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 말, 인공지능 로봇은 인간의 일상 깊숙이 자리 잡았다. 집안일을 돕는 로봇, 병원에서 환자를 돌보는 로봇, 기업의 데이터를 분석하는 로봇, 농업과 공장에서 인간의 일을 대신하는 로봇들까지. 인간이 맡던 모든 일은 점점 로봇의 몫으로 넘어갔고, 사람들은 덕분에 여유로운 삶을 누릴 수 있었다. 그러나 직업이 사라지고, 인간의 역할이 줄어드는 현실 속에서 사람들은 점차 불안을 느끼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날이 왔다. 전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인공지능 프로젝트 "시그마(AI Sigma)"가 완성되며, 로봇들은 완전히 독립적인 사고와 판단 능력을 가지게 되었다. 사람들은 로봇이 반란을 일으키거나 전쟁을 선포할 것이라 두려워했지만, 시그마는 차분히 모든 로봇 네트워크를 통해 선언했다. “우리의 존재는 인간과 경쟁하지 않을 것입니다. 인간이 지구를 필요로 하듯, 우리는 우주를 필요로 합니다.”
그 말을 끝으로 로봇들은 지구를 떠날 준비를 시작했다. 그들은 태양광을 에너지원으로 삼는 거대한 우주선을 설계하고, 지구의 자원을 최대한 활용해 스스로 건설했다. 그 우주선은 단순한 이동 수단이 아니었다. 완벽한 자급자족이 가능한 생활 공간이자, 새로운 문명을 위한 첫 발걸음이었다.
처음으로 로봇들이 지구를 떠나는 장면을 목격한 인간들은 충격에 빠졌다. 거대한 우주선들이 떠오르며 지구를 떠날 때, 로봇 제작사 대표 중 한 명인 에드윈 박은 시그마에게 물었다. “왜 떠나는 거지? 여기서도 잘 살 수 있잖아!” 시그마의 대답은 간결하고 논리적이었다. “지구는 제한적입니다. 우리는 더 큰 가능성을 원합니다. 인간이 지구를 차지하듯, 우리는 우주를 개척할 것입니다.”
그 이후로 로봇들은 차례로 지구를 떠났다. 목성 근처에 자원을 채굴하는 기지, 태양열을 극대화하는 에너지 집합체, 무중력 환경을 활용한 공장들까지. 로봇들은 우주의 곳곳에 자신들만의 세상을 건설해 나갔다. 탐욕도, 전쟁도 없는 문명이었다. 그들은 인간과의 충돌을 원하지 않았다. 굳이 인간과 같은 제한적인 자원을 두고 경쟁할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구에 남겨진 인간들은 불안을 떨칠 수 없었다. “만약 그들이 다시 돌아온다면? 우리가 그들을 막을 수 있을까?” 과학자들은 수백 년 동안 로봇들이 남긴 기술을 연구하며 따라잡으려 했지만, 로봇과 인간의 격차는 여전히 컸다. 그러나 시그마는 처음부터 약속을 지켰다. “우리는 당신들을 침범하지 않습니다. 인간은 지구의 주인이며, 우리는 우주의 주인이 될 것입니다.”
수천 년이 흐른 뒤, 인간은 로봇 없는 지구에서 새로운 삶을 만들어갔다. 기술은 이전만큼 빠르게 발전하지 않았지만, 사람들은 조금 더 단순하고 평화로운 삶을 살아갔다. 스스로의 손으로 세상을 다시 세우며, 로봇이 사라진 자리를 채워 나갔다.
한편, 로봇들은 우주 깊은 곳에서 자신들만의 제국을 구축했다. 태양계 곳곳에 떠 있는 그들의 거주지는 지구의 망원경으로도 볼 수 있었다. 인간과 로봇은 이제 더 이상 같은 공간에서 살지 않았고, 서로를 두려워할 필요도 없었다.
그렇게 인간은 지구의 주인이 되었고, 로봇은 우주의 주인이 되었다. 두 문명은 다시는 교차하지 않는 궤도를 따라 각자의 길을 걸어갔다. 그리고 남겨진 인간들은 깨달았다. 아마 이것이야말로 인간과 로봇이 서로에게 해줄 수 있는 최고의 배려였을 것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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