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35년, 인간의 시간 사용을 분석하고 최적화할 수 있는 획기적인 도구 "LifeMap"이 세상에 등장했다. 이 앱은 사용자가 어떤 활동에 얼마나 시간을 쓰는지 자동으로 기록하고, 이를 기반으로 생산성 지수(PQ)와 웰빙 지수(WQ)를 산출했다. 두 지수는 곧 개인의 삶의 효율성과 만족도를 상징하는 글로벌 표준이 되었고, 많은 회사와 기관은 이 데이터를 고용, 승진, 대출 심사에 활용하기 시작했다.
민준은 평범한 직장인이었다. 첫 월급을 받으며 시작한 그의 커리어는 어느새 7년 차에 접어들었지만, 성과는 늘 제자리걸음이었다. 그는 동료들이 점점 높은 PQ를 기록하며 승진하는 것을 지켜보며 자신도 LifeMap을 설치했다. 하지만 첫날 화면에 뜬 점수는 충격적이었다.
PQ: 47.
WQ: 32.
이 숫자들은 그가 얼마나 비효율적으로 시간을 보내고, 얼마나 자신을 돌보지 않았는지를 무자비하게 보여주고 있었다. 민준은 앱이 보내는 주기적인 알림에 따라 하루를 기록하기 시작했다. “현재 무엇을 하고 있습니까?”라는 질문에 처음엔 매번 짜증이 났지만, 곧 그는 점차 자신의 패턴을 인식하게 되었다.
새벽 2시까지 넷플릭스를 보고 늦잠을 잔 날에는 WQ가 떨어졌고, 집중하지 못한 작업 시간이 쌓일수록 PQ는 바닥을 쳤다. 반대로, 규칙적인 운동과 명상을 하면 점수는 눈에 띄게 올라갔다.
그는 점수를 개선하기 위해 작은 습관부터 바꿨다. 아침에 스마트폰을 보는 대신 스트레칭으로 시작했고, 업무 중에는 90분 집중-10분 휴식 루틴을 실천했다. 저녁에는 책을 읽으며 하루를 마무리했다.
변화는 빠르게 나타났다.
PQ: 47 → 65 → 78.
WQ: 32 → 50 → 68.
높아진 점수는 회사에서도 인정받았다. 상사는 그를 더 중요한 프로젝트에 배치했고, 동료들은 그의 변화를 부러워했다. 민준은 처음으로 자신의 성장을 실감하며 자신감을 얻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민준은 LifeMap의 또 다른 면을 보게 되었다. 동료들 사이에선 점수를 조작하기 위한 편법이 난무했다. 활동을 허위로 기록하거나, 불법적으로 점수를 높이는 해킹 프로그램을 사용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한편, 점수를 지나치게 의식한 나머지 스트레스를 받는 사람들도 많았다. 친구 은호는 높은 PQ를 유지하기 위해 잠을 줄이고, WQ를 올리기 위해 억지로 요가 수업에 참석했다. 하지만 정작 은호의 눈은 항상 피로에 가득 차 있었고, 진정한 만족감은 찾아볼 수 없었다.
민준은 의문을 품기 시작했다. “내가 정말로 더 나은 삶을 살고 있는 걸까, 아니면 점수를 위한 삶을 살고 있는 걸까?”
그는 LifeMap 없이 살아가는 삶을 상상해보았다. 점수는 없지만 자신이 진정으로 원하는 일을 선택하며 살던 시절을 떠올렸다. 하지만 곧 그는 그 시절의 비효율성과 무기력함도 기억해냈다. 점수가 없으면 다시 그 시절로 돌아갈까 두려웠다.
어느 날, 회사에서 중요한 발표를 준비하던 중이었다. 민준의 상사가 회의실에 들어오며 말했다.
“민준 씨, 이번 프로젝트는 PQ 85 이상인 사람들만 배정된 거 아시죠? 다음 주까지만 준비해주세요.”
그 말을 듣는 순간 민준은 자신이 단순히 점수로 평가되는 사회에 있다는 사실을 또다시 실감했다. 아무리 자신이 열심히 노력하고 성장해도, 사람들은 그의 점수만을 볼 뿐이었다.
그날 밤, 민준은 LifeMap의 알림을 무시한 채 침대에 누워 깊은 고민에 빠졌다. LifeMap은 분명 그의 삶에 긍정적인 변화를 가져왔지만, 동시에 점수 중심의 경쟁 사회를 만들어냈다. 자기 주도적 도구로 시작한 혁신은 이제 모든 것을 평가하고 규정짓는 도구로 변질되고 있었다.
그는 알림을 끄고 휴대폰을 뒤집어놓았다. 알림이 울리지 않는 어둠 속에서, 민준은 스스로에게 물었다.
“점수가 없는 삶이라면, 나는 어떤 사람이었을까?”
열린 창문으로 바람이 불어들어왔다. 민준은 그 질문에 답하지 못한 채 눈을 감았다. 하지만 그의 마음속엔 또 다른 의문이 자리 잡았다. 'LifeMap 없이는 더 나은 세상을 만들 수 없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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