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수는 서울 외곽에서 작은 책방을 운영하고 있었다. 대학 시절 그는 문학을 사랑했고, 사람들과 책에 대해 이야기하며 살아가는 것이 꿈이었다. 하지만 현실은 그의 상상과 달랐다. 손님은 점점 줄어들었고, 동네는 재개발로 고급 주거단지로 변해갔다. 대형 서점과 온라인 서점의 공세 속에서 그의 책방은 과거의 유물처럼 느껴졌다.
진수는 변화를 인정하지 않았다. 그는 책방을 새롭게 꾸미거나, 다른 방향으로 사업을 확장하는 대신, 여전히 오래된 방식으로 운영했다. 아날로그 감성을 강조하며 손님들에게 직접 손으로 쓴 추천 글귀를 남기곤 했다. 하지만 그의 노력이 무색하게 손님은 계속 줄어들었고, 책방은 점점 더 고립되어갔다.
어느 날, 단골이었던 젊은 직장인 현수가 찾아왔다.
“사장님, 여기 정말 좋지만, 요즘 사람들은 전자책이나 온라인으로 책을 더 많이 사요. 혹시 온라인으로도 판매해 보실 생각은 없으세요?”
진수는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
“책은 직접 만지고, 냄새를 맡고, 페이지를 넘기면서 읽어야 제맛이지. 그건 변하지 않는 진리야.”
현수는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책 한 권을 사고 나갔다. 그날 이후로 현수마저 책방에 오지 않았다.
책방 운영이 점점 어려워지던 어느 날, 진수는 10년 만에 대학 동기 모임에 나갔다. 과거 책과 글쓰기를 좋아하던 친구들이 어떻게 변했을지 궁금하기도 했고, 속으로는 자신이 여전히 문학을 사랑하며 살아간다는 사실에 은근히 자부심을 느꼈다.
모임에서 그는 놀라움을 감출 수 없었다. 친구들은 모두 다른 모습으로 변해 있었다. 시를 쓰던 선배는 인기 유튜버가 되어 자신의 시를 낭송하고 있었고, 출판사에서 일하던 친구는 온라인 서점 플랫폼에서 새로운 사업을 시작하고 있었다.
“진수야, 너는 아직도 책방 운영하니?” 한 친구가 물었다.
“응, 똑같이 하고 있어. 그게 가장 책다운 방식이잖아.”
그러나 그의 말에 친구들은 미묘한 침묵을 흘렸다. 한 친구가 조심스럽게 말했다.
“진수야, 세상이 변하고 있어. 우리도 그 흐름 속에서 책을 사랑하는 방식이 달라질 수밖에 없어. 네 방식도 좋지만, 그것만 고집하다 보면 놓치는 게 많아.”
진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는 여전히 자신이 옳다고 믿었지만, 친구들의 성공과 자신이 처한 현실 사이의 괴리감은 그를 불편하게 만들었다.
모임에서 돌아온 진수는 책방으로 가던 길에 폐허가 된 옛 동네를 지났다. 그곳은 재개발로 사라진 오래된 건물들이 있던 곳이었다. 그는 문득, 자신이 이 책방을 운영하며 고집했던 방식이 과거의 잔재에 불과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날 밤, 그는 책방에 홀로 앉아 오래된 책들을 바라봤다. 책방은 여전히 그에게 소중했지만, 그 소중함을 지키기 위해서는 자신도 변해야 한다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했다.
그는 결국 결심했다. 다음 날 그는 작은 카메라를 사서 자신의 책방에서 책을 소개하는 영상을 찍기 시작했다. 예전처럼 손으로 쓴 글귀를 화면에 띄우고, 책의 매력을 직접 말로 전달했다. 처음엔 어색했지만, 점점 익숙해졌다.
몇 달이 지나자 진수의 책방은 온라인에서 점점 더 알려지기 시작했다. 그의 영상은 진심이 느껴진다며 사람들 사이에서 화제가 되었고, 책방의 문을 두드리는 사람들이 하나둘 늘어났다.
진수는 깨달았다. 세상은 끊임없이 변하고, 자신도 그 안에서 변해야 한다는 것을. 하지만 변한다는 것이 자신의 본질을 잃는 것은 아니었다. 그는 여전히 책을 사랑했고, 그것을 전달하는 방식만 달라졌을 뿐이었다.
그날 밤, 그는 강변을 걸으며 흐르는 물을 바라보았다. 물살은 끊임없이 변했지만, 강은 여전히 그 자리에서 흐르고 있었다. 그는 미소 지으며 중얼거렸다.
“변화 속에서도 나를 지킬 수 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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