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수는 퇴근 후 지하철에 앉아 창밖을 멍하니 바라봤다. 어둡고 텅 빈 창에 비친 자신의 얼굴이 낯설었다.
‘나는 왜 이렇게 심심하지?’
회사에서 하는 일도 지루하고, 집에 가도 딱히 할 게 없다. 넷플릭스나 책도 한두 번이지, 요즘은 뭐든 금방 흥미를 잃었다. 그저 하루를 버티며 살아가는 기분이었다.
며칠 전 팀 회식에서 민수는 팀원들에게 물었다.
“다들 퇴근하면 뭐 하세요? 집에 가서 재미있는 거라도 하세요?”
팀원들은 처음엔 서로 눈치만 보다가 하나둘씩 입을 열었다.
“그냥 핸드폰 보다가 자죠.”
“넷플릭스요. 근데 볼 만한 게 없어서 맨날 같은 거 돌려봐요.”
“요즘 다이어트 중이라 간식도 안 먹어요. 그러니까 더 심심하더라고요.”
모두 같은 말을 하고 있었다. 민수는 안도와 허탈함 사이의 묘한 감정을 느꼈다.
‘다들 나처럼 사는구나. 나 혼자만 심심한 게 아니었네.’
그때, 회식 자리 한쪽에서 팀장이 웃음을 터뜨렸다.
“그런 고민도 사치예요. 육아하다 보면 심심할 틈이 없거든요.”
모두의 시선이 팀장에게 쏠렸다. 그는 피곤한 기색이 역력한 얼굴로 말했다.
“쌍둥이 아들 키우고 있는데, 뭐 심심한 건 고사하고 제대로 쉬지도 못해요. 둘이 동시에 울고, 동시에 밥 달라고 하고, 동시에 기저귀 갈아야 하니까 집이 전쟁터죠. 퇴근 후가 아니라 퇴근 없는 삶이에요.”
팀원들 사이에서 웃음이 터졌지만, 민수는 묘한 기분이 들었다.
“근데 힘들기만 한 건 아니에요.” 팀장이 말을 이었다. “애들 재우고 잠깐 앉아있을 때, 그 조용한 순간이 그렇게 좋더라고요. 뭐 특별히 하는 것도 없는데, 그 순간이 나한테는 진짜 행복이에요.”
민수는 집으로 돌아오는 길 내내 팀장의 말을 곱씹었다.
‘나는 이렇게 심심한데, 저 사람은 전쟁 같은 삶 속에서 의미를 찾고 있네.’
그날 밤, 민수는 침대에 누워 생각했다.
‘나는 왜 아무리 자유로워도 삶이 공허할까? 오히려 강제로 해야만 하는 일이 없어서 그런 건가?’
다음 날, 민수는 출근 후 팀장을 유심히 관찰했다. 팀장은 피곤해 보였지만 일에 열중하고 있었다. 그의 책상 한쪽엔 쌍둥이 아들 사진이 놓여 있었다. 그 사진을 바라보는 팀장의 표정은 다른 누구보다도 따뜻했다.
민수는 깨달았다.
팀장은 선택의 여지가 없는 강제적인 상황—육아라는 책임 속에서 의미를 찾고 있었다. 그 책임이 힘들고 지치게 했지만, 동시에 삶의 목적을 만들어 무료함이라는 감정을 완전히 사라지게 했다.
민수는 자신에게 없던 것이 무엇인지 알게 됐다.
“나는 너무 자유로웠던 거야. 뭘 해도 되고 안 해도 되니까, 아무것도 의미가 없었지.”
그날 저녁, 민수는 집에서 가만히 앉아 자신에게 의미가 될 수 있는 일을 생각하기 시작했다. 그것이 무엇이든, 그 일을 선택하는 순간 자신의 무료함도 사라질 것 같았다. 삶은 가끔, 해야만 하는 일을 통해 비로소 완성될 수 있다는 것을 그는 이제야 알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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