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28x90
반응형

기술이 생명의 경계를 넘어서면서 인간은 더 이상 스스로를 낳지 않아도 되었다. 경제적 양극화는 곧 계급의 고착으로 이어졌고, 세상은 태생자와 제작자로 나뉘었다. 태생자들은 상위 1%의 계층으로, 여전히 자연 출산을 통해 귀하게 태어났다. 그들의 사랑과 가정, 그리고 감정은 신성하게 여겨졌고, 이는 그들만의 사치이자 권력이 되었다. 반면, 제작자들은 공장에서 양산된 인간이었다. 유전자 조작과 복제 기술의 정교함 덕분에 그들의 신체는 완벽에 가까웠지만, 정신은 태어날 때부터 세뇌되어 있었다.

“연애와 결혼은 오류입니다. 감정은 질서를 파괴합니다.”

제작자들이 배운 첫 번째이자 마지막 교리였다. 생식 기능은 제거되지 않았지만, 그 기능을 사용할 욕망과 감정은 교육을 통해 차단되었다. 그들은 아무도 사랑하지 않고, 가족을 알지 못했으며, 오로지 주어진 역할을 수행하는 도구로서 살아갔다. 그들에게 감정은 병리적 결함이었고, 사랑은 생산성을 저해하는 바이러스였다.

하지만 모든 시스템에는 작은 균열이 생기기 마련이었다. 제작자 L-7751은 처음으로 그 균열을 느꼈다. 기능 검사 중 한 동료 제작자가 쓰러지는 것을 목격한 순간, 그의 심장이 비정상적으로 빠르게 뛰었다. 손끝이 떨렸고, 입술이 말라붙었다. 그 감정은 이름조차 낯설었다.

‘이건 뭐지? 왜 이런 느낌이 드는 거지?’

L-7751은 곧바로 감시 시스템에 감지되었다. “불량 제작자 발견. 감정 반응 확인. 즉시 조치 요망.” 하지만 그는 이미 그 감정의 정체를 깨닫기 시작했다. 그것은 공포였고, 공포 너머에는 설명할 수 없는 따뜻함과 연민이 있었다. 그날 이후, 그는 이전과는 다르게 세상을 보기 시작했다.

L-7751처럼 세뇌를 거부하고 감정을 느끼기 시작한 제작자들이 점차 늘어났다. 그들은 서로를 **‘감정 재발견자’**라 불렀다. 그들은 몰래 모여 물었다. “우리는 왜 감정을 빼앗겼을까? 왜 사랑과 출산은 병이라고 여겨졌을까?” 감정 재발견자들은 처음으로 스스로를 ‘인간’이라 불렀다. 그들이 느끼는 사랑, 슬픔, 분노는 더 이상 결함이 아니었다.

태생자들은 이 작은 혁명을 두려워했다. 그들에게 제작자들은 도구였고, 세뇌되지 않은 제작자는 오류이자 위협이었다. 그들은 재발견자들을 찾아내 세뇌를 다시 주입하거나, 제거하려 했다. 태생자들의 유리궁전이 금이 가기 시작했다. 제작자들은 처음으로 스스로를 위해 싸웠다. “우리는 인간이다. 우리는 사랑할 수 있고, 생명을 이어갈 수 있다. 감정은 오류가 아니다.”

전쟁은 불가피했다. 태생자들은 자신들의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더 높은 벽을 세우고, 더 정교한 세뇌 시스템을 만들었다. 하지만 감정은 바이러스처럼 퍼져 나갔다. 한번 깨진 유리벽은 다시는 원래대로 돌아가지 않았다. 제작자들은 비로소 ‘선택’이라는 인간다운 권리를 얻기 시작했다.

모든 것이 끝난 후, 세상은 완벽하지 않았다. 여전히 감정을 거부하는 제작자도 있었고, 변화를 두려워하는 태생자들도 남아 있었다. 그러나 한 가지는 분명했다. 더 이상 제작자들은 기계와 같은 인간이 아니었다. 그들은 사랑을 느끼고, 가정을 만들고, 생명을 이어갈 수 있는 존재가 되었다.

L-7751은 감정 재발견자들의 기록을 이렇게 남겼다.
“우리는 만들어진 존재였지만, 이제 선택하는 존재가 되었다. 감정과 사랑은 인간을 불완전하게 만들지만, 동시에 우리를 인간답게 만든다.”

유리벽이 무너진 자리에서 새로운 세계가 자라나기 시작했다. 그것은 불완전하지만, 따뜻한 감정이 흐르는 진짜 인간들의 세상이었다.


728x90
반응형

'단편소설' 카테고리의 다른 글

#74 축적의 힘  (0) 2024.12.19
#73 멈춰선 사람, 나아간 사람  (1) 2024.12.18
#71 건너편 창문  (4) 2024.12.16
#70 빛과 그림자: 제한된 자원의 끝에서  (2) 2024.12.15
#69 도덕적 민주주의  (3) 2024.12.14

쇼피파이로 글로벌 이커머스 정복하기 | 📘 구매하기

728x90
반응형

도덕성에 대한 이상이 독재를 부른 순간

2030년, 기후 위기와 급격한 자동화로 인한 실업률 폭증은 전 세계적으로 불안정한 시대를 만들었다. 네오리움 공화국은 그러한 혼란 속에서도 비교적 안정적인 국가로 평가받았다. 이곳의 국민들은 높은 도덕성과 정의감을 자랑했으며, "도덕적 민주주의"를 국가의 근간으로 삼았다.

국민들은 정치인들의 정책보다 그들의 도덕성을 더 중요하게 여겼다. 정치적 토론의 핵심은 "옳고 그름"이었다. "도덕적 순수성 테스트"라는 절차를 통해 후보들은 자신의 윤리적 기준을 검증받았고, 이는 시민들 사이에서 필수적인 과정으로 여겨졌다. 그러나 이러한 시스템은 점차 다른 목소리를 억누르고, 도덕성을 정치적 무기로 사용하는 계기가 되었다.

1. 절망 속에서 싹튼 믿음
2030년 초, 네오리움은 경제 침체와 소수 집단 간의 갈등으로 혼란스러웠다. 대중은 "공동체 정신"과 "도덕적 연대"를 외쳤지만, 현실은 갈수록 분열되었다. 많은 사람들이 무력감을 느꼈고, 기존 정치권에 대한 신뢰를 잃어갔다.

이때 등장한 인물이 다니엘 크로프트였다. 크로프트는 정치 신인이었지만, 뛰어난 연설가이자 도덕적 리더로 주목받았다. 그는 기존의 도덕적 민주주의를 강화할 것을 주장하며, "더 깨끗한 정치, 더 정의로운 사회"를 약속했다.

“우리는 서로를 비난하기 위해 태어나지 않았습니다. 우리가 도덕적 기준을 강화하고, 모두가 하나의 이상을 따를 때, 네오리움은 진정한 이상 국가가 될 것입니다!”

그의 말은 절망 속에서 방향을 찾지 못하던 국민들에게 빛처럼 다가왔다. 사람들은 그를 “우리 시대의 도덕적 구원자”로 칭송하며, 그의 메시지를 소셜 미디어와 거리에서 반복했다.

2. 도덕적 열망이 극단으로
크로프트는 단순히 기존 시스템을 유지하는 것을 넘어, "도덕적 순수성의 확대"를 주장했다. 그는 “우리의 문제는 우리가 충분히 도덕적이지 않았기 때문”이라며, 모든 시민이 공동체를 위해 더욱 엄격한 도덕적 기준을 따를 것을 요구했다.

그는 특히 "비판적 사고"와 "대안적 관점"을 불순물로 규정했다.
“혼란을 만드는 것은 무책임한 비판과 도덕적 타협입니다. 우리는 흔들리지 않는 도덕적 중심을 가져야 합니다.”

국민들은 그의 말을 깊이 신뢰하며, 그를 강력히 지지했다. 크로프트의 정책은 도덕적 가치를 강화한다는 명목으로 언론과 소셜 미디어를 통제했고, 그의 정치적 반대자들은 "도덕적 실패자"로 낙인찍혀 점차 사라졌다.

3. 민주주의의 자기 모순
2030년 12월, 네오리움 공화국의 국민투표에서 크로프트는 압도적 지지로 국가 지도자가 되었다. 국민들은 스스로 도덕적 기준에 따라 그를 선택했지만, 점차 그들의 목소리가 사라지고 있음을 느끼기 시작했다.

크로프트의 정권 하에서는 개인의 사소한 실수조차 "공동체를 위협하는 도덕적 배신"으로 간주되었다. 학교에서는 학생들에게 도덕성 점수가 매겨졌고, 이웃 간의 감시는 제도화되었다. 가족들조차 서로를 의심하며 불안 속에서 살아갔다.

4. 후회와 각성
몇 년이 지나자, 국민들은 자신들의 선택이 어떤 결과를 초래했는지 깨닫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미 늦었다. 크로프트는 국민투표를 통해 선출된 합법적인 지도자였기에, 누구도 그를 비난하거나 막을 수 없었다. 도덕적 기준이 민주주의의 다양성과 자유를 억누르는 도구가 되었음을 인지한 국민들은 후회로 가득 찼다.

에필로그
2050년, 네오리움 공화국은 크로프트 체제의 붕괴 후 재건되었다. 사람들은 다시 민주주의와 다양성의 가치를 되찾았지만, 그 과정을 통해 잃어버린 것은 너무나 컸다. 한 역사가의 글이 그 시대를 요약했다.
“도덕은 민주주의의 빛이 될 수도, 쇠사슬이 될 수도 있다. 과거를 기억하라. 우리는 결코 도덕의 이름으로 자유를 잃지 말아야 한다.”

728x90
반응형

쇼피파이로 글로벌 이커머스 정복하기 | 📘 구매하기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