

이번 프로젝트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효율'을 강조하며 비용 절감과 시간을 절약할 수 있는 방안을 주장했고, 이를 이루기 위해 논리적으로 설득하려 애썼다. 하지만 회의 결과, 그의 제안은 채택되지 않았다. 대신 동료 선우의 ‘안정성’ 중심의 접근이 결정되었다. 우진의 속은 부글부글 끓었다. 자신이 제시한 방안이 더 나은 해결책이라고 확신했는데도 팀의 최종 결정에서 밀려난 것이었다.

결국 회의가 끝나자 우진은 분통을 터뜨리며 사무실 밖으로 나섰다. 도무지 이대로는 참을 수 없었다.

그날 저녁, 선우가 우진에게 다가왔다. "오늘 저녁에 술 한잔할래?" 그는 평소와 다름없이 부드러운 미소를 지었다. 분이 풀리지 않은 우진은 처음엔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였지만, 마음속 깊은 곳에서는 선우와의 대화로 자신의 답답함을 풀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작은 포장마차에 자리를 잡고 술잔을 몇 번 주고받은 후, 우진은 참다못해 선우에게 물었다. “선우, 솔직히 말해봐. 왜 네 의견은 그렇게 쉽게 받아들여지고, 내 의견은 자꾸 묵살당하는 걸까?”

선우는 우진의 질문에 잠시 술잔을 내려놓고, 우진을 바라보며 말했다. “그게 꼭 내 의견이 옳아서 받아들여진다고 생각하지는 않아. 그냥, 난 상황에 맞게 유연하게 접근하려고 할 뿐이야. 꼭 내 의견이 다 맞다고 고집하는 대신, 다른 사람의 의견도 들어보고, 거기서 내 생각을 조정해보는 거지.”

우진은 얼굴을 찌푸리며 반박했다. “그럼 네 생각을 버리고 타협만 한다는 거잖아? 난 그게 못 참겠어. 내 신념이 옳다면 끝까지 주장해야지, 그걸 포기하는 건 내가 틀렸다는 걸 인정하는 거나 다름없다고 생각해.”

선우는 조용히 웃으며 술을 한 모금 마셨다. “우진, 이건 내 생각인데… 가끔은 내가 완전히 옳을 필요가 없을 때도 있어. 오히려 상대가 내 생각을 받아들이고 함께 협력하려는 여지를 주면, 결과적으로 내가 얻고자 하는 실리도 얻을 수 있는 것 같더라고. 한 번 생각해봐, 상대방이 나를 거부감을 느끼지 않고 받아들이도록 하는 게 얼마나 중요한지.”

우진은 고개를 갸웃하며 선우의 말을 되새겼다. 그에게는 여전히 이해되지 않았다. 논리적으로 이길 수 있는데, 왜 타협을 택해야 하는 걸까? 하지만 술잔을 기울이며 선우의 태도 속에서 느껴지는 묘한 여유와 안정감을 부러워하는 마음도 없지 않았다.

밤이 깊어가며 우진은 내내 자신의 생각을 곱씹었다. 그는 여전히 자신의 신념을 쉽게 꺾을 마음은 없었지만, 적어도 한 가지는 확실해졌다. 실리와 신념, 그 두 가지의 균형을 맞추는 것이 삶에서 중요한 과제라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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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혁은 어린 시절부터 특별했다. 그의 음악에는 남들과는 다른 강렬한 열정이 담겨 있었다. 무대 위에 서면 세상이 멈춘 듯했고, 그의 목소리는 사람들의 마음을 울렸다. 그의 이름은 빠르게 알려졌고, 그는 단번에 스타가 되었다. 대중은 그를 열광적으로 사랑했지만, 동시에 그를 향한 차가운 시선도 늘어나기 시작했다.

성공의 이면에는 악플과 비난이 가득했다. "자기중심적이다" "인성에 문제가 있다"는 억측부터, 그가 전혀 하지 않은 일에 대한 터무니없는 루머까지 퍼져 나갔다. 성혁은 처음에는 대수롭지 않게 넘기려 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무거운 돌처럼 그의 마음을 짓눌렀다. 아무리 무대 위에서 완벽한 모습을 보여도, 뒤에서는 그를 폄하하는 말들이 끊이지 않았다.

그러다 결국, 그는 지쳐버렸다. 자신이 누구인지, 왜 음악을 시작했는지조차 희미해진 듯했다. 마음 깊은 곳에서 음악을 향한 갈망은 여전했지만, 대중의 기대와 시선이 그를 옥죄고 있었다. 그는 끝없는 부담감과 실망 속에서 도망치듯 활동을 멈추고 고향으로 돌아갔다.

고향의 작은 방에서, 성혁은 처음 음악을 시작했던 날을 떠올렸다. 그때는 그저 즐겁고 자유로운 마음으로 노래를 불렀던 자신이 있었다. 이제는 더 이상 그 시절의 순수함을 되찾을 수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그는 음악이 여전히 자신에게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는 것을 부정할 수 없었다. 그렇게 그는 한동안 모든 활동을 접고 쉬었다. 자신을 되돌아보며 잃어버린 것을 다시 찾으려는 시간을 보냈다.

하지만 몇 달이 지나자 다시 몸이 근질거렸다. 그의 가슴속에는 여전히 음악에 대한 열정이 남아 있었다. 성혁은 깨달았다. 그는 대중의 기대에 맞추기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이 진정 원하는 무대를 만들고 싶은 열망 때문에 다시 돌아가야만 했다. 모든 사람에게 인정받으려고 애쓰던 과거의 자신을 벗어던지고, 온전히 자신의 음악을 위해 복귀하기로 마음먹었다.

복귀 후, 성혁은 여전히 비난과 억측에 시달렸다. 하지만 이번에는 다른 태도로 그 모든 어려움에 대처하기 시작했다. 대중의 평가에 일희일비하기보다는 자신이 진정으로 전하고 싶은 음악과 메시지에 집중했다. 사람들의 비난과 루머가 그를 무너뜨릴 때도 있었지만, 그는 음악으로 다시 일어섰다. 그는 무대 위에서 말없이 노래로 자신의 진심을 전했고, 그의 음악은 점점 깊어지고 진솔해졌다.

성혁은 이제 악플과 루머가 그저 지나가는 바람처럼 느껴졌다. 과거의 상처들이 아직 남아 있었지만, 그는 그 상처들마저도 자신의 일부로 받아들였다. 사람들의 기대와 평가는 중요하지 않았다. 그저 자신의 길을 걸으며, 자신을 표현할 수 있는 음악을 하는 것, 그것만으로 충분했다.

복귀 후 그의 음악은 예전과는 다른 깊이를 지니게 되었다. 사람들은 그의 변화를 느꼈고, 그의 음악에서 묵직한 진정성을 찾아냈다. 성혁은 이제 더 이상 대중의 시선에 휘둘리지 않고, 진정 자신으로서 무대에 설 수 있게 되었다. 그는 어려움을 통해 자신을 더욱 단단하게 만들었고, 빛과 어둠 속에서도 꿋꿋하게 자신의 길을 찾아낸 것이다.

이제 무대 위의 성혁은 누구보다도 자유로웠다. 그 어떤 어려움이 찾아와도, 그는 그 안에서 더 단단해지고 더 빛나는 자신을 만들어낼 준비가 되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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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훈은 대기업의 외주 협력사로 일하는 중견 컨설턴트였다. 이번 달, 본사와의 계약 갱신을 앞두고 있던 그는 어느 날 본사로부터 온 갱신 통지서를 확인하고 깜짝 놀랐다. 계약 조건이 무려 200퍼센트 인상된 것이다. 그가 감당하기에는 너무나 큰 금액이었고, 이는 곧 그의 사업 운영을 위협하는 상황이었다.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몇 년간 본사 제품을 열정적으로 홍보하며 현장 지원에 나섰는데, 돌아온 건 일방적인 인상 통지라니. 당장 본사 담당자를 찾아가 따지고 싶은 마음이었다. "내가 그동안 한 노력이 이 정도 대우를 받을 일이란 말인가?" 그는 불공정함에 화가 치밀어 올랐다.

그러나 곧 마음을 가라앉혔다. 즉각적인 감정 표현이 오히려 역효과를 낼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차분하게 다른 방식으로 접근해보기로 마음을 고쳐먹었다.

며칠 뒤, 지훈은 본사 담당자와의 미팅에서 침착하게 입을 열었다. "아마 회사의 이익을 위해 최선의 결정을 내리신 걸 겁니다. 저도 그 입장을 이해합니다. 하지만 이 계약이 저에게도 중요하듯이, 우리 협력관계가 회사에 어떤 의미가 있는지 정리해드리고 싶습니다.”

그는 자신의 노트북을 열어 담당자와 함께 화면을 보며 말했다. “우선, 저희는 본사 제품을 자사 네트워크와 지역 커뮤니티를 통해 무료로 홍보해 왔습니다. 이번 분기만 해도 이로 인해 매출이 상승했다는 데이터가 있죠.” 이어 그는 계약 인상으로 인해 지훈의 재정적 부담이 커지게 되면 본사 역시 얻을 기회가 줄어들 수 있음을 차분히 설명했다.

또한 그는 추가로 말을 이었다. "그리고 현재 저희가 본사 제품을 홍보하는 동안, 타사에서는 이미 유사한 제품을 내세우며 같은 고객층을 겨냥하고 있습니다. 저희가 계속해서 본사와 협력할 수 있다면, 이러한 경쟁 상황에서도 귀사 제품의 시장 입지를 확고히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저희가 계약을 유지하지 못할 경우, 본사 제품의 빈자리를 누군가가 금방 차지하게 될 겁니다.”

지훈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이 계약 인상이 장기적으로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 신중히 검토해 주신다면, 아마 다른 방안을 고려해주실 수 있을 거라 믿습니다. 저도 현실적인 조건을 제시해주신다면, 앞으로도 더욱 적극적으로 본사 제품의 입지를 다질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며칠 후, 그는 수정된 계약서를 받았다. 200퍼센트가 아닌 40퍼센트 인상으로 조정된 현실적인 조건이었다. 그는 계약서를 보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만약 그가 처음 느낀 감정에 휘둘려 담당자에게 격하게 따졌다면 어땠을까? 아마 그의 항의는 감정적으로 비춰졌을 것이고, 본사는 그의 불만보다는 계약 인상의 정당성만을 강조하며 협력사를 대체할 방법을 찾으려 했을지 모른다. 지훈은 이 경험을 통해 큰 교훈을 얻었다. 감정을 조절하고 상대방의 입장을 고려하는 태도가 더 큰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이다.

그는 미소를 지으며 되뇌었다. “화가 날수록, 한 걸음 물러서서 상대의 입장에서 바라보는 것. 그것이 진정한 설득의 시작이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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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와 아들은 오늘도 송아지를 축사에서 풀밭으로 옮기기 위해 애를 쓰고 있었다. 아버지는 앞에서 밧줄을 잡고 송아지를 끌어당겼고, 아들은 뒤에서 온 힘을 다해 밀어 보았다. 송아지는 느긋한 표정으로 그 자리에 굳건히 서 있었다. 꼼짝도 하지 않는 송아지의 태도에 땀이 흐르고 숨이 차오를 무렵, 둘은 한숨을 내쉬며 서로를 바라보았다.

그때, 길가를 지나가던 한 아주머니가 그 모습을 보고 걸음을 멈췄다. 눈가에 웃음을 머금은 그녀는 다가와 두 사람에게 말했다.

“애들아, 내가 조금 도와줄까?”

아버지와 아들은 반신반의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아주머니는 송아지 앞으로 다가가더니, 뜻밖에도 자신의 검지 손가락을 송아지의 입가에 갖다 대며 그에게 살짝 물리도록 했다. 송아지는 놀란 듯 잠시 멈칫하더니 곧 아주머니의 손가락을 핥기 시작했다. 부드럽게 움직이는 송아지의 혀와 달리, 아주머니는 미소를 머금고 차분히 송아지를 향해 말했다.

“얘야, 이리 가자. 이렇게 천천히 가면 되지 않겠니?”

송아지는 아주머니의 손가락을 핥으며 서서히 그녀가 이끄는 방향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아버지와 아들은 놀라움에 찬 눈으로 그 광경을 지켜보았다. 그들은 거의 힘을 들이지 않고도 송아지가 천천히 그들의 뒤를 따라오는 것을 보며 한참 동안 멍하니 서 있었다.

아주머니가 송아지를 풀밭에 도착시키고 나서야, 아버지는 자신도 모르게 소리 내어 웃었다. 아들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아주머니에게 다가가 조심스레 물었다.

“어떻게 송아지가 그렇게 쉽게 따라오게 하셨나요?”

아주머니는 잔잔한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송아지든 사람이든, 자기가 좋아하는 게 있으면 스스로 움직이게 되어 있어. 억지로 끌고 가려고만 하면 더 저항하는 법이야.”

아버지와 아들은 그 말을 곰곰이 되새겼다. 이 경험은 송아지를 옮기는 단순한 일이 아니라, 사람을 대하는 법에 대한 깊은 교훈으로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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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준과 민석은 고등학교 동창이었다. 두 사람은 서로 다른 분야에서 각자의 방식으로 '성공'을 이루어가고 있었다.

강준은 사회사업가였다. 평범한 직업이었지만, 사람들에게 도움을 줄 때 그가 느끼는 충만감이 모든 보상처럼 여겨졌다. 매일 작은 성공과 실패를 경험하면서도 그는 일에 대해 나름의 자부심을 가졌다. 강준은 항상 바쁜 일정 속에서도 지역 행사에 참여하거나 자원봉사를 통해 자신의 가치를 세우려 했다. 그런 그의 삶은 잔잔한 호수처럼 조용하고, 변화는 느렸지만 한결같았다.

민석은 투자 전문가로, 속도감 있게 성장해 온 인물이었다. 그는 업계에서 손꼽히는 전략가로 자리 잡았고, 위험을 감수하며 빠르게 실적을 쌓아가며 성공의 길을 걷고 있었다. 민석에게 성공은 목표에 닿는 순간순간의 쾌감이었다. 하루가 다르게 증명해야 하는 그의 삶은 늘 긴장감으로 가득했고, 성공이란 매 순간 달성해야 할 목표이자, 시시각각 변화하는 숫자로 표현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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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 후, 두 사람은 동문회에서 재회했다. 오랜만에 만난 이들은 서로에게 다른 세계의 사람처럼 느껴졌다. 강준의 주위에는 그가 도운 사람들이 모여 자연스럽게 웃고 있었고, 민석은 동창들 사이에서 성공한 인물로 주목받고 있었다. 그러나 강준과 민석은 서로의 삶을 보고 감탄과 의문이 교차하는 시선을 느꼈다.

둘은 대화 중 과거 학교 축제 이야기를 나누며 웃었다. 학창 시절 강준은 무대 뒤에서 일을 도맡아 했고, 민석은 사람들 앞에서 결과물만 보던 성격이었다. 강준은 사람들이 무대에 집중하도록 돕는 일이 즐거웠고, 민석은 어떻게든 무대 위에 서는 것이 목표였다. 그들의 사고방식은 그대로 성인이 되어서도 이어졌음을 둘 다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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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정이 가까워지자 사람들이 하나둘 자리를 떠났고, 강준과 민석만이 남았다. 민석이 조심스레 물었다.

“강준, 넌 일하면서 느끼는 게 뭐야? 난 매일 숫자에 쫓기다 보니 가끔은 너무 허무해질 때가 있더라.”

강준은 잠시 생각하더니, 조용히 답했다.

“음... 나도 늘 행복한 건 아니야. 매번 성과가 크게 눈에 띄지 않아서, 가끔은 내가 제대로 하고 있는지 의문이 들기도 하고. 하지만 그 작은 변화를 알아봐 주는 사람들이 있잖아. 그런 걸 느끼면 내가 걸어온 길에 의미가 있다는 걸 새삼 깨닫게 돼.”

민석은 고개를 끄덕이며 생각에 잠겼다. 그는 수많은 목표를 달성하고 있지만, 그것이 자신의 삶에 정말 깊이를 더해주는지에 대해서는 의문을 품어 본 적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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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달 후, 민석은 대규모 거래에서 예상치 못한 큰 손실을 입게 되었다. 신문에 이름이 오르내릴 정도의 상황이었고, 모든 것이 잘못된 길로 흘러갔다. 그는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으며 매일 밤을 지새웠고, 삶의 방향이 흔들리는 것을 느꼈다. 그러던 어느 날, 강준이 불쑥 찾아와 말했다.

“민석아, 실패도 한 과정일 뿐이야. 네가 지금껏 쌓아온 건 그대로 남아 있을 테니, 잠시 멈추고 돌아봐도 괜찮아.”

그 말을 들은 민석은 한동안 생각에 잠겼다. 그리고 그는 이번 기회를 통해 더 이상 숫자와 결과에만 몰두하지 않기로 결심했다. 이후 민석은 그동안 바쁘다는 이유로 지나쳤던 일들을 조금씩 되돌아보았다. 주위 사람들과의 관계, 일에 대한 자신의 태도까지 그는 이전과 다른 방식으로 삶을 바라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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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 후, 민석은 자신을 위해 새로운 투자를 시작했다. 빠르게 성과를 내는 대신, 자신이 관심 있는 사회적 가치를 가진 프로젝트에 투자하며 천천히 결과를 기다렸다. 여전히 숫자로 보여지는 성과도 중요했지만, 이제 그는 그것을 넘어서 ‘사람들’과 함께 만들어가는 성공을 느꼈다.

강준과 민석은 시간이 지날수록 서로의 성공을 존중하며 삶의 다양한 무게를 공유하는 친구로 남았다. 사람들은 두 사람을 각각 존경과 신뢰의 대상으로 바라보았고, 그들의 성공이 각자의 방식대로 완성되어 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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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수는 세상에 대한 분노로 하루를 열고, 경멸로 하루를 닫았다. 정치와 경제 뉴스 속 부패한 인물들이 자리를 차지할 때마다 그는 혀를 차며 자신이야말로 진정한 도덕을 지키는 사람이라고 여겼다. “썩어버린 세상이지. 그래도 나 같은 사람이 있어서 다행이야.” 그는 그렇게 말하며 자신의 정직함을 자랑으로 삼았다.

아들 현우에게도 정수는 자신의 신념을 고스란히 물려주었다. 현우는 어려서부터 아버지의 가르침을 성실히 따랐다. 그는 친구들이 규칙을 어기면 곧바로 선생님께 알렸고, 도덕을 어기는 친구들을 절대 용납하지 않았다. 정수는 아들이 자랑스러웠다. 현우는 그의 도덕적 후계자였고, 세상의 부정을 바로잡아 줄 사람이라고 믿었다.

“현우야, 진정한 정의를 위해서라면 외로워질 수도 있는 거야. 세상과 맞서 싸우다 보면 아무도 네 편에 서지 않을 수도 있어. 그래도 옳다면, 그 길을 가는 게 맞는 거지.” 정수는 아들이 점점 친구들과 소원해지고 외톨이가 되어가는 것을 알면서도, 그것이 정의의 무게라며 힘을 실어주었다. 그는 외로움을 감수할 줄 아는 것이 진정한 정의의 길이라 믿었고, 현우도 그런 아버지의 말을 굳게 받아들였다.

현우는 고등학생이 되면서 점점 더 엄격하고 단호한 도덕주의자가 되었다. 학교에서도 친구들이 실수하거나 잘못을 하면 가차 없이 비난했고, 온라인상에서도 부정에 대해 날카로운 비판을 쏟아냈다. 그는 단호하게 자신을 고립시켰지만, 정수는 오히려 그런 아들의 모습을 대견하게 여겼다. 고독은 정의를 위한 대가이며, 현우는 진정으로 정의로운 길을 걷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던 어느 날, 현우는 거리에서 불의를 마주했고, 그들과 말다툼이 벌어졌다. 아버지에게 배운 대로 그는 타협 없이 자신의 정의를 외쳤다. 그러나 그 순간, 현우는 그들의 분노를 샀고, 끝내 폭행을 당하게 되었다. 그날 정수는 아들이 목숨을 잃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정수는 서둘러 현우가 쓰러진 곳으로 달려갔다. 차갑게 식은 아들의 몸을 끌어안으며 그는 자신이 아들에게 가르친 정의가 과연 무엇이었는지 되짚어보았다. 자신이 그렇게까지 신봉해온 정의의 무게가 어쩌면 현우를 이곳으로 이끌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평생을 바쳐 지켜온 신념이, 그토록 자랑스럽게 여기던 도덕적 기준이 과연 옳았는지 그는 깊은 의구심에 빠졌다.

아들의 죽음 앞에서, 정수는 여전히 자신의 신념을 버리지는 못했다. 그러나 그의 가슴 속에는 무거운 죄책감과 함께 자라나는 한 가지 생각이 있었다. 어쩌면, 어쩌면 자신이 틀렸을지도 모른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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