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진은 카페 창가에 앉아 노트를 펼쳤다. 오늘도 투자 기록을 정리하며 한 주를 마무리하려던 참이었다. 그러다 문득 대학 후배 규현과 나눴던 대화가 떠올랐다. 요즘 사람들은 예전보다 성공하기 쉬운 시대에 살고 있다는 이야기였다.
“형!”
문이 열리며 규현이 들어왔다. 반갑게 손을 흔드는 그를 보며 석진은 미소를 지었다. 규현은 명품 로고가 선명한 점퍼를 입고, 손목에는 반짝이는 최신 스마트워치가 채워져 있었다.
“오랜만이네.”
석진이 인사를 건네자, 규현이 자리에 앉으며 말했다.
“형, 요즘 뭐 하고 지내요? 여전히 돈 모으고 투자하는 삶?”
“응, 뭐 변한 건 없지.”
규현이 피식 웃으며 커피를 한 모금 마셨다.
“형, 너무 빡빡하게 살면 재미없잖아요. 요즘 세상 얼마나 빠르게 변하는데, 굳이 아끼면서 살 필요 있어요?”
석진은 규현을 가만히 바라보다가, 주머니에서 사과 하나를 꺼내 테이블 위에 올려놓았다.
“이 사과 안에 씨가 몇 개인지는 지금 당장 쪼개서 보면 돼.”
규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근데 씨 하나 안에 사과가 몇 개 들어 있는지는 어떻게 알까?”
규현이 멈칫했다.
“그건… 심어봐야 알죠.”
석진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맞아. 씨를 심고 기다리면 몇 년 후 나무가 되고, 그 나무에서 또 수십, 수백 개의 사과가 열리지.”
규현이 스마트워치를 만지작거리며 물었다.
“근데 형, 진짜 그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어요? 요즘은 그 어느 때보다 남들보다 앞서가기 쉬운 시대라잖아요. 오히려 형처럼 오래 기다리는 게 비효율적일 수도 있잖아요?”
석진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요즘 정말 남들보다 앞서가기 쉬운 시대지. 왜 그런지 알아?”
규현이 잠시 생각하다가 대답했다.
“글쎄요… 기술이 발전해서?”
“그것도 있지만, 사실 더 단순해. 생각보다 열심히 사는 사람이 없거든.”
규현이 순간 말을 멈췄다.
“솔직히 말해서, 꾸준히 노력하고 뭔가를 쌓아가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다들 눈앞의 즐거움에 빠져서 장기적인 걸 포기해. 남들이 다 멈춰 있으니까, 조금만 더 가도 앞서 나가는 거야.”
규현은 아무 말 없이 커피를 젓기만 했다.
“소비는 사과를 쪼개서 먹어버리는 거고, 저축과 투자는 씨를 심는 거야. 네 말대로 요즘 성공하기 쉬운 시대야. 왜? 씨를 심는 사람이 별로 없거든.”
몇 년 후, 규현은 석진이 사는 집을 찾았다. 작은 정원에는 과실수가 자라고 있었다.
“형, 기억나요? 씨를 심어봐야 안다고 했던 거.”
“그럼.”
규현이 나무를 바라보며 말했다.
“형 말 듣고 나도 조금씩 모으기 시작했어요. 진짜 남들보다 앞서가는 게 어렵지 않더라고요. 대부분 그냥 흘러가는 대로 살고 있더라고요.”
석진이 고개를 끄덕이며 나무를 가리켰다.
“이 나무 봐. 처음엔 씨 하나였는데, 이제 이렇게 됐어.”
규현이 가지에서 사과 하나를 따며 말했다.
“형 말이 맞았어요. 씨를 심는 사람이 별로 없으니까, 심기만 해도 앞서가더라고요.”
석진이 웃으며 말했다.
“그렇지? 씨 안에 사과가 몇 개 있는지는… 심어봐야 아는 거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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