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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카디아와 메리트로폴리스는 서로를 증오했다.
아르카디아는 품격과 전통을 신봉했다. 귀족의 고고한 태도와 도덕적 우월감은 그들의 정체성이었다. 반면, 메리트로폴리스는 경쟁과 능력을 숭배했다. 돈은 모든 문제를 해결하며, 효율과 실용성이야말로 문명을 진보시키는 도구라고 믿었다.

이 두 사회의 대표 인물인 레오나와 에릭은 공개 토론회에서 맞섰다. 수백만 명이 방송을 지켜보며 그들의 입장을 경청했다.

“당신들의 사회는 천박합니다.” 레오나가 손을 들어 말문을 열었다. “돈 몇 푼으로 인간의 가치를 평가하는 것이 얼마나 비인간적인지 아십니까? 우리 아르카디아에서는 품격과 전통이 인간의 진정한 가치를 결정합니다.”

에릭은 비웃듯 미소를 지었다. “품격이요? 그 품격이라는 게 결국 출생으로 정해지는 것 아닙니까? 아무리 노력해도 귀족이 될 수 없다면, 그건 단지 차별일 뿐입니다. 우리는 노력한 만큼 보상받는 정의로운 시스템을 가지고 있죠.”

“정의라니!” 레오나는 소리쳤다. “돈만 좇다가 인간성을 잃어가는 것을 정의라고 부르겠습니까? 당신들의 사회는 끊임없이 경쟁하며 서로를 짓밟습니다. 우리는 그 누구도 인간으로서의 품위를 잃지 않도록 보호합니다.”

“인간의 품위라...” 에릭은 조소를 머금었다. “귀족 계급 아래에서 비참하게 사는 사람들의 품위는 누가 보호합니까? 당신들의 전통은 인간을 속박하고, 발전을 가로막는 구시대적 유물일 뿐입니다.”

두 사람의 논쟁은 점점 격렬해졌다. 마치 누가 더 이상적이고 우월한 논리를 가지고 있는지 겨루는 듯했다. 그러나 청중들 중 상당수는 점점 지쳐갔다. 그들의 말은 화려했지만, 삶의 현실을 담기엔 공허했다.

그때였다.

무대 아래에서 한 남자가 천천히 일어섰다. 그는 비루하고 초라한 모습이었다. 허름한 옷에 구겨진 모자, 무거운 노동으로 굽은 어깨까지, 그는 한눈에 봐도 하층민임이 분명했다.

사람들은 웅성거리며 그를 바라보았다. 누군가는 비웃었고, 누군가는 당황했다. 그러나 그는 주저하지 않고 무대 위로 올라섰다.

“저기, 딱 한마디만 하겠습니다.”

사회자가 막으려 했지만, 그의 태도는 여유로웠다. 레오나와 에릭도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품격이니, 돈이니... 참 대단한 얘기들 하십니다.” 남자는 씁쓸한 웃음을 지으며 말을 이었다. “그런데 저는 두 사회 어디에서도 대접받아본 적이 없네요. 아르카디아에선 태생이 하찮아서 무시당했고, 메리트로폴리스에선 돈이 없어서 무시당했습니다. 그러니 묻겠습니다. 당신들이 말하는 그 멋진 품격과 돈은 대체 누구를 위한 겁니까?”

레오나와 에릭의 얼굴이 굳었다.

남자는 레오나를 향해 손가락을 들었다.
“당신들 아르카디아에서는 품격이 중요하다면서, 품격을 타고나지 못한 사람은 그냥 하인으로 살라고 하죠. 내가 귀족으로 태어나지 못한 게 내 잘못입니까? 품격이라는 말로 나 같은 사람을 짓밟는 건 고상한 겁니까?”

그는 이번엔 에릭을 향했다.
“그리고 당신들 메리트로폴리스. 돈만 있으면 모든 문제가 해결된다고요? 내가 아무리 일해도 내 몫은 겨우 생계 유지하는 정도입니다. 아무리 노력해도 시스템이 날 성공할 수 없게 만들었죠. 이게 전부 내 능력 부족 때문인가요? 아니면, 당신들 사회가 애초에 나 같은 사람은 고려하지 않는 겁니까?”

그는 숨을 고르며 고개를 들어 두 사람을 번갈아 보았다.
“결국, 품격도 돈도 당신들만 잘 먹고 잘 살겠다는 핑계 아닙니까? 내가 보기엔 둘 다 똑같아요. 남들보다 조금 나은 척하면서 자기 우월감에 취해 있는 거죠.”

남자는 그렇게 말하고는 무대에서 내려갔다. 그의 허름한 뒷모습이 무대 조명 아래 작아지며 사라졌다.

레오나는 말문을 열려 했지만,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았다. 에릭도 반박하려 했으나, 그 순간 자신이 말하려던 모든 논리가 공허하게 느껴졌다.

토론장은 침묵에 휩싸였다. 청중들도 누구 하나 박수치지 않았다.

레오나는 조용히 자문했다.
“품격... 과연 누구를 위한 것이었지?”

에릭은 고개를 숙였다.
“돈만 있으면 된다고 했는데... 정말 그게 전부였을까?”

그날 이후로 두 사회는 변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날의 한마디는 두 사람의 마음 깊숙이, 그리고 수많은 청중의 내면에 균열을 남겼다.

결국, 그 비루한 남자의 말처럼, 품격과 돈은 인간의 자기만족을 위한 도구일 뿐이었다.
그것이 아무리 화려하게 포장되었더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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