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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5시 30분, 서준은 알람이 울리기 직전 눈을 떴다. 방 안은 조용했고, 희미한 새벽빛이 창문을 통해 들어오고 있었다. 그는 잠시 눈을 깜빡이다가 천천히 몸을 일으켜 침대를 정리했다. 이불의 주름을 꼼꼼히 펴고, 베개를 제자리에 두었다. 그 후 그는 주방으로 가 커피 머신 버튼을 눌렀다.

커피가 내려오는 동안 그는 싱크대 위에 남아 있던 물기를 천천히 닦았다. 커피 한 잔을 들고 창가로 가 앉아 밖을 바라봤다. 어둠 속에서 점점 밝아지는 하늘과 드문드문 지나가는 차량들, 그리고 바람에 흔들리는 가로수의 가지들. 서준은 천천히 커피를 마셨다.

7시 정각, 그는 집을 나섰다. 길은 한산했고, 그는 일정한 속도로 걸음을 옮겼다. 공원을 지나며 그는 잠시 멈춰 서서 나뭇잎을 바라보았다. 바람에 흔들리는 초록색 잎사귀들이 햇빛을 받아 반짝이고 있었다. 그는 다시 발걸음을 옮겼다.

서준이 도착한 곳은 도심의 작은 도서관이었다. 도서관은 아침 8시부터 문을 열었고, 서준은 문을 열기 전까지 책장을 정리하고 반납된 책들을 제자리에 꽂았다. 그는 천천히, 그러나 빠짐없이 책의 위치를 확인하며 작업을 마쳤다.

문을 연 후 사람들이 하나둘씩 들어왔지만, 서준은 그들과 눈을 마주치지 않았다. 책을 대출하거나 반납하려는 이용자들이 다가오면 그는 최소한의 말만 했다. "반납 도와드리겠습니다." "대출 기간은 2주입니다." 그의 목소리는 일정했고, 감정이 드러나지 않았다.

점심시간, 서준은 도서관 뒷마당으로 갔다. 벤치에 앉아 도시락을 열고 조용히 식사를 했다. 그가 앉은 자리 근처로 고양이 한 마리가 지나갔다. 고양이는 서준을 힐끗 쳐다봤지만, 다가오지 않았다. 서준은 고양이를 보며 잠시 멈췄다가 다시 도시락을 집어 들었다.

오후에는 더 많은 사람들이 도서관에 들어왔고, 그는 여전히 같은 자리에서 책을 정리하고 대출 업무를 처리했다. 저녁 6시가 되자 서준은 책상에 쌓인 서류를 정리하고 도서관 문을 닫았다.

퇴근길, 그는 근처 목욕탕에 들렀다. 옷을 벗고 뜨거운 물속에 몸을 담그며 그는 천장을 바라봤다. 김이 서린 천장이 보였다. 물속에 떠 있는 듯한 느낌. 그는 잠시 눈을 감았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그는 슈퍼마켓에 들러 간단한 재료들을 샀다. 집에 도착해 저녁을 만들고, 설거지를 끝낸 뒤 그는 책을 펼쳤다. 침대 옆 작은 스탠드 아래에서 책을 읽는 그의 모습은 방 안의 유일한 움직임이었다.

책을 덮고 침대에 눕기 전, 서준은 거울 앞에 섰다. 그는 잠시 자신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불을 끄고 침대에 누웠다. 방 안은 다시 고요해졌다.

다음 날, 서준은 알람이 울리기 전에 눈을 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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준혁은 또 적당한 선을 지켰다. 손을 잡는 것도, 약간의 스킨십도 괜찮았지만, 그것보다 더 가까워지려는 기색이 보이면 그는 본능적으로 선을 그었다. 너무 가까워지면 결국 상처를 주고받게 된다는 걸, 그는 어릴 때부터 여러 번 겪었다.

이번엔 혜린이었다. 어쩌면 처음으로 준혁이 조금 더 오래 옆에 두고 싶다고 느낀 사람이었다. 하지만 그는 이번에도 같은 방식으로 그녀를 대하고 있었다. 적당한 대화, 적당한 만남, 적당한 거리.

그날도 평소처럼 데이트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었다. 두 사람은 나란히 걸으며 별로 중요한 얘기 없이 시시콜콜한 농담을 주고받았다. 혜린이 갑자기 걸음을 멈췄다.

"준혁아, 너한테 물어보고 싶은 게 있어."

준혁은 의아한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봤다. "뭔데?"

"너... 항상 이렇게 사람들하고 거리를 두는 거, 이유가 뭐야?" 혜린의 목소리는 차분했지만, 진지했다.

준혁은 순간 당황했다. 이런 질문을 받을 줄은 몰랐다. "뭘 그렇게까지 심각하게 물어봐. 그냥... 나한테 그게 편해서 그래."

"편해서?" 혜린은 준혁의 대답을 곱씹는 듯, 천천히 되물었다.

"응. 사람들이랑 너무 가까워지면 결국 상처받잖아. 그럴 바엔 적당히 선 지키는 게 더 낫지."

혜린은 잠시 그를 바라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그게 너한테 진짜 행복한 거야? 아니면 그냥... 상처받기 싫어서 도망치는 거야?"

"행복이고 뭐고, 그냥 내가 사는 방식이야." 준혁은 짜증 섞인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가 예상했던 대화 주제가 아니었다.

혜린은 숨을 고르고 말했다. "준혁아, 나 너 이해하려고 하는 거야. 근데 너 이렇게 자꾸 선 긋는 거, 솔직히 말하면 좀 답답해."

준혁은 대꾸하지 않고 고개를 돌렸다.

"난 네가 좋은 사람이란 걸 알아. 그래서 더 알고 싶고, 더 가까워지고 싶어. 근데 네가 자꾸 거리를 두니까... 내가 너한테 다가가면 안 되는 사람처럼 느껴져."

"혜린, 내가 널 멀리하려는 게 아니야. 그냥... 나는 이런 게 익숙해서 그래." 준혁은 마지못해 변명하듯 말했다.

혜린은 고개를 젓고 한숨을 쉬었다. "너, 고슴도치 이야기 알아?"

"갑자기 웬 고슴도치?"

"고슴도치 딜레마라는 게 있어. 고슴도치들이 추운 겨울에 서로 가까워지려고 하면 가시 때문에 다치잖아. 그래서 일정 거리를 유지한다고."

"그러니까, 내가 딱 그 고슴도치라는 거지?" 준혁은 피식 웃으며 말했다.

"아니.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실제로 고슴도치들은 더 가까워지면 가시를 눕힌대. 찌르지 않으려고." 혜린은 그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진짜 가까워지면 다칠까 봐 걱정하는 게 아니라, 어떻게 하면 안 다칠지를 배운다는 거야."

준혁은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혜린의 말이 머릿속을 떠다녔다. "그래도... 쉽지 않아. 난 그런 걸 잘 못해."

혜린은 미소를 지었다. "나도 알아. 그래서 천천히 해보자는 거야. 나한테도 기회를 줘. 너를 더 알고, 더 가까워질 기회를."

준혁은 그녀의 눈을 바라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천천히, 한 걸음씩."

그날 이후, 준혁은 조금씩 변하기 시작했다. 혜린은 준혁이 쳐놓은 장벽을 무리해서 허물려 하지 않았다. 대신, 그녀는 그의 곁에서 꾸준히 기다리고, 그의 이야기를 들어주며 천천히 다가갔다.

그리고 준혁은 처음으로 깨달았다. 거리를 두는 것만이 자신을 지키는 방법이 아니란 걸. 서로를 존중하고 배려하면, 가까워져도 아프지 않을 수도 있다는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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