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의 겨울은 유리에게 낯설고 차가웠다. 15년 동안 캐나다에서 살아온 그녀에게 한국은 더 이상 편안한 고향이 아니었다. 도시의 번잡함, 낯선 규칙, 그리고 사람들의 시선은 그녀를 이방인으로 느끼게 했다.
처음 서울의 지하철에 올라탔을 때, 유리는 자신이 남들과 다르다는 것을 깨달았다. 사람들은 한 치의 여유도 없이 서로 밀착해 서 있었고, 유리는 혼자 중심을 잡으려 애썼다. 좁은 공간에서 누군가의 가방이 계속 허리를 찌르고 있었지만, 아무도 사과하지 않았다. 그녀는 어딘가 불편함을 느꼈지만 입을 열지 않았다.
그러다 어느 날, 지하철에서 갑작스럽게 전화를 받았다. 영어로 된 목소리에 사람들이 그녀를 힐끔힐끔 쳐다보았다. 전화를 끊고 나니, 옆에 앉아 있던 할머니가 말했다.
“외국 사람인 줄 알았네. 우리말 못 해요?”
유리는 당황했지만 억지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아니요, 한국말 할 수 있어요.”
그러나 할머니는 고개를 갸웃하며 더 이상 말을 걸지 않았다. 마치 그녀가 그 자리에 속하지 않는 사람처럼 느끼는 것 같았다.
버스에서도 비슷한 일이 일어났다. 유리가 환승 카드를 찍는 데 조금 시간이 걸리자, 뒤에서 한 중년 남성이 투덜댔다.
“아, 진짜. 뭐 하는 거야? 요즘 젊은 애들 답답하네.”
그 말에 유리는 얼굴이 달아올랐다. 캐나다에서는 누구도 이런 작은 실수로 사람을 재촉하지 않았다.
회사에서는 공공장소에서의 어려움보다 더 복잡한 문제들이 있었다. 회식 자리에서 누군가 유리에게 물었다.
“유리 씨는 소맥 만들어봤어요? 아니면 맥주만 마시나요, 외국식으로?”
다른 사람들은 웃으며 그녀를 쳐다봤다. 유리는 당황하며 어설프게 소맥을 섞어 보였지만, 이미 자리를 채운 미묘한 거리는 좁혀지지 않았다.
업무 회의에서도 같은 일이 반복되었다. 유리가 새로운 아이디어를 제안할 때마다, 동료들은 “그건 여긴 좀 다를 것 같은데요”라며 미묘한 반응을 보였다. 동료들은 그녀를 너무 서구적이라 느꼈고, 유리는 이곳에서도 완전히 속하지 못하는 느낌을 받았다.
시간이 지나면서 유리는 점차 자신을 탓하기 시작했다.
“내가 너무 이질적인가? 한국에 맞는 방식으로 바꿔야 하는 걸까?”
그러나 한편으로는, 자신을 바꾸는 것이 옳은 방법인지도 확신할 수 없었다. 그럴 때마다 공공장소에서의 작은 사건들은 그녀에게 상처를 남겼다. 카페에서 영어로 된 이메일을 작성하다가 옆자리 사람들이 흘깃거리는 것을 느끼거나, 길에서 지나가는 행인에게 길을 물었을 때 돌아오는 짧고 차가운 대답들.
그러던 어느 날, 유리는 인터넷에서 다문화 커뮤니티를 발견했다. 다양한 나라에서 한국으로 온 사람들이 모여 서로의 경험을 공유하고 있었다. 유리는 처음으로 자신이 느꼈던 어려움을 솔직하게 털어놓을 수 있었다.
“한국에서는 내가 외국인처럼 보이고, 외국에서는 한국인처럼 보였어요. 결국 나는 어디에도 속하지 못한다는 생각이 들었죠.”
다른 사람들도 고개를 끄덕이며 공감했다.
그 모임에서 만난 한 참가자가 말했다.
“경계에 있다는 건 사실 굉장한 강점이에요. 두 문화를 모두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잖아요?”
그 말에 유리는 자신을 다른 시각으로 바라보기 시작했다. 자신의 이질감은 단점이 아니라, 두 세계를 연결할 수 있는 다리 역할을 할 수 있는 자산이었다.
유리는 회사에서 자신만의 장점을 살리기 위해 노력했다. 동료들에게 해외에서 배운 업무 방식을 공유하고, 국제 프로젝트에서 리더십을 발휘하며 인정받기 시작했다.
지하철에서 누군가 영어로 길을 묻는 외국인을 발견했을 때, 유리는 적극적으로 나서서 도움을 주었다. 상대방의 감사 인사에, 그녀는 처음으로 자신이 연결자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실감했다.
몇 년 후, 유리는 다문화 컨설턴트로 활동하며 자신의 경험을 나누는 일을 시작했다. 강연에서 그녀는 말했다.
“경계에 서 있는 건 처음에는 고통스러울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 경계는 두 세계를 연결하는 다리가 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이방인이 아니라, 연결자입니다.”
그녀는 여전히 지하철을 타고, 버스를 이용하며 서울 곳곳을 다녔다. 그리고 더 이상 외계인이 아니라, 자신만의 방식으로 서울이라는 세계에 뿌리를 내린 연결자로 살아가고 있었다.
'단편소설' 카테고리의 다른 글
단편#59 기대의 무게: 헌신과 인정 사이에서 (1) | 2024.12.04 |
---|---|
단편#58 품격과 천박 사이 그 어딘가 (1) | 2024.12.03 |
단편#56 그린워싱: 진실과 거짓의 경계 (1) | 2024.12.01 |
단편#55 세대의 짐을 내려놓다 (1) | 2024.11.30 |
단편#54 몰입, 원칙, 그리고 위대함의 길 (3) | 2024.11.29 |
쇼피파이로 글로벌 이커머스 정복하기 | 📘 구매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