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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장: 민호와 세연

민호는 언제나 밝고 단단한 아이였다. 부모님이 운영하는 작은 식당에서 돕느라 늘 바빴지만, 그는 친구들에게 누구보다 잘 웃어주었다. 가끔 낡은 운동화를 신고 있어도, 민호의 자신감은 그의 겉모습과는 상관없어 보였다.

세연은 달랐다. 그녀는 누구나 부러워할 만한 환경에서 자랐다. 아파트 창밖으로 보이는 강남의 스카이라인은 그녀의 배경이었고, 부모님은 세연의 학업과 장래를 위해 무엇 하나 아끼지 않았다. 하지만 완벽하게 보이는 세연의 마음속에는 늘 알 수 없는 불안감이 자리 잡고 있었다.

“왜 민호 같은 애는 늘 당당하지? 가진 것도 없으면서…”

세연은 민호가 웃고 떠드는 모습만 봐도 어딘가 불편했다. 민호가 자기가 이룬 것도 없는 주제에 주목받는 게 싫었고, 자신이 가졌지만 채우지 못한 것을 민호가 가진 듯한 느낌이 들었다.



2장: 연극 대회 준비

학교에서 반 대항 연극 대회가 열리기로 했다. 민호가 팀장이 되었고, 세연은 그 사실을 듣자마자 속으로 코웃음을 쳤다.
“왜 민호가 팀장이야?” 세연은 친구들에게 물었다.
“민호가 제일 열심히 하잖아. 다들 좋아하고.”

세연은 불만스러웠다.
“그냥 다들 만만하니까 따라가는 거겠지.”

연극 회의가 시작되었다. 민호는 친구들의 의견을 하나하나 받아들이며 대본 아이디어를 정리했다.
“우리 연극은 평범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해보자.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내용이면 좋을 것 같아.”

세연이 손을 들었다.
“민호야, 그거 너무 뻔하지 않아? 관객들이 재미없어할 것 같은데.”

민호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럼 세연이는 어떤 아이디어가 있어?”

세연은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글쎄. 난 민호처럼 뻔한 생각은 안 할 것 같은데.”

주변 친구들이 당황한 기색을 보였지만, 민호는 그저 웃으며 말했다.
“좋아. 더 좋은 아이디어 있으면 언제든 말해줘.”



3장: 세연의 결핍

세연은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혼자 생각에 잠겼다.
“나는 왜 이렇게 민호가 싫을까?”

그녀는 민호를 보며 자신도 모르게 위축되는 기분이 들었다. 세연은 완벽한 성적표와 우아한 집안을 자랑할 수 있었지만, 자신이 민호처럼 다른 사람을 진심으로 즐겁게 해줄 수 없다는 사실이 신경 쓰였다. 그녀가 민호를 무시하는 말을 할 때마다, 주변에서 들려오는 미묘한 침묵은 그녀를 더욱 불편하게 만들었다.

그녀의 부모는 늘 말했다.
“세연아, 너는 1등이어야 해. 세상은 네가 약해지는 걸 허락하지 않아.”

완벽해야 한다는 압박감 속에서, 세연은 웃음조차 계산하며 살았다. 그래서 민호 같은 아이가 더 이해되지 않았다. 가진 것도 없는 민호가 왜 그렇게 당당한지, 세연은 알 수 없었다.



4장: 갈등의 폭발

연극 연습이 진행될수록 민호와 세연의 갈등은 점점 깊어졌다. 민호는 늦은 시간까지 남아 친구들의 연기를 도왔고, 모두가 그의 노력에 점점 마음을 열었다. 하지만 세연은 점점 소외감을 느꼈다.

어느 날, 연습 도중 민호가 친구들에게 격려의 말을 전하고 있을 때, 세연이 큰 소리로 말했다.
“민호야, 너 좀 너무 우쭐대는 거 아니야? 솔직히 네가 잘해서 연극이 잘 되는 게 아니잖아. 우리가 맞춰주는 거지.”

교실 안이 조용해졌다. 민호는 잠시 말을 멈췄다가 조용히 물었다.
“세연아, 내가 뭘 잘못했어?”

그러나 세연은 멈추지 않았다.
“잘난 척하지 마. 가진 것도 없는 주제에.”

순간, 교실 안은 더 깊은 침묵에 휩싸였다. 민호는 세연의 말을 조용히 받아들였다.
“그래, 나는 가진 게 많지 않아. 하지만 난 지금 이 순간이 좋아. 너한테는 별로 중요하지 않을지 몰라도, 나한테는 정말 소중한 순간이야.”

세연은 민호의 눈빛을 보고 순간적으로 흔들렸다. 하지만 입에서는 또다시 후회할 말이 나왔다.
“어차피 너는 평생 이런 걸로 만족하며 살겠지. 별 기대할 것도 없으니까.”

민호는 더 이상 대꾸하지 않았다. 주변 친구들도 아무 말 없이 고개를 돌렸다.



5장: 후회와 깨달음

그날 밤, 세연은 집에서 침대에 누워있었다. 민호에게 했던 말들이 자꾸 떠올랐다.
“왜 그런 말을 했지? 그 애는 나한테 잘못한 게 없는데…”

민호는 자신이 가진 것이 적어도 그것에 대해 부끄러워하지 않았고, 오히려 자신의 삶을 즐길 줄 알았다. 반면, 세연은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이 오히려 자신을 옭아매는 느낌이었다.

“민호가 나를 미워한 적은 없는데, 왜 나는 그 애를 그렇게 미워했을까?”

세연은 처음으로 자신의 불안을 마주했다. 완벽해야 한다는 압박, 늘 비교당하며 자랐던 자신의 모습을.



6장: 다른 길

연극 대회는 민호가 이끈 반의 승리로 끝났다. 민호는 친구들과 기쁨을 나눴고, 세연은 뒤에서 그 장면을 바라봤다. 그녀는 무언가를 말하고 싶었지만, 그럴 용기가 나지 않았다.

졸업 후, 민호와 세연은 서로 다른 길을 걸었다. 민호는 부모님의 가게를 이어받아 행복하게 살았고, 세연은 끊임없이 성공을 쫓았다.

그러나 가끔, 세연은 민호를 떠올렸다. 자신이 미워했던 것은 민호가 아니라, 민호가 가진 결핍 없는 당당함이었다는 것을 이제야 깨달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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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훈은 어릴 때부터 ‘안정적인 길’을 선택하는 사람으로 불렸다. 낯선 상황, 새로운 도전 앞에서 그는 늘 뒷걸음질 치곤 했다. 친구들은 그런 그를 보며 농담처럼 말하곤 했다.

“지훈이는 항상 그림자에 쫓기면서 사네.”

그는 그 말을 농담으로 넘겼지만, 사실 속으론 자신도 모르게 그림자 같은 무언가에 계속 쫓기고 있다는 느낌을 떨칠 수 없었다. 대학을 졸업한 뒤에도 그는 큰 변화를 두려워했다. 회사에서 새로운 프로젝트를 맡아보라는 제안이 들어왔을 때, 그는 머릿속으로 온갖 이유를 만들어내며 거절했다.

“제 성격상 그런 건 안 맞는 것 같아요. 더 잘할 수 있는 분이 하시는 게 나을 것 같습니다.”

그날 밤, 지훈은 답답한 마음에 오랜만에 그의 멘토인 동철 선생님을 찾아갔다. 동철 선생님은 은퇴한 심리학 교수로, 가끔 지훈에게 조언을 해주는 사람이었다.



“선생님, 저는 왜 이렇게 모든 게 두렵기만 할까요?” 지훈은 카페에 앉아 고개를 숙인 채 말했다.

동철은 그의 말을 듣고 잠시 생각하더니, 테이블 위에 놓인 작은 양초를 가리켰다.

“저 양초를 한번 봐라. 불이 밝게 타오르고 있지?”

지훈은 고개를 들어 양초를 바라보았다.

“네, 그렇습니다.”

“불이 타오르니 그림자도 생기지 않느냐?”

지훈은 고개를 갸웃했다. “그림자요?”

동철은 양초 옆에 자신의 손을 비추며 말했다. “봐라. 불빛이 있는 곳엔 그림자가 따라오는 법이지. 그런데 내가 묻겠다. 저 그림자가 널 해칠 수 있겠니?”

지훈은 잠시 멍하니 그림자를 바라보다가 고개를 저었다.

“아니요, 해칠 수는 없겠죠.”

동철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렇다. 그림자는 그저 빛이 만들어내는 허상일 뿐이다. 그런데 불꽃은 다르지. 불꽃은 네 손을 데일 수도 있고, 불이 번지면 커다란 화재를 낼 수도 있다. 불꽃은 진짜 두려워할 만한 것이지. 하지만 그림자는 아무것도 하지 못한다.”

지훈은 선생님의 말을 듣고 고개를 끄덕였지만, 여전히 이해가 완벽하진 않았다. 동철은 다시 말을 이었다.

“지훈아, 우리 마음속 두려움도 이와 비슷하단다. 불꽃은 실제로 너를 위협할 수 있는 현실적인 위험이고, 그림자는 그저 네 머릿속에서 만들어낸 불안감이지. 너는 지금까지 그림자를 보고 두려워하며 피했지만, 정작 불꽃을 마주할 기회는 놓쳐버리지 않았겠느냐?”

지훈은 가만히 멍하니 앉아 있었다. 그의 머릿속에서는 그동안 자신이 피했던 일들이 떠올랐다. 프로젝트를 맡아보라는 상사의 제안, 친구들과 함께 떠나자는 해외여행, 심지어 대학 시절 좋아했던 사람에게 말을 걸지 못했던 순간까지. 모두 위험할 것 같다고 생각했지만, 정작 그것들이 위험했는지는 알지 못했다.

“그러면, 제가 지금까지 피했던 것들은… 다 그림자 같은 것이었겠네요.”

동철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었다.

“그럴 가능성이 크다. 물론 불꽃도 존재하지. 너를 진짜로 다치게 할 수 있는 위험 말이다. 하지만 문제는 네가 불꽃과 그림자를 구분하지 못한다는 거야. 불꽃을 두려워하는 건 생존에 필요하지만, 그림자를 두려워하는 건 너를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게 발목만 잡는단다.”



그날 밤, 지훈은 자신의 방에 앉아 작은 노트를 꺼냈다. 그리고 ‘불꽃과 그림자’라는 제목을 적은 뒤, 자신이 피했던 일들 중 무엇이 불꽃이었고, 무엇이 그림자였는지를 나누어 적기 시작했다. 놀랍게도 대부분은 그림자에 불과했다.

며칠 뒤, 지훈은 상사에게 찾아가 말했다.

“이번 프로젝트, 제가 맡아보겠습니다.”

그의 목소리는 여전히 떨렸지만, 이번엔 자신이 마주하고 있는 것이 그림자인지 불꽃인지 스스로 구분할 수 있었다.

그날 이후, 지훈은 새로운 도전 앞에서도 망설임 없이 한 걸음 내딛는 법을 배웠다. 그리고 그림자는 그저 뒤에 남겨두고 지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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