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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수는 세상에 대한 분노로 하루를 열고, 경멸로 하루를 닫았다. 정치와 경제 뉴스 속 부패한 인물들이 자리를 차지할 때마다 그는 혀를 차며 자신이야말로 진정한 도덕을 지키는 사람이라고 여겼다. “썩어버린 세상이지. 그래도 나 같은 사람이 있어서 다행이야.” 그는 그렇게 말하며 자신의 정직함을 자랑으로 삼았다.

아들 현우에게도 정수는 자신의 신념을 고스란히 물려주었다. 현우는 어려서부터 아버지의 가르침을 성실히 따랐다. 그는 친구들이 규칙을 어기면 곧바로 선생님께 알렸고, 도덕을 어기는 친구들을 절대 용납하지 않았다. 정수는 아들이 자랑스러웠다. 현우는 그의 도덕적 후계자였고, 세상의 부정을 바로잡아 줄 사람이라고 믿었다.

“현우야, 진정한 정의를 위해서라면 외로워질 수도 있는 거야. 세상과 맞서 싸우다 보면 아무도 네 편에 서지 않을 수도 있어. 그래도 옳다면, 그 길을 가는 게 맞는 거지.” 정수는 아들이 점점 친구들과 소원해지고 외톨이가 되어가는 것을 알면서도, 그것이 정의의 무게라며 힘을 실어주었다. 그는 외로움을 감수할 줄 아는 것이 진정한 정의의 길이라 믿었고, 현우도 그런 아버지의 말을 굳게 받아들였다.

현우는 고등학생이 되면서 점점 더 엄격하고 단호한 도덕주의자가 되었다. 학교에서도 친구들이 실수하거나 잘못을 하면 가차 없이 비난했고, 온라인상에서도 부정에 대해 날카로운 비판을 쏟아냈다. 그는 단호하게 자신을 고립시켰지만, 정수는 오히려 그런 아들의 모습을 대견하게 여겼다. 고독은 정의를 위한 대가이며, 현우는 진정으로 정의로운 길을 걷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던 어느 날, 현우는 거리에서 불의를 마주했고, 그들과 말다툼이 벌어졌다. 아버지에게 배운 대로 그는 타협 없이 자신의 정의를 외쳤다. 그러나 그 순간, 현우는 그들의 분노를 샀고, 끝내 폭행을 당하게 되었다. 그날 정수는 아들이 목숨을 잃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정수는 서둘러 현우가 쓰러진 곳으로 달려갔다. 차갑게 식은 아들의 몸을 끌어안으며 그는 자신이 아들에게 가르친 정의가 과연 무엇이었는지 되짚어보았다. 자신이 그렇게까지 신봉해온 정의의 무게가 어쩌면 현우를 이곳으로 이끌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평생을 바쳐 지켜온 신념이, 그토록 자랑스럽게 여기던 도덕적 기준이 과연 옳았는지 그는 깊은 의구심에 빠졌다.

아들의 죽음 앞에서, 정수는 여전히 자신의 신념을 버리지는 못했다. 그러나 그의 가슴 속에는 무거운 죄책감과 함께 자라나는 한 가지 생각이 있었다. 어쩌면, 어쩌면 자신이 틀렸을지도 모른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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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호는 서울에서 손꼽히는 유통업체의 CEO다. 젊은 시절, 그는 가난한 가정에서 자라나 남들보다 훨씬 불리한 출발선을 딛고 일어섰다. 끈기와 수완을 무기로, 태호는 차근차근 재산을 모아 지금은 몇백억 대의 사업을 운영하는 성공한 인물이 되었다. 그러나 그 뒤에는 언제나 자신을 합리화하는 모호한 변명이 따라다녔다.

태호는 10년 전, 온라인 유통 시장에 발을 들였다. 처음에는 정직하게 운영하려 했지만, 사람들의 소비 패턴을 분석하던 중 깨달았다. 고객들이 저렴한 가격과 빠른 배송을 원한다는 것을 알게 된 그는 공급망을 최대한 압박하고, 불법 하청 업체들과 손을 잡았다. 그곳은 근로자들에게 최저임금조차 지급하지 않았지만 태호는 이에 대해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자신에게 비난의 목소리가 들려와도 태호는 대수롭지 않게 대꾸했다. “사람들이 싸고 빠르게 받고 싶어 하잖아. 나도 먹고 살아야지. 누구라도 나처럼 성공을 원한다면 같은 선택을 했을 거야.” 그의 눈에는 자신의 사업 방침이 단지 ‘고객의 욕구를 충족시키는’ 합리적인 선택에 불과했다.

몇 년 후, 태호의 유통업체는 급성장했지만, 그와 경쟁하려는 회사들도 많아졌다. 그중 한 경쟁사가 빠른 배송 서비스로 인기를 끌자, 태호는 그 회사를 몰락시키기로 마음먹었다. 그는 조직적으로 가짜 리뷰와 악성 루머를 퍼뜨려 그 회사를 공격했고, 결국 그 경쟁사는 문을 닫았다. 해당 회사의 대표는 빚더미에 앉았지만, 태호는 이를 자신의 책임으로 보지 않았다. 그는 지인들에게 태연히 말했다. “시장에서 살아남으려면 어쩔 수 없는 일이었어. 내가 아니었어도 누군가 그 회사를 무너뜨렸을 거야.” 그는 자신이 단지 ‘비즈니스의 법칙’을 따랐다고 생각했고, 그 과정에서 피해를 본 사람들의 고통에는 눈을 감았다.

사업이 커질수록 세금도 늘어났고, 태호는 점점 불편해졌다. 그는 고액의 세금을 내는 것이 억울하다며 회사 자금을 빼돌려 비자금을 조성하고, 세금을 포탈하기 시작했다. 국세청의 조사가 시작되었을 때도 그는 웃으며 말했다. “모두가 탈세 정도는 하는 거야. 부당한 세금에서 나를 보호하는 건 당연하지.” 태호는 국가가 매긴 세금을 피할 권리가 있다고 믿었고, 자신을 피해자로 여겼다. 자신을 ‘부당한 시스템에 맞서는 현명한 사업가’라고 여기며, 주위 사람들에게도 같은 논리를 설파했다.

결국 태호는 수십억 원의 세금을 탈루한 혐의로 법정에 서게 되었다. 검사와 판사, 방청석의 사람들은 그의 비뚤어진 논리에 혀를 내둘렀지만, 태호는 미동도 없었다. 오히려 그는 법정에서 늘 하던 말을 되풀이했다. “그 밖에 어쩔 도리가 없었어요. 누가 됐든 나와 같은 상황이었다면 같은 선택을 했을 겁니다.”

그의 목소리는 흔들림 없이 단호했고, 얼굴엔 미묘한 자부심마저 감돌았다. 방청석에서는 속삭임이 흘러나왔지만, 그는 조금도 위축되지 않았다. 태호는 그 말이 결코 변명이 아닌 진실이라고 믿고 있었다. 자신이 진정 피해자이며, 불가피한 선택을 했을 뿐이라는 그 믿음은 그를 더욱 단단하게 만들었다.

그는 철저히 자기 자신에게 속아 있었고, 오히려 법정에 서서도 스스로를 피해자라고 확신했다. 그 모습에 법정에 모인 사람들, 그의 옛 동료와 친구들, 그리고 피해자들은 오싹함을 느꼈다. 이 사람에게는 반성의 여지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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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현은 30대 초반에 창업한 IT 스타트업을 수년 만에 업계 정상으로 올려놓았다. 사람들은 그를 '살아있는 전설'이라 칭송하며 그의 성공을 부러워했다. 그러나 정작 재현은 그 누구보다 불안했다. 매출이 조금만 떨어져도 불안에 떨었고, 작은 손해라도 생기면 밤새 고민했다. 휴식은 사치로 여겨졌고, 돈을 쌓아가는 것만이 그의 삶의 목적이자 유일한 가치였다.

주변 사람들은 그런 재현의 모습이 안타까웠다. 친구들과 동료들은 그에게 여러 번 충고했다. "재현아, 그렇게 일만 하지 말고 가끔은 쉬어. 이번 주말에 우리랑 등산 가자, 네가 좋아하는 바비큐도 준비할 테니까." 동료인 준혁이 말했다. "회사가 잘 나가고 있잖아. 너무 걱정하지 말고 여유를 좀 가져."

그러나 재현은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 "너희는 성공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모르니까 그렇게 쉽게 말하는 거야. 나한테 집중하라고 한 거야? 아니면 내 사업을 망치려는 속셈이 있는 거야?" 친구들은 더 이상 말하지 못했다. 그들은 재현의 고집과 스트레스가 불러온 냉담한 태도에 씁쓸함을 느꼈다.

시간이 지나면서 재현의 몸은 점점 망가져 갔다. 수면 부족과 극심한 스트레스로 인해 그는 만성 위염과 두통에 시달렸고, 불면증은 점점 심해졌다. 그러던 어느 날, 심장마비가 그를 덮쳤다. 응급실로 실려 가 간신히 목숨을 건졌지만, 의사는 그에게 지금처럼 살다가는 오래 버티기 힘들 것이라고 경고했다. 병실에 누워있던 재현은 자신이 쌓아온 모든 돈과 성공이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는 수백억 원의 자산을 가지고 있었지만, 정작 맛있는 음식을 마음껏 먹을 수도, 어디론가 여행을 떠나 즐길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병원에서 회복하는 동안 재현은 자신이 그동안 무엇을 위해 달려왔는지 자문하게 되었다. 젊은 시절 그는 돈만이 인생의 궁극적인 목표라고 생각했고, 이를 위해 가족, 친구, 심지어 자신의 건강까지 희생했다. 그러나 막상 죽음의 문턱까지 다다라보니 성공과 돈이 얼마나 허무한지 깨달을 수밖에 없었다.

그는 퇴원 후 새로운 삶을 살기로 결심했다. 우선, 자신의 자산 중 일부를 자선단체에 기부하기 시작했다. 그는 어린이 병원에 정기적으로 기부금을 전달하며, 소외된 이웃을 돕는 프로젝트에도 헌신했다. 병마와 싸우고 있는 아이들을 위한 기부금은 물론이고, 사회적 문제 해결을 위한 연구에도 자금을 지원했다. 그의 변화는 단지 기부에서 그치지 않았다. 그는 직접 공공의 일에 참여하고, 봉사활동을 통해 어려운 사람들을 돕기 시작했다. 이제는 비즈니스뿐만 아니라 사회적 가치를 창출하는 데도 열정을 쏟았다.

재현은 회사를 경영하는 태도 역시 완전히 바꾸었다. 이전처럼 작은 실수에도 예민하게 반응하기보다는, 직원들의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받아들이고 실패도 과정의 일부로 인정했다. 그는 팀원들에게 휴식을 장려하며, 회사를 떠나 가족과 함께 시간을 보내라고 독려했다. 그리고 자신도 매주 일정 시간을 비워두고 자원봉사 활동에 참여하거나 자연 속에서 명상하며 마음의 평안을 찾았다.

하지만 주변 사람들은 그의 갑작스러운 변화를 이해하지 못했다. "왜 갑자기 자선 활동에 그렇게 열을 올리는 거야?" "재현이 돈을 쉽게 쓰기 시작했다니, 그답지 않아." 예전과 달라진 그의 태도에 사람들은 의아해했다. 그러나 재현은 더 이상 그들의 시선에 신경 쓰지 않았다. 그에게 있어 진정한 성공은 더 이상 돈을 쌓는 것이 아니라, 그 돈을 어떻게 가치 있게 사용하는지에 달려 있었다.

그는 과거의 자신에게 돌아가지 않으리라 다짐했다. 이제는 걱정과 불안 대신, 타인에게 기쁨과 도움을 줄 수 있는 삶을 선택한 것이다. 그렇게 그는 새롭게 태어났다. 아무도 눈치채지 못했지만, 재현은 그 어떤 때보다 더 행복했다. 그리고 그것이야말로 그가 그토록 찾아 헤매던 진정한 성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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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도윤은 성실함이 몸에 밴 30대 남성이었다. 대학 졸업 후 좋은 직장에 취직해 꾸준히 일했고, 대학 시절 만나 결혼한 아내 지연과 어린 아들 우진을 위해 하루하루 열심히 살아갔다. 주말마다 가족과 시간을 보내며 나름대로 행복을 느꼈지만, 어느 순간부터 도윤은 보이지 않는 벽에 부딪힌 기분이었다. 집값은 급등하고, 자산 격차는 끝도 없이 벌어졌다. 아무리 노력해도 현실은 그를 억누르는 듯했다.

그러던 어느 날, 도윤은 오랜만에 만난 친구로부터 투자 이야기를 들었다. “요즘 좋은 기회가 있어. 조금만 투자하면 큰돈을 벌 수 있어.” 친구의 말은 유혹적이었다. 도윤은 처음엔 조심스럽게 합법적인 투자부터 시작했다. 주식과 부동산으로 약간의 수익을 내며 생활은 조금씩 여유로워졌고, 가족과 외식을 즐기거나 우진에게 장난감을 사주는 일이 늘었다. 지연도 그런 남편의 변화가 반가웠다. “요즘 많이 밝아진 것 같아. 우리 더 행복해진 거 맞지?” 그녀의 말에 도윤은 자신감 있게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도윤은 더 큰 수익을 원하게 됐다. 이제 합법적인 투자만으로는 만족할 수 없었다. 친구는 위험하지만 큰돈을 벌 수 있는 '비공식' 투자 기회를 다시 한번 제안했다. 도윤은 처음엔 망설였지만, 점점 더 빠르게 불어나는 자산을 보며 불법적인 거래에 손을 대기 시작했다. 거래는 성공적으로 이어졌고, 그의 계좌에는 더 많은 돈이 쌓여갔다.

그러나 지연은 남편의 태도에서 변화의 조짐을 느끼기 시작했다. 도윤은 예전보다 가족과 보내는 시간이 줄었고, 집에서도 노트북을 붙잡고 무언가에 몰두했다. “이제 그만해도 되지 않아? 우리 이렇게 충분히 행복한데...” 지연의 목소리에는 염려가 담겨 있었다. 도윤은 짜증 섞인 목소리로 대답했다. “조금만 더 벌면 우진에게 더 좋은 환경을 줄 수 있어. 이게 다 우리 가족을 위한 거야.”

지연은 마음속 깊은 곳에서 두려움을 느꼈다. “도윤, 한 번은 현실과 타협하는 선택을 할 수 있어. 하지만 그 한 번, 한 번의 선택으로 사람은 변하는 거야.” 그녀의 말은 남편의 귀에 가볍게 흘러갔을 뿐이었다. 도윤은 더 큰 수익을 위해 불법과 합법의 경계를 넘나들기 시작했고, 그런 선택이 자신에게 얼마나 위험한지 생각하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도윤이 참여한 거래는 경찰의 함정수사였다. 그는 눈앞이 깜깜해진 채로 체포당했고, 그의 불법 행위는 하나둘씩 드러났다. 법정에서 그는 무너져버린 자신의 인생을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지연은 눈물을 흘리며 남편을 바라봤고, 우진은 상황을 이해하지 못한 채 엄마의 손을 꽉 잡고 있었다.

그때서야 도윤은 지연의 말이 떠올랐다. 작은 타협들이 쌓이고, 그 하나하나의 선택들이 결국 자신의 삶을 나락으로 이끌었다는 것을 그는 이제야 뼈저리게 깨닫고 있었다. 그러나 이미 모든 것을 잃고 나서야 그는 그 선택들이 어떤 대가를 치르게 했는지 알 수 있었다. 하지만 이미 되돌릴 수 없다는 걸 아는 그는 좌절감에 눈물을 흘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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