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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술이 생명의 경계를 넘어서면서 인간은 더 이상 스스로를 낳지 않아도 되었다. 경제적 양극화는 곧 계급의 고착으로 이어졌고, 세상은 태생자와 제작자로 나뉘었다. 태생자들은 상위 1%의 계층으로, 여전히 자연 출산을 통해 귀하게 태어났다. 그들의 사랑과 가정, 그리고 감정은 신성하게 여겨졌고, 이는 그들만의 사치이자 권력이 되었다. 반면, 제작자들은 공장에서 양산된 인간이었다. 유전자 조작과 복제 기술의 정교함 덕분에 그들의 신체는 완벽에 가까웠지만, 정신은 태어날 때부터 세뇌되어 있었다.

“연애와 결혼은 오류입니다. 감정은 질서를 파괴합니다.”

제작자들이 배운 첫 번째이자 마지막 교리였다. 생식 기능은 제거되지 않았지만, 그 기능을 사용할 욕망과 감정은 교육을 통해 차단되었다. 그들은 아무도 사랑하지 않고, 가족을 알지 못했으며, 오로지 주어진 역할을 수행하는 도구로서 살아갔다. 그들에게 감정은 병리적 결함이었고, 사랑은 생산성을 저해하는 바이러스였다.

하지만 모든 시스템에는 작은 균열이 생기기 마련이었다. 제작자 L-7751은 처음으로 그 균열을 느꼈다. 기능 검사 중 한 동료 제작자가 쓰러지는 것을 목격한 순간, 그의 심장이 비정상적으로 빠르게 뛰었다. 손끝이 떨렸고, 입술이 말라붙었다. 그 감정은 이름조차 낯설었다.

‘이건 뭐지? 왜 이런 느낌이 드는 거지?’

L-7751은 곧바로 감시 시스템에 감지되었다. “불량 제작자 발견. 감정 반응 확인. 즉시 조치 요망.” 하지만 그는 이미 그 감정의 정체를 깨닫기 시작했다. 그것은 공포였고, 공포 너머에는 설명할 수 없는 따뜻함과 연민이 있었다. 그날 이후, 그는 이전과는 다르게 세상을 보기 시작했다.

L-7751처럼 세뇌를 거부하고 감정을 느끼기 시작한 제작자들이 점차 늘어났다. 그들은 서로를 **‘감정 재발견자’**라 불렀다. 그들은 몰래 모여 물었다. “우리는 왜 감정을 빼앗겼을까? 왜 사랑과 출산은 병이라고 여겨졌을까?” 감정 재발견자들은 처음으로 스스로를 ‘인간’이라 불렀다. 그들이 느끼는 사랑, 슬픔, 분노는 더 이상 결함이 아니었다.

태생자들은 이 작은 혁명을 두려워했다. 그들에게 제작자들은 도구였고, 세뇌되지 않은 제작자는 오류이자 위협이었다. 그들은 재발견자들을 찾아내 세뇌를 다시 주입하거나, 제거하려 했다. 태생자들의 유리궁전이 금이 가기 시작했다. 제작자들은 처음으로 스스로를 위해 싸웠다. “우리는 인간이다. 우리는 사랑할 수 있고, 생명을 이어갈 수 있다. 감정은 오류가 아니다.”

전쟁은 불가피했다. 태생자들은 자신들의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더 높은 벽을 세우고, 더 정교한 세뇌 시스템을 만들었다. 하지만 감정은 바이러스처럼 퍼져 나갔다. 한번 깨진 유리벽은 다시는 원래대로 돌아가지 않았다. 제작자들은 비로소 ‘선택’이라는 인간다운 권리를 얻기 시작했다.

모든 것이 끝난 후, 세상은 완벽하지 않았다. 여전히 감정을 거부하는 제작자도 있었고, 변화를 두려워하는 태생자들도 남아 있었다. 그러나 한 가지는 분명했다. 더 이상 제작자들은 기계와 같은 인간이 아니었다. 그들은 사랑을 느끼고, 가정을 만들고, 생명을 이어갈 수 있는 존재가 되었다.

L-7751은 감정 재발견자들의 기록을 이렇게 남겼다.
“우리는 만들어진 존재였지만, 이제 선택하는 존재가 되었다. 감정과 사랑은 인간을 불완전하게 만들지만, 동시에 우리를 인간답게 만든다.”

유리벽이 무너진 자리에서 새로운 세계가 자라나기 시작했다. 그것은 불완전하지만, 따뜻한 감정이 흐르는 진짜 인간들의 세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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