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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훈은 자신이 점점 ‘모범적인 사람’이 되어가고 있다고 생각했다. 사람들과 대화할 때마다 말끝을 부드럽게 만들고, 상대방이 기분 나빠할 말은 돌려서 전하며, 때로는 고개를 끄덕이기까지 했다. 그의 하루는 누군가의 시선을 의식하며 사는 일들로 가득 찼고, 그렇게 상대의 기대에 맞추어 행동할 때마다 자신이 안도감을 느끼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하지만 마음속 어딘가에는 언제나 무거운 느낌이 자리하고 있었다. 어렸을 때는 하고 싶은 말이 있으면 곧장 내뱉곤 했던 시절이 있었다. 그때는 지금처럼 깊이 생각하지 않고 마음속에 있는 대로 이야기했다. 하지만 점점 사회가 요구하는 ‘이상적인’ 사람으로 살아가면서, 지훈은 자신의 생각을 억누르고 다듬는 일이 당연한 듯 변해버렸다.

하루는 회사에서 후배와의 일이 있었다. 후배가 실수를 했고, 지훈은 부드럽게 다독이며 위로했다. 하지만 마음속에서는 다른 목소리가 울리고 있었다. “이런 실수는 앞으로 어떻게든 고쳐야 해.” 그러나 그 말을 그대로 내뱉기엔 주저함이 있었다. 후배의 기분을 상하게 하고 싶지 않다는 마음에 그는 말을 삼키고 다시 다독였다.

그날 퇴근길, 지훈은 지하철 유리창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바라보았다. 지친 눈빛에 피로한 표정이 스며들어 있었다. 그 순간 마음속 어딘가에서 작은 목소리가 들렸다.

“이게 정말 나야?”

그 목소리는 마음속에 깊이 묻혀 있던, 잊혀진 자신이었다. 오랫동안 사회의 기대에 맞추며 쌓아온 껍데기들이 그의 본연의 모습을 감추고 있었던 것이다.

며칠 후, 지훈은 친구 영수를 만났다. 영수는 회사를 다니며 겉으로는 무뚝뚝하지만 마음속엔 단단한 자부심과 신념이 있는 친구였다. 영수는 지훈에게 푸념했다.

“진짜 하고 싶은 말이 있으면 그냥 말하는 거지, 왜 그렇게 돌려서 말해? 나중엔 도대체 누가 진짜고 누가 가식인지도 모르겠어.”

그 말이 지훈의 마음을 울렸다. 그동안 자신이 얼마나 많은 시간을 할애해 상대의 기분을 살피며 말끝을 다듬어왔는지 떠올랐다. 가식적으로 점철된 시간들이 쌓여가며, 그는 점점 자기 자신을 잃어가고 있었다.


그날 이후로 지훈은 조금씩 변하기로 결심했다. 모든 말을 완벽하게 돌려 말하려는 습관을 내려놓고, 과감하게 솔직해지기로 했다. 처음엔 쉽지 않았다. 사람들은 그의 변화에 당황했고, 그를 달리 보기 시작한 이들도 있었다.

어떤 사람들은 그의 변화를 기쁘게 받아들였다. “지훈, 요즘 너 달라진 것 같아. 더 자연스러워진 것 같아.” 그들은 지훈의 솔직함과 더 깊은 대화를 즐겼다. 그러나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었다. 어떤 이들은 “요즘 너무 직설적인 거 아니야?”라며 불편한 기색을 내비쳤다.

하지만 그는 개의치 않았다. 사람마다 생각이 다를 수 있고, 좋아할 수도 싫어할 수도 있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건 너무나 자연스러운 일이었고, 모든 사람에게 사랑받으려 애쓰지 않아도 된다고 그는 깨달았다.


얼마 후, 지훈은 유리창에 비친 자신을 다시 바라보았다. 이제는 껍데기 속에 갇힌 지친 얼굴이 아니라, 온전히 드러난 자신의 모습이 거기에 있었다. 그는 미소를 지으며 조용히 생각했다.

“누군가 나를 좋아할 수도, 싫어할 수도 있지. 그건 그들의 자유고, 나는 내 자신으로 살아갈 자유가 있어.”

껍데기를 벗어낸 지훈은 비로소 자신의 진짜 모습을 마주하며 그렇게 자신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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준호는 대학생이었다. 가정 형편이 넉넉지 않아 학비와 생활비를 벌기 위해 늘 아르바이트를 했다. 방학 때도 카페에서 일을 했고, 친구들이 해외여행을 떠나는 모습을 보며 언제쯤 자신도 그런 여유를 누릴 수 있을지 생각했다. 그런 날들이 반복될수록 그는 부유한 사람들에 대한 적대감과 분노를 키워갔다. “부자들은 편하게 살면서 왜 이렇게 가난한 사람들은 고생해야 할까?” 그는 부자들을 악으로 여겼고, 그들을 비판하는 영상과 글에 심취했다.

그러던 어느 날, 준호는 출근길에 갑작스러운 교통사고를 당했다. 정신을 차려보니 그는 낯선 방에 누워 있었다. 세련된 인테리어와 고급 가구들이 자리 잡은 곳이었다. "여기가 어디지?" 준호는 혼란스러웠다. 몸을 일으키자마자 낯선 소녀의 목소리가 들렸다. “아빠, 괜찮아?” 준호는 깜짝 놀라 거울을 보았다. 거울 속에는 20대 초반의 준호가 아닌 50대 중년 남성의 얼굴이 있었다.

“내가 왜 이런 모습이지?” 준호는 자신이 이제 중산층 가장인 김성호로서 새로운 삶을 살아야 한다는 사실을 곧 깨달았다. 그의 혼란은 점점 커져갔고, 성호의 삶에 적응하려는 노력이 시작되었다.

성호의 집에서는 아내와의 냉랭한 분위기가 먼저 그를 맞았다. 대화는 형식적이었고, 아내는 언제나 거리를 두고 있었다. 한 번은 준호가 집안일을 돕겠다며 다가가자, 아내는 짧게 내뱉었다. “이제 와서 뭘 해보겠다는 거야? 당신은 언제나 일만 중요했잖아.” 그녀의 말은 준호를 혼란에 빠뜨렸다. 가족을 위해 열심히 일하는 것이 당연한 줄 알았는데, 오히려 그것이 가족에게 상처를 준 이유가 되었을 줄은 몰랐다.

시간이 지나면서 아들과의 갈등도 심화되었다. 준호는 아들에게 더 다가가려 했지만, 아들은 매번 벽을 쳤다. “아빠는 내가 뭘 해도 관심 없잖아요.” 아들의 차가운 말은 그에게 자신이 성호로서 가족과의 거리가 멀어졌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끼게 했다. 준호는 가슴 속 깊이 쌓인 성호의 아픔을 느끼기 시작했다. 그것은 자신이 원래 알던 ‘부자의 여유’와는 다른 종류의 무게였다.

회사에서도 준호는 성호의 고단함을 그대로 체험했다. 어느 날, 회사의 중요한 프로젝트에서 큰 손실이 발생했고, 상사는 준호에게 소리를 질렀다. “가족 문제는 알겠는데, 그게 일 핑계가 될 수는 없잖아!” 상사의 질책에 준호는 답답함과 억울함이 밀려왔다. 그는 부유한 사람들도 일터에서 겪는 스트레스와 책임이 있다는 것을 실감했다. 이것은 그가 생각한 편안하고 안정된 삶이 아니었다.

그러던 중, 가장 큰 충격이 준호에게 찾아왔다. 성호의 오래된 친구가 사업 실패로 인해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는 소식을 들은 것이다. 장례식장에서 친구의 가족이 흐느끼는 모습을 본 준호는 그들이 부유한 사람으로서 누릴 수 있는 여유를 넘어선 고통을 짊어지고 있었음을 알게 되었다. 그날 이후로 준호는 부자들을 단순히 적으로 여겼던 자신의 시선이 얼마나 좁았는지 깨달았다.

이러한 반복적인 경험들은 준호의 마음을 조금씩 바꿔놓았다. 성호의 삶을 살아가는 동안 그는 부유함이 곧 행복을 보장하지 않으며, 각자 나름의 고충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게 되었다. 준호는 이제 사람들을 이분법적으로 바라보는 것을 멈췄고, 그저 각자 다른 방식으로 싸우며 살아가는 인간들이라고 느꼈다.

마침내 준호는 다시 원래의 몸으로 돌아왔다. 그는 사고가 나기 전으로 돌아갔지만, 마음은 전과 달라져 있었다. 다시 마주한 세상에서, 그는 이 변화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아직 정확히 알지 못했지만, 적어도 더는 자신이 알고 있던 것이 전부라고 믿지는 않았다.

준호는 카페 창밖을 바라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여전히 현실은 그에게 차갑지만, 이제 그가 걸어가야 할 길은 조금 더 복잡하고, 덜 단순했다. 부자의 삶도, 자신의 삶도, 결국 그 무게는 각자 다르게 주어져 있었다. 그는 그 무게를 조금 더 이해할 준비가 되어 있었다.

끝이 어떻게 이어질지는 오직 준호만이 알 수 있을 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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