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훈은 어릴 때부터 ‘안정적인 길’을 선택하는 사람으로 불렸다. 낯선 상황, 새로운 도전 앞에서 그는 늘 뒷걸음질 치곤 했다. 친구들은 그런 그를 보며 농담처럼 말하곤 했다.
“지훈이는 항상 그림자에 쫓기면서 사네.”
그는 그 말을 농담으로 넘겼지만, 사실 속으론 자신도 모르게 그림자 같은 무언가에 계속 쫓기고 있다는 느낌을 떨칠 수 없었다. 대학을 졸업한 뒤에도 그는 큰 변화를 두려워했다. 회사에서 새로운 프로젝트를 맡아보라는 제안이 들어왔을 때, 그는 머릿속으로 온갖 이유를 만들어내며 거절했다.
“제 성격상 그런 건 안 맞는 것 같아요. 더 잘할 수 있는 분이 하시는 게 나을 것 같습니다.”
그날 밤, 지훈은 답답한 마음에 오랜만에 그의 멘토인 동철 선생님을 찾아갔다. 동철 선생님은 은퇴한 심리학 교수로, 가끔 지훈에게 조언을 해주는 사람이었다.
“선생님, 저는 왜 이렇게 모든 게 두렵기만 할까요?” 지훈은 카페에 앉아 고개를 숙인 채 말했다.
동철은 그의 말을 듣고 잠시 생각하더니, 테이블 위에 놓인 작은 양초를 가리켰다.
“저 양초를 한번 봐라. 불이 밝게 타오르고 있지?”
지훈은 고개를 들어 양초를 바라보았다.
“네, 그렇습니다.”
“불이 타오르니 그림자도 생기지 않느냐?”
지훈은 고개를 갸웃했다. “그림자요?”
동철은 양초 옆에 자신의 손을 비추며 말했다. “봐라. 불빛이 있는 곳엔 그림자가 따라오는 법이지. 그런데 내가 묻겠다. 저 그림자가 널 해칠 수 있겠니?”
지훈은 잠시 멍하니 그림자를 바라보다가 고개를 저었다.
“아니요, 해칠 수는 없겠죠.”
동철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렇다. 그림자는 그저 빛이 만들어내는 허상일 뿐이다. 그런데 불꽃은 다르지. 불꽃은 네 손을 데일 수도 있고, 불이 번지면 커다란 화재를 낼 수도 있다. 불꽃은 진짜 두려워할 만한 것이지. 하지만 그림자는 아무것도 하지 못한다.”
지훈은 선생님의 말을 듣고 고개를 끄덕였지만, 여전히 이해가 완벽하진 않았다. 동철은 다시 말을 이었다.
“지훈아, 우리 마음속 두려움도 이와 비슷하단다. 불꽃은 실제로 너를 위협할 수 있는 현실적인 위험이고, 그림자는 그저 네 머릿속에서 만들어낸 불안감이지. 너는 지금까지 그림자를 보고 두려워하며 피했지만, 정작 불꽃을 마주할 기회는 놓쳐버리지 않았겠느냐?”
지훈은 가만히 멍하니 앉아 있었다. 그의 머릿속에서는 그동안 자신이 피했던 일들이 떠올랐다. 프로젝트를 맡아보라는 상사의 제안, 친구들과 함께 떠나자는 해외여행, 심지어 대학 시절 좋아했던 사람에게 말을 걸지 못했던 순간까지. 모두 위험할 것 같다고 생각했지만, 정작 그것들이 위험했는지는 알지 못했다.
“그러면, 제가 지금까지 피했던 것들은… 다 그림자 같은 것이었겠네요.”
동철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었다.
“그럴 가능성이 크다. 물론 불꽃도 존재하지. 너를 진짜로 다치게 할 수 있는 위험 말이다. 하지만 문제는 네가 불꽃과 그림자를 구분하지 못한다는 거야. 불꽃을 두려워하는 건 생존에 필요하지만, 그림자를 두려워하는 건 너를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게 발목만 잡는단다.”
그날 밤, 지훈은 자신의 방에 앉아 작은 노트를 꺼냈다. 그리고 ‘불꽃과 그림자’라는 제목을 적은 뒤, 자신이 피했던 일들 중 무엇이 불꽃이었고, 무엇이 그림자였는지를 나누어 적기 시작했다. 놀랍게도 대부분은 그림자에 불과했다.
며칠 뒤, 지훈은 상사에게 찾아가 말했다.
“이번 프로젝트, 제가 맡아보겠습니다.”
그의 목소리는 여전히 떨렸지만, 이번엔 자신이 마주하고 있는 것이 그림자인지 불꽃인지 스스로 구분할 수 있었다.
그날 이후, 지훈은 새로운 도전 앞에서도 망설임 없이 한 걸음 내딛는 법을 배웠다. 그리고 그림자는 그저 뒤에 남겨두고 지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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