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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알지 못한 사이, 우리의 삶이 누군가에게 빛이 되다

창문을 통해 건너편 건물을 바라보는 건 내 하루의 작은 습관 중 하나였다. 특히 저녁이면 어김없이 켜지는 그 집의 노란 불빛이 유난히 눈에 들어왔다. 그곳엔 젊은 부부가 살고 있었다. 집 안에서 함께 요리하거나, 소파에 나란히 앉아 영화를 보는 모습이 참 자주 보였다. 가끔은 서로를 보며 웃고 장난치는 모습이 내 눈에 들어왔고, 그럴 때마다 나는 그들의 자유로움이 부러웠다.

우리 집은 그와는 사뭇 달랐다. 저녁이면 두 아이가 놀다 흩어놓은 장난감을 치우느라 정신이 없었고, 설거지와 빨래는 늘 밀려 있었다. 아이들을 재우고 나면 어깨와 허리가 쑤셔왔고, 남편과 나 둘 다 소파에 몸을 맡긴 채 잠이 들 때도 많았다. 아이들을 키우며 느끼는 행복이 컸지만, 동시에 육아와 일상의 반복 속에서 피로가 쌓여가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그 젊은 부부는 그런 고민 따위는 없는 듯 보였다. 아이도 없고, 자유롭게 시간을 보내는 모습이 내가 한 번도 가져본 적 없는 무언가처럼 느껴졌다.
"우리도 저렇게 여유로웠던 때가 있었지,"라고 남편에게 말한 적이 있다.
남편은 아이들을 재우고 온 뒤 피곤한 얼굴로 나를 바라보며 웃었다.
"맞아. 그런데 지금이 더 좋지 않아? 우리 두 아이를 봐. 저 사람들은 저런 행복을 못 느껴봤을 수도 있어."
남편의 말은 옳았다. 아이들과 함께 보내는 시간이 얼마나 소중한지 나는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마음 한편엔 어쩔 수 없이 그 부부의 자유롭고 여유로운 삶이 부러웠다. 내게 없는 것을 가진 사람을 보는 기분이랄까.

"저 사람들은 얼마나 행복할까."
나는 그렇게 스스로에게 묻곤 했다. 행복하지 않은 건 아니었다. 그럼에도 그들의 삶은 너무 가벼워 보였고, 내 삶은 그 무게 때문에 더 힘들게 느껴졌다.


몇 주가 지나면서 건너편 부부의 모습이 조금씩 변하기 시작했다. 항상 함께 있던 그들이 점점 보이지 않더니, 하루는 남편 혼자 의자에 앉아 멍하니 창밖을 내다보는 모습이 보였다. 그 뒤로는 아내 혼자서 창문 옆에 앉아 있는 일이 많아졌다. 이상했다. 늘 행복해 보였던 그들에게 무슨 일이 생긴 걸까?

어느 날, 동네 슈퍼에서 만난 이웃에게 그들의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건너편 남편이 백혈병에 걸려 투병 중이라는 소식이었다. 나는 그 말을 듣고 마음이 무거워졌다. 내게 완벽하고 자유로워 보였던 그들의 삶은, 실은 우리가 상상하지 못한 아픔을 품고 있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그의 부고 소식을 들었다. 젊은 아내는 그 후에도 매일 창문 옆에 앉아 있었다. 어쩌다 눈이 마주치면 가볍게 웃어 보였지만, 그녀의 얼굴에는 깊은 슬픔이 배어 있었다.


며칠 뒤, 우연히 그녀와 엘리베이터에서 마주쳤다. 조용히 인사를 건넨 후, 용기를 내어 말을 걸었다.
"힘드셨죠... 제가 뭐라고 위로를 해야 할지 모르겠네요."
그녀는 잠시 침묵하더니 작게 웃으며 말했다.
"괜찮아요. 그래도 하루하루를 살아내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사실..."
그녀는 잠시 망설이더니 나를 바라보며 말했다.
"제가 힘들 때마다 당신네 가족을 보면서 위로를 받았어요. 두 아이와 함께 웃고 떠드는 모습이 참 좋아 보였거든요. 그 모습을 보면서, 언젠가 나도 저런 가족을 꾸리고 싶다는 상상을 하곤 했어요."

나는 말문이 막혔다. 그녀가 우리의 삶을 부러워하고 있었다니. 내가 부러워했던 그녀와 그녀의 남편은, 실은 나와 우리 가족을 보며 희망을 품고 있었던 것이다.


그날 이후, 나는 매일 아침 창문 너머 그녀의 창을 바라보았다. 그녀는 점점 창가에서 시간을 보내는 일이 줄어들었고, 가끔씩 밝은 얼굴로 밖으로 나가는 모습도 보였다. 그녀가 회복되어 가는 것을 보며, 나는 스스로를 돌아보게 되었다. 내 삶 또한 누군가에게는 희망이었다는 사실이 가슴을 따뜻하게 했다.

우리가 알지 못하는 사이, 우리의 존재가 누군가에게 위로가 되고, 삶의 작은 빛이 될 수 있다. 삶의 무게가 버거울 때, 어쩌면 그 사실 하나만으로도 우리는 살아갈 이유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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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쁨을 나누지 못하는 이유, 그리고 여전히 열려 있는 마음

오늘, 정말 좋은 일이 생겼다. 기쁘다. 오랜 시간 기다려왔던 일이 드디어 잘 풀린 거다. 너무 기뻐서, 누구에게 이 기쁨을 전하고 싶었다. 한참을 스마트폰을 들여다보다가, 문득 깨달았다. 연락할 사람이 없다는 사실을. 기쁜 일을 나누고 싶었는데, 나누고 싶은 사람이 없다는 게 이렇게도 허전한 일일 줄은 몰랐다.

그 순간, 무언가가 툭 튀어나왔다. 왜 없지? 왜 내가 기쁜 일을 말할 사람이 없지? 그 질문이 계속 내 머릿속을 맴돌았다. 왜 이런 건지... 나는 천천히 생각을 되돌려봤다. 그리고 기억이 뚝 끊기듯 떠올랐다. 그 일이 있었다. 그 기억. 그 친구들.

몇 년 전, 나는 또 그런 기쁜 일이 있었고, 마찬가지로 기쁨을 나누고 싶어서 연락을 했다. “오늘 좋은 일이 있었어. 너희랑 나누고 싶어서.” 그때는 단순히 그랬다. 나의 기쁨이, 누군가와 나눌 수 있을 만큼 소중했으니까. 그런데 그 후, 그 친구가 내 소식을 어떻게 전했는지 알게 됐다. 그 친구는 내 기쁜 소식을 다른 사람에게 이렇게 말한 거다. “걔, 이번에 완전 잘난 척하는 거 봤어. 진짜 못 봐주겠다.”

내가 그 말을 들었을 때, 그 순간의 공허함은 말로 표현할 수 없었다. 정말, 나는 이렇게 순수하게 기쁜 일을 나누고 싶었을 뿐이었다. 그건 단순한 기쁨이었고, 그저 나누고 싶은 마음이었다. 그런데 그게 그렇게 변질될 줄은 몰랐다. 그렇게 내 마음이 다른 사람에겐 비웃음거리로 변할 줄은 몰랐다. 그런 배신감이 내 가슴에 파고들었을 때, 나는 알았다. 더 이상 그렇게 마음을 열면 안 된다고.

그 후로, 나는 점점 사람들과의 거리를 두기 시작했다. 기쁜 일이 있어도 나누지 않았다. 내가 마음을 열어봤자, 또 다시 그런 일이 일어날까 봐 두려웠다. 내가 내 기쁨을 공유하면, 결국 그 기쁨은 나를 비웃는 도구가 될 거라고, 그런 생각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더 이상 먼저 연락하지 않게 됐다. 누군가 내게 연락을 하면, 고맙다고 생각하고 대답했지만, 나 자신은 여전히 그 문을 닫아두었다. 내 마음이 다시 상처받지 않도록.

그게 그렇게 쉽지 않다는 걸, 오늘에서야 다시 느꼈다. 기쁜 일이 생기면, 사람에게 말하고 싶은 그 마음은 아직도 남아있었다. 그러나 그건 나누지 않겠다고, 그 문을 닫은 거였다. 그렇게 스스로 만든 벽 안에서 나는 혼자서만 기쁨을 간직했다. 그런데 그게 왜 이렇게 공허한 거지? 왜 이렇게 텅 빈 마음이 되는 거지?

나는 이제 사람을 믿지 않는다. 내가 마음을 내비치면, 그 마음이 어떻게 변할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그때처럼, 내가 주었던 마음이 다시 내 등을 치고 돌아오는 건 너무나 싫었다. 그래서 나는 더 이상 먼저 다가가지 않는다. 그래도 괜찮다고 생각했다. 나는 혼자서도 잘 살 수 있을 거라 믿었다. 다른 사람들의 마음을 기대하지 않아도 될 만큼, 내 자신에게 충실하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 기쁨을 나누고 싶었던 내 마음은 여전히 가슴속에서 숨을 쉬고 있었다. 결국, 나는 그 문을 닫았지만, 그 문을 다시 열고 싶은 마음도 여전히 있었다. 그때처럼 누군가 나에게 그 문을 두드릴 수 있을까? 다시 한번 내 마음을 열 수 있을까? 모르겠다. 아마도 내 문은, 아직도 조금 열려 있는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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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은 혼란으로 가득 차 있었다. 전쟁과 기근, 미움과 갈등 속에서 사람들은 하나같이 '완벽'을 찾아 헤맸다. 전설에 따르면, 완벽에 도달한 자는 세상을 구원할 지혜를 얻는다고 했다.

선지자 아르만은 이 길을 택했다. 그는 세상의 어지러움을 바로잡을 방법을 찾기 위해 완벽을 추구하기로 결심했다. 스승에게서 배우고, 책을 탐독하며, 자신을 끊임없이 단련했다. "완벽이란 흔들리지 않는 마음, 결점 없는 판단, 그리고 끝없는 지식을 의미한다." 스승의 말을 가슴에 새긴 그는 세상과 단절한 채 산 속 동굴에 들어갔다.

그곳에서 그는 명상을 하고, 사색하며, 몸과 마음을 다듬었다. 자신이 쓸모없는 감정이나 두려움에 휘둘리지 않도록 철저히 훈련했다. 날이 가고 달이 바뀌며 세월은 그의 수염과 머리를 하얗게 만들었지만, 그는 흔들림 없이 자신의 길을 걸었다.

그리고 어느 날, 아르만은 드디어 깨달음을 얻었다. 더 이상 자신에게 어떤 결점도, 의심도 느껴지지 않았다. 그는 완벽한 지혜와 평정을 갖추었고, 두려움과 욕망을 넘어섰다. 마침내 그는 자신이 준비되었음을 느꼈다.

'이제 내가 세상을 구원할 것이다.'

마을로 내려오자 사람들은 그를 경외의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그의 맑은 눈과 흔들림 없는 태도는 그 자체로 완벽함을 상징했다. 사람들이 물었다.
"어떻게 하면 우리도 당신처럼 완벽해질 수 있습니까?"
아르만은 답했다.
"욕망과 두려움을 버리고, 끝없는 수련을 통해 마음을 비우십시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사람들은 점점 그를 멀리하기 시작했다.

"왜 당신은 여전히 슬퍼합니까? 이는 사소한 감정일 뿐입니다."
"왜 분노합니까? 그것은 불완전한 자아의 흔적입니다."

아르만의 말은 사람들의 마음을 더 가볍게 만들지 못했다. 오히려 그들은 그의 차가운 태도와 이해할 수 없는 충고에 고개를 저었다.
"그는 인간이 아니야. 우리와는 다르잖아."

사람들은 점차 그의 곁을 떠났고, 그는 홀로 남겨졌다.

동굴로 돌아온 아르만은 처음으로 자신의 마음을 들여다보았다. 완벽을 향해 걸었던 긴 여정 끝에 그는 무엇을 얻었는가? 그는 주변의 소리 없는 공기를 느끼며 중얼거렸다.
'나는 이제 아무것도 두렵지 않다. 그러나 왜 이렇게 고독한가?'

완벽이란 모든 결핍을 초월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결핍이 없는 상태는 곧 다른 이들과의 연결을 끊어내는 것이었다. 그는 자신이 완벽을 이루었지만, 그 과정에서 삶의 온기를 잃었음을 깨달았다. 인간은 결핍과 실수를 통해 서로를 이해하고 연결되지만, 완벽은 그 모든 것을 거부하는 상태였던 것이다.

아르만은 세월이 흘러가는 동안 혼자였다. 처음에는 고독을 견디려 했다. 그러나 점차 그 고독은 견디는 것이 아니라 그저 존재하는 것이 되었다. 완벽은 고독과 동전의 양면처럼 붙어 있었다.

그는 결국 다시 마을로 내려가기로 결심했다. 마을 사람들과 같은 수준에 머무르기로 한 것이 아니라, 그들과 대화하며, 느리지만 새로운 방식을 배우고자 했다. 이번엔 예전처럼 완벽한 존재로서가 아니라, 불완전한 존재로서 다가갔다. 그는 실수를 허용했고, 결핍을 숨기지 않았다.

처음엔 사람들은 그를 경멸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그의 말과 행동이 조금씩 그들의 마음에 닿기 시작했다. 그는 자신도 여전히 모르는 것이 많으며, 함께 살아가며 배우는 중이라고 고백했다. 그의 태도는 차갑지 않았고, 그의 조언은 이해할 수 있는 것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완벽을 추구하며 보낸 세월 동안 얻은 고독을 완전히 떨쳐낼 수는 없었다. 고독은 그가 살아온 방식이었고, 그 속에서 그는 세상을 바라보는 또 다른 눈을 갖게 되었다.

"완벽의 끝에는 무엇이 있었습니까?"
어느 날 한 사람이 그에게 물었다.

아르만은 잠시 눈을 감았다. 그리고 조용히 말했다.
"끝없는 고독이 있었다. 그러나 그 고독이 나를 다시 사람들 속으로 데려왔다."

그는 말을 마치고 다시 걷기 시작했다. 완벽과 고독의 무게를 짊어진 채, 그는 여전히 길 위에 있었다. 그 길이 어디로 향하는지는 아무도 몰랐지만, 그의 발걸음은 이전보다 조금 더 가벼워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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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연은 어릴 때부터 솔직함을 중요한 가치로 여겼다. 부모님이 늘 진솔하게 살아야 한다고 강조하셨고, 수연은 그 가르침을 따라 솔직하게 살아왔다. 모든 상황에서 자신의 의견을 거리낌 없이 표현했고, 누군가 거짓말을 하거나 상황을 둘러대는 것을 참지 못했다. 그만큼 자신에게는 솔직함이 자부심이자 정체성이었다.

20대와 30대 초반까지는 주변에서 "조금만 부드럽게 말해보면 어때?"라는 말을 듣기도 했지만, 그녀는 그럴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 친구들이 자신처럼 솔직하지 못해 불편해한다고 여겼고, 이를 고쳐야 한다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솔직함은 언제나 옳았고, 진실을 외면하는 사람들을 이해하지 못했다.

그러나 40대에 접어들면서부터 사람들의 태도는 변해갔다. 이제는 누구도 그녀에게 "부드럽게 말하라"고 충고하지 않았다. 오히려 점점 더 조용히, 천천히 그녀에게서 멀어져 갔다. 모임에서는 그녀를 빼놓고 일정을 잡는 일이 잦아졌고, 직장에서도 동료들이 대화 중에 자연스레 그녀를 제외했다. 일상적인 회의에서도 동료들이 무심히 그녀를 피하는 모습을 보면서도, 수연은 그 변화를 온전히 느끼지 못했다. 누군가 불편해한다는 피드백조차 들리지 않았다.

퇴근 후 혼자 집에 돌아온 밤, 수연은 가끔 와인 한 잔을 따랐다. 마른 입술을 적시는 차가운 와인에 쓴웃음을 지으며, 문득 이유 모를 눈물이 흐를 때가 있었다. 분명 오늘도 진실된 하루를 보냈건만, 왜인지 알 수 없는 울컥하는 감정이 밀려왔다. 그녀는 그저 피곤해서일 거라며 아무렇지 않게 넘겼다.

그렇게 수연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 점점 더 고립되어 갔다. 솔직함을 지키고 있다는 자부심 속에, 그녀는 점차 혼자 남겨지고 있었다. 누구도 그녀에게 무언가를 말해주지 않았고, 그녀는 그저 조용히 자신이 만들어낸 고독 속에 머물러 있을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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