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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의 아침은 늘 붐볐다. 지하철 안에서 승우는 고개를 푹 숙인 채 졸음과 싸우고 있었다. 새벽 6시에 시작한 하루는 이미 피곤함으로 가득했다. 딸 하은이가 얼마 전 물었던 말이 그의 귀에 맴돌았다. “아빠는 왜 항상 바빠요?” 그때 그는 잠시 멈칫하다 대답했다. “열심히 일해야 하은이랑 엄마랑 잘 살 수 있지.” 하지만 그 말이 진심인지, 자신도 알 수 없었다.

승우와 아내 민정은 맞벌이를 하며 근근이 생활을 이어가고 있었다. 둘이 번 돈은 집값, 대출 이자, 교육비, 보험료로 빠듯하게 쓰였다. 한 달이 지나면 통장엔 늘 비슷한 금액만 남았다. 퇴근 후엔 집안일과 육아를 분담했지만, 둘 다 녹초가 된 상태였다. 그들에게 '여유'라는 단어는 사치처럼 느껴졌다.

“우리 이렇게 사는 게 맞는 걸까?” 민정은 설거지를 마치고 소파에 앉아 조용히 물었다. 승우는 대답 대신 고개만 끄덕였다. 민정이 한동안 이야기하던 둘째에 대한 말은 어느새 사라졌고, 둘 다 그것이 불가능한 일이라는 걸 알았다.

둘은 자신을 돌보는 시간도 잃어갔다. 민정은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 다니던 요가 수업을 그만뒀고, 승우는 오랫동안 꿈꿨던 사진 동호회를 포기했다. 이렇게 줄어든 시간은 점점 그들의 삶을 갉아먹었다. 몸과 마음이 지쳐 서로를 돌보는 여유도 사라졌다. 대화는 줄어들었고, 사소한 일로 다투는 날이 많아졌다. 딸 하은이가 물었다. “왜 엄마랑 아빠는 맨날 화가 나 있어요?”

어느 날 밤, 민정은 퇴근 후 동료의 술자리 제안을 거절했다. 그녀는 집에 가서 빨래를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승우도 친구들과 축구를 하던 시절은 이미 먼 과거의 일이었다. 가처분소득과 더불어 가처분시간의 부족은 그들 삶의 모든 선택지를 제한했다. 가족과의 시간도, 개인의 성장도, 취미도 모두 희생되고 있었다.

“승우 씨, 가끔은 우리가 왜 결혼했는지 모르겠어요.” 민정의 말은 그날 밤, 승우의 가슴을 찔렀다. 그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고개만 떨궜다. 더 나은 가정을 꾸리고 싶어 시작된 삶이었지만, 그 과정에서 정작 가정의 의미를 잃어가고 있었다.

승우는 거실에 앉아 멍하니 TV를 보다가 출산율 감소에 대한 뉴스를 들었다. 전문가들은 말했다. “저출산의 주요 원인은 가처분소득과 가처분시간의 부족입니다. 부모들이 아이를 키울 여유가 없다는 점이 가장 큰 문제죠.” 그는 리모컨을 들어 채널을 껐다. 딸의 방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결국 우리도 이 사회가 만든 또 다른 통계에 불과한 건가.’

내일 아침, 새벽 6시. 그의 하루는 또다시 시작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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